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버의 동남아 철수에서 바라본 생각
2018년 3월,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베트남에서 우버 서비스가 5월 중 종료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그랩을 이용해 달라는 메일이었습니다. 2017년, 베트남에서 일하면서 우버를 정말 유용하게 사용하였기 때문에 우버의 철수 소식이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다시 베트남을 돌아가면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그랩을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한국 지인들 대부분은 우버를 사용하였지만, 베트남 지인들 대부분 그랩을 사용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왜 외국인은 우버를 좋아하고, 베트남 사람들은 그랩을 좋아할까? 베트남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명확한 이유를 듣기 힘들었습니다. 그저 그랩이 더 싸고 좋다는 의견이었습니다.
2018년 12월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오면서 그랩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우버와 그랩의 서비스가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랩이 어떻게 우버를 이기게 되었는지 궁금증이 생겨 저의 직접적인 체험과 함께 몇 가지 이유를 찾아보았습니다.
1. 동남아의 문제점에서 시작한 그랩
그랩은 2011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다니던 말레이시아 사람 앤소니 탄(Anthony Tan)에 의해 처음 탄생하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택시 운전사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대형 자동차 유통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자였습니다. 자연스럽게 말레이시아의 교통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친구의 말레이시아 교통체증 불만에 아이디어를 얻어 그랩의 전신인 “마이 택시”를 2012년 창업하게 됩니다. 그랩은 처음 시작부터 동남아의 교통문제에 대한 대안책으로 만들어진 서비스였습니다. 우버와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동남아 문제점에 포커스를 두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나오는 새로운 서비스들도 모두 동남아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서비스로 동남아 고객들에게 큰 환영을 얻습니다. 우버는 뒤늦은 현지화 전략으로 매번 그랩에게 뒤쳐지게 되죠.
2. 현금결제 위주의 동남아
베트남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이 대부분의 결제가 현금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고액의 물건을 구매할 때도 현금으로 거래해서 회사에 돈을 세는 기계가 하나씩 있었습니다. 은행에 대한 신뢰도가 낮고, 현금의 신용이 높은 베트남에서 그랩은 먼저 현금결제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추후 우버도 현금결제를 도입하지만 그랩의 선점이 더 빨랐습니다.
3. 오토바이 택시
베트남을 처음 가면 가장 놀라는 광경이 바로 수많은 오토바이 행렬입니다. 소득 수준이 낮고 대중교통 인프라가 열악한 데다, 호치민 1군에 일자리가 몰려 있어 출퇴근길에 어마어마한 오토바이 줄을 볼 수 있습니다. 오토바이는 베트남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교통수단입니다. 그랩은 기존의 흥정해야 하는 쎄옴(오토바이 택시)을 그랩 바이크로 내놓았습니다. 그랩 택시는 택시보다 싸지만 여전히 높은 가격이었는데, 그랩 바이크의 출시로 매우 싼 가격에 이동이 가능해져 고객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게 됩니다. 지금도 제가 주로 이용하는 서비스입니다. 이 역시 그랩이 동남아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해 빨리 출시하여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4. 고객 친화적인 가격정책
저는 베트남 이전부터 우버를 사용했고, 카드가 이미 등록되어 있어 우버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이미 친숙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몇몇 부분에서 불만이 있었습니다. 바로 가격정책이었는데요. 우버는 목적지까지 가격이 정확하게 설정되지 않았습니다. 얼마부터 얼마까지로 가격이 변동될 수 있다고 뜨거나 드라이버가 조금 길을 돌아가면 가격이 더 오르기도 하였죠. 하지만 이번에 새로이 그랩을 사용했을 때 목적지까지 정확한 가격이 나왔고, 드라이버가 길을 좀 돌아가도 가격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우버는 드라이버 매치 후 5분이 지나면 취소 수수료가 부과되었지만, 그랩은 취소하여도 수수료가 부과되지 않았습니다. 따로 페널티 카운트가 되었지만, 우버보다 가격정책적인 면에서 그랩이 더 고객 친화적이었습니다.
5. 글로벌 기업의 엄청난 투자와 동남아 집중
우버와 그랩이 베트남에서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 동안 고객들은 할인 잔치에 행복해했습니다. 거의 365일 진행되는 프로모션 덕분에 할인 안 받고 차를 타면 손해 보는 기분까지 들 정도였죠. 결국 치킨게임의 승자는 그랩이 되었지만, 서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썼습니다. 그랩이 그렇게 할인 프로모션과 공격적인 드라이버 수수료 인하, 마케팅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글로벌 기업들의 든든한 투자 때문이었습니다.
소프트뱅크가 2014년 2억 5000만 달러, 2016년 7억 5000만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디디 추싱도 2017년 25억 달러를 투자하고, 2018년에는 도요타가 10억 달러를 투자합니다. 삼성과 현대도 투자 기업에 합류했습니다. 투자자만 38여 개 회사가 그랩 투자에 합류했습니다.
시장의 지배자가 된 그랩
우버보다 앞서 현금결제와 오토바이 택시 서비스를 시행하면서 동남아 니즈에 맞는 서비스를 출시하였고, 공격적인 프로모션과 마케팅으로 브랜드 이미지도 잘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베트남에서 만난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우버보다 그랩을 훨씬 선호하였습니다. 게다가 공격적인 수수료 인하와 혜택으로 드라이버들을 빠르게 모았기 때문에, 현지인들은 우버보다 그랩이 더 잘 잡힌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제가 생활하던 2017년에는 우버와 그랩의 서비스가 거의 비슷하였고, 드라이버도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우버 역시 공격적인 마케팅과 프로모션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랩이 이미 빠르게 시장을 선점했고 현지인들은 그랩이 우버보다 훨씬 좋은 서비스라는 인식이 박혀있었습니다.
결국 우버는 외국인들에게 환영받는 서비스로 전락해버렸습니다. 동남아 시장의 지배자이자 베트남 시장의 승리자가 된 그랩. 든든한 투자자 기업들이 뒤를 받쳐주고 있고 여전히 고객 친화적인 서비스를 계속 내놓고 있어 앞으로도 시장의 지배자로 군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고기사
1. 그랩은 어떻게 동남아 8개국을 제패했나
2. HOW GRAB IS GIVING UBER A RUN FOR ITS MONEY IN SOUTHEAST ASIA
https://www.wired.com/story/ubers-grab-on-the-developing-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