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천재 프로그래머 응우옌 하 동
해당 내용은 2020년 12월23일 디스이즈게임 <요즘베트남> 에 기고한 글을 일부 수정 편집한 글입니다. 베트남 게임 및 이스포츠 연재글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요즘베트남> 에 놀러오세요!
2019년 11월 18일 오후 5시, 하노이 공대 강당에 400여 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이들은 설레는 마음과 눈빛으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내 엄청난 환호와 박수 갈채를 받으며 세 사람이 등장했다. 세 사람은 하노이 공대 출신 선배이자 Got It의 CEO 흥 짠과 메가스톤 CEO 노오 쭝 그리고 지난 2013년 최고의 인디 모바일 게임 <플래피버드>를 만들었던 전설의 개발자 응우옌 하 동이었다.
응우옌 하 동은 평소 공개 석상에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다. 그가 연단에 섰던 것만으로도 하노이 공대는 들썩였다. <플래피버드>의 메가톤급 흥행 이후 응우옌은 종적을 감췄다. 갑자기 게임을 스토어에서 내렸고 대중들의 눈으로부터 멀어졌다.
응우옌 하 동은 1985년생으로 하노이 근처 빈푹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마리오 브라더스>를 즐기며 게임을 접하기 시작했다. 16살 때부터 체스를 직접 코딩하면서 컴퓨터와 만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응우옌은 게임보이를 살 여유가 없어 불법복제된 게임들을 구해 게임을 즐겼다고 한다. 당시 베트남에는 매우 흔한 일이었다.
어린 나이부터 게임과 컴퓨터를 즐겼던 그는 하노이 공대에 입학한다. 재학 중 참가한 프로그래밍 대회에서 입상하면서 당시 하노이에서 유일한 게임 제작 기업이었던 펀치 엔터테인먼트에 인턴십 제의를 받는다.
하지만 회사에서 만드는 게임에 흥미를 잃고 방황하던 중 아이폰을 만나게 되고 모바일 게임에 매료된다. 당시 응우옌이 즐기던던 게임은 <앵그리버드>. 그는 <앵그리버드>가 너무 복잡하다고 생각했고 더욱 조작이 쉽고 간단한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베트남이 낳은 역사적인 모바일게임 <플래피버드>는 그렇게 탄생했다.
<플래피버드>는 굉장히 캐주얼한 게임이다. 탁구공을 탁구채에서 떨어뜨리지 않고 계속 튕기는 게임에서 영감을 얻어 새를 안 떨어뜨리고 목적지까지 가는 간단한 게임을 만들었다. <앵그리버드>의 역기획으로 출발한 게임의 기틀은 2~3일 만에 잡혔다. 2012년 '닷기어스'라는 이름의 회사를 설립하고 첫 개발이 완료되었지만, 최종 스테이지가 너무 쉬워 난이도를 강화해 이듬해 5월 24일 정식으로 출시된다.
초반에는 큰 인기를 얻지 못한다. 인터뷰에서 응우옌 하 동은 자신의 게임이 실패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흥행은 벼락같이 찾아왔다. 2013년 11월, 레딧에 <플래피버드>가 재밌다는 리뷰가 올라온다. 2014년 1월에는 최고 게임 유튜버인 퓨디파이가 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극찬을 하게 된다. 그의 리뷰 영상은 한 달만에 540만 회 이상 조회를 기록한다.
이후 <플래피버드>에 엄청난 유저의 유입이 생기게 된다. 2014년 1월, <플래피버드>는 전 세계 애플 앱스토어에서 가장 많이 다운 받은 게임으로 기록됐다.
2주 후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서도 1위를 기록한다. 하루 5만달러, 연간 1800만달러 이상의 광고 매출과 5천만 다운로드, 53개국 앱스토어에서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한다. 아시아 모바일게임으로는 최초 기록이다.
구글의 CEO 순다 피차이가 베트남을 찾아 응우옌을 만났다. 2014년, 게임은 대박이 났고 여러 곳에서 이 성공신화를 보도했다. 한국 언론들도 <플래피버드>와 응우옌의 이야기를 전했다.
<플래피버드>는 베트남 출신 게임으로 전무후무한 흥행을 기록했다. 그렇게 응우옌은 베트남 인디게임의 전설이 됐다. 하지만 응우옌은 이같은 스포트라이트가 부담스러웠다.
2014년 2월 8일, 응우옌 자신의 트위터에 충격 발표를 한다. "22시간 후 <플래피버드>가 모든 스토어에서 내려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아이러니하게 트위터 발표 이후 게임이 삭제될 때까지 무려 천만 다운로드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의 이야기대로 2월 9일에 모든 스토어에서 <플래피버드>를 찾아볼 수 없었고 이후 <플래피버드>가 깔려진 핸드폰이 고가에 거래되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왜 갑자기 게임을 지워버린 것일까? 가만히 놔두어도 백만장자가 될 수 있는데 말이다. 한 매체의 인터뷰에서 그는 당시에 새로운 맥 컴퓨터를 구입하고 친구들에게 식사를 산 것 외에 크게 기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신문에 대서특필이 되기 전까지 그의 부모님도 그 사실을 몰랐을 정도였다. 온 언론이 그의 집에 몰렸고 집에서 몰래 나와 친구 집에 피신을 가기에 이른다. 응우옌은 과도한 관심에 숨이 막혔다.
또한 한 메시지를 받았는데 자신의 학교의 13명의 어린이가 <플래피버드>에 중독되어 결국 핸드폰을 망가뜨려버렸다고 항의하는 메시지였다. 그는 자신조차 중독적으로 플레이하는 게임을 사람들이 중독적으로 플레이하길 원하지 않았고 자신의 게임을 스스로 지우고 자신마저 존재를 감춘 것이다. 은둔과 잠적은 본인의 삶을 위한 선택이면서, 동시에 중독적 플레이를 거부하는 용단이었다.
그렇게 5년간 두문불출했던 응우옌이 하노이 공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응우옌은 아직 닷기어스의 CEO로 일하며 사회 공헌 활동을 하고 있다. 회사는 자신을 포함한 2명 규모. 그는 좌담회에서 인디 게임사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조용히 게임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다시 대담 현장으로 돌아가보자. 그는 대담에서 <플래피버드> 사건 이후 단기적인 성공에 취하지 않고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꿈꾸는 학생들을 돕기 위해서 인턴십을 운영 중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대담에 참석한 학생들은 응우옌에게 성공을 위한 조언을 기대했을 것이다. 프로그램 주제도 IT와 창업이었다. 그러나 그는 학생들과의 만남에서 조언을 주지 못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사람마다 처한 환경이 다 다를 것이기에 자신의 사례를 모두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는 것. 응우옌은 그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응우옌 하 동은 <플래피버드>로 거둔 예기치 못한 흥행을 포기하고, 세간의 스포트라이트까지 거부했다. 그는 자신의 성공신화를 자랑하지도 않으며, 후배들에게 조언도 하지 않는다. 응우옌은 오직 묵묵히 자신의 게임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응우옌과 닷기어스는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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