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

by 김미소

석양이 붉게, 수채화처럼 번져있었다. 너는 여느때처럼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나는 네 눈을 보는데 모든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이 곳, 바람, 시간. 보트 퓸(Fume), 바비큐 숯에서 나는 매캐한 내음, 그리고 모래 사장 위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꺄르르하는 풋내. 네 존재가 만드는 진동이 나를 한 곳에 고정시키고 있었는데, 어지럽지는 않았는데, 좀 벅찼는듯 싶다.


오랫동안 먹구름이 날 따라다녔는데, 그 때는 숨이 멎을 것 같이 아름답다는 표현이 안 와닿았다. 숨이 멎을 것 같은 것은 정말 멎을 것 같은 것이고, 그건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 순간의 진가를 그 순간에는 오롯이 알 수 없기 마련이라는게 참 비극이다.


근데, 나는 그때 그 순간이 내 앞으로의 삶을 흔들 순간이라는 걸 알았다. 우주의 먼지 주제에 이 순간에 의미를 부여해 감히 우주 어딘가에 북마킹하고 싶었다. 이렇게 찬란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알아야 한다. 누군가는. 이 순간을 위해 나는 어딘가에서 분주히 살아온 것이라고 느끼는 그 순간을, 인간들의 모든 그런 작은 순간들을 이 우주는 어딘가, 저장하고 있어야 한다. 아무렴.


너와 내 운명, 사주팔자, 숨, DNA, 혈관, 나의 엄마, 아빠, 그리고 내 손이 닿은 모든 생명체, 입자 그 모든 나의 것이면서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것들을 다 모아 모아서 진수만 짜내어 우주 서버에 이 순간의 타임코드를 핀 꽂을 수 있다면.


사람의 미간은 마치 기억 버튼이 있는 곳 같다. 너는 유니브라우(Unibrow)여서 그게 마치 비밀의 문 앞에 나 있는 덩쿨 같았다.


우리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연결된건지 서로 대어보고,


손가락 끝과 끝을 맞대고 길이를 재어보고,


서로의 몸을 테트리스 하듯 조각 맞춰보고,


길고, 짧은 머리카락을 이렇게 저렇게 포개어 보고,


닮은 점을 세세히 찾아보곤했다.


우리는 이 우주에 갇힌 존재들. 네가 옆에 있으면 영원히 부유할 수 있지 않을까했다. 늙지 않고.


네 광대를 타고 입가에 가 닿는 그 노란빛을 바라보다가,


빛의 음영이 변하면서 네 두 눈이 비로소 날 관통하면,


나는 고요한 영원 같은 시간 속에 숨도 조용히 새근 새근 쉬었던 것 같은데.


너한테는 소리의 파장이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괜찮아.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 어딘가 우리의 이 순간이 남아 있을걸. 도서관 한켠 먼지 쌓인 고서같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이 시간을 지나 더이상 없게 되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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