필사 모녀

엄마에겐 딸, 딸에겐 엄마

by 영주






2025년 1월 1일 거실 풍경






여든 후반, 아흔 초반은 되어 보이는 여자와 쉰 후반, 예순 초반은 되어 보이는 여자가 나란히 앉아 있다. 따뜻한 카페라테를 한 잔씩 두고, 사이에는 고구마 케이크. 그리고 전자동 연필깎이. 각각 유선 공책을 펼쳐 두고, 심이 무른 연필을 쥐고 조용히 쓴다. 켜져 있는 휴대전화 화면에는 영어 성경이 펼쳐져 있다. 필기체로 부드럽게 이어지는 영어 성경 필사. 왼팔을 고고 테이블에 바짝 붙인 몸, 공책을 향해 기울어진 몸의 기울기마저 닮았다. 뭉툭해진 연필이 지이잉, 연필깎이에서 깎이는 소리가 난다.

따뜻한 아침을 먹고, 집안을 정리한 후 아이와 함께 카페에 왔다. 발을 굴리며 씽씽이를 탄 아이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아이는 해야 할 것을 하기 전에, 태블릿 피시로 그림 그리는 게임을 하고 나는, 두 여자를 보며 글을 쓴다. 시간이 제법 흐른 뒤에도, 너와 내가 저렇게 나란히 혹은 이렇게 마주 앉을 수 있을까. 비슷하면서도 다른 일들을 각자 하고, 어떤 일에 대해 감상을 나누고, 응원하고 지지를 받고. 며칠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너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은데. 우리가 저분들처럼 함께 앉아 무엇을 해도, 혹은 무엇을 하지 않아도 편안하고 즐거웠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데. 엄마와 아이가 아닌, 성인 대 성인으로 서로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이는 요즘, 자라느라 바쁘다. 어떤 변화가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도 없지만, 알 수 있어도 아마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아이 스스로 만들고 지어져 가는 중에 내가 해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신뢰, 존중, 인내 같은 것들, 사랑의 다른 이름들. 아이를 돌보는 동안에 아이를 침범하지 않으려 하지만,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사랑 아닌 것들을 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어떤 삶을 살기를 바라는지를 생각한다, 당장이 아니라 머지않은 미래에. 그때를 쌓고 있다 생각하면 지금 하는 선택들에 가이드라인이 조금 그어지는 느낌이다. 아이는 지금으로서도 완벽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겠다.

해야 할 일을 하기 전에 조금만 놀겠다던 아이가, 여전히 게임을 하고 있다. 숙제 같은 순간은 역시, 늘 있다며 어떻게 말을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이가 태블릿을 내려놓으며 "엄마, 이제 윤선생 할게." 한다. '조금 기다리면, 아이가 스스로 한다.'는 믿기지 않은 일이 현실이 되었다. 나도 조금 더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하며, "적절한 순간에 잘 멈췄어." 하며 아이를 향해 엄지를 척 올려 보였다. 아이가 씩 웃더니 덩달아 엄지를 척 올린다. 육아는 오늘도 쉽지 않지만, 그래도 할 수 있다. 아마도, 네가 사랑이니까 그렇겠지.

이제 각자 할 일을 좀 해 볼까? (말을 조금 덜 걸어 주면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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