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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썸 Aug 25. 2018

실수투성이 사원

손만 대면 사고치는 마이너스손

1

혹시 내 손은 마이너스의 손이 아닐까?라는 진지한 질문을 나에게 한 적이 있다. 

내가 맡으면 항상 사고를 쳤기 때문이다. 두 번 세 번 확인해도 사고는 일어났다. 마치 잠잘 때 귓가를 맴도는 모기처럼 분명히 근처에 있는 것 같은데 도무지 잡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일이 너무 완벽하면 되레 겁이 났다. 이번에는 또 어디서 사고가 터질까. 


나의 첫 임무는 한국에서 온 손님을 픽업하고, 호텔로 안내하며, 저녁을 예약하는 것이었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첫 임무였던 나는 초긴장모드였다. 손님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공항으로 향할 때의 비장함은 흡사 전쟁터로 가는 군인 같은 비장함이었다. 처음으로 온전히 나에게 다 맡긴 임무였다. 긴장할 수밖에 없었고, 혹여나 실수를 할까 두 번 세 번 확인을 하였다. 의전을 담당하셨던 차장님도 불안했는지 나에게 카톡으로 보고 하라고 했다. 공항에서 손님을 놓칠까 봐 예상 도착시각보다 일찍 도착했음에도 지나가는 사람들을 계속 주시했다. 


호치민 떤셧넛 공항 도착장


다행히 손님들을 무사히 만났다. 회사 차량 기사를 불러야 했다. 공항에서 대기할 수 없어 근처에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화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해도 전화가 먹통인 것이다. 전화기에서는 알 수 없는 베트남어만 흘러나왔다. 손님들의 핸드폰을 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당황했지만, 손님들에게 기사가 공항 밖에 있으니 불러온다고 잠시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근처 유심 파는 통신사로 뛰어갔다. 공항에는 유심 팔고 있는 곳이 여러 곳 있어 찾는데 어렵지는 않았다. 


이유는 선불제 유심 때문이었다. 베트남에서 선불로 돈을 내고 요금제를 사용하고 있었다. 초과하거나 기간이 끝나면 충전해서 쓰는 방식이었다. 즉, 돈이 다 떨어져서 새로 충전해야 했던 것이다. 서둘러 충전하고 기사를 불렀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손님들을 픽업하여 무사히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2

일을 항상 잘 마무리했는가? 아니다. 사고를 더 많이 쳤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지만, 특별히 기억나는 것을 이야기하겠다. 


사장님이 한국 출장을 가게 되었다. 이사님께서 출장 시 숙소와 교통편을 나보고 예약하고 사장님께 컨펌받으라 지시했다. 호텔과 KTX를 예약하는 임무였다. 사장님의 마음에 드는 호텔을 찾기가 어려워 몇 가지 후보를 추려서 이사님께 보고를 드렸다. 이사님이 호텔을 정해주고 KTX와 버스는 내가 예약을 했다. 일정표와 호텔 정보를 요약하여 사장님께 컨펌을 받았다. 사장님 컨펌을 무사히 해냈다는 것이 뿌듯했다. 

사건은 일요일 아침에 터졌다. 일요일의 꿀 같은 늦잠을 자고 있었는데, 의전담당 차장님 전화가 왔다. 일요일에 무슨 일이지? 나는 최대한 잠을 안 자고 깨어있었던 것처럼 전화를 받았다. 


"예, 차장님 유영준 사원입니다. "


"유사원, KTX 예매 제대로 했어?"


"네? 제대로 했는데요?"


" 근데 왜 사장님이 KTX 예매 날짜가 잘못됐다고 하셔?"


"네?"


잠이 확 깼다. 


" KTX에 앉아 있는데 누가 자기 자리라고 물어봤대. 그래서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여긴 내 자리라고 하니깐 확인해보자는 거야. 표를 서로 확인해보니 사장님 표 예매 날짜가 다르네? 너 제대로 한 거 맞아? "


망했다. 

X나 망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사장님 표를 잘못 예매한 것이었다. 


" 어휴, 확인 안 해본 내 잘못이지. 화가 많이 나신 듯 하니 월요일에 무조건 잘못했다고 그래. "


차장님은 평소에 화를 잘 내지 않는 분이셨다. 천사 같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차장님의 분노가 여기까지 느껴졌다. 난 이제 죽었구나. 나 때문에 차장님이 혼이 나신 것 같아 일요일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다행히 사장님의 넓은 아량으로 신입의 실수로 끝이 났다. 별로 혼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덕분에 잠도 한숨 못 자고 괴로워했는데 지금도 사장님과 차장님께 감사드린다. 


사무실 내 자리 


3

이 정도 가지고 실수라고 물어본다면 지금껏 말했던 실수는 애교였다. 나는 부품업체를 찾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구글부터 알리바바까지 뒤지던 나는 우연히 한 중국 업체를 찾게 되었다. 중국 업체는 필요한 부품 중 상당 부분은 공급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사님께서는 이 중국 업체의 샘플 구매를 나에게 맡겼다. 계약서를 쓰고, 계약을 맺고, 발주를 하고, 금액을 보내고, 중국에서 베트남까지 무사히 물건이 올 수 있게 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을 내가 하게 되었다. 

물론 이사님이 도와주시기도 했고, 물류담당 과장님이 서류를 검토해주시기도 했다. 포워딩업체에서도 신경 써주었다. 하지만, 이 일의 담당은 나였다. 


물건을 보내기 전까지 모든 과정은 순조로웠다. 오히려 재밌었다. 신이 나서 일을 한 적이 얼마만일까. 그리고 너무 신이난 나머지 사고를 쳐버렸다. 


무역에서는 B/L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종의 물건의 민증이자 여권 같은 역할이다. 문서가 잘못되면 통관 시 매우 큰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B/L을 발행하기 전 샘플을 먼저 보내주어 양쪽에서 확인을 재차 하고 발행한다. 


사고는 B/L발행에서 일어났다. 우리 회사는 격주로 토요일 근무를 하였다. 사정에 맞게 근무를 조정할 수 있어 매주 출근하는 직원이 달랐다. 내가 출근한 토요일에 물류담당 과장님과 이사님이 출근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마침 B/L샘플을 중국에서 보냈던 것이다. B/L발행을 해야 하니 빨리 확인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B/L을 확인해주었다. 그전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B/L이 발행되고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보내는 업체란에 다른 업체의 이름이 있는게 아닌가. 


"과장님, 업체란에 다른 업체 이름이 있는데 이거 문제가 되나요?"


" 뭐? " 


알고보니 3자 무역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중국 업체에서 3자 무역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과장님께 확인받았으면 쉽게 발견할 문제였지만, 나 혼자 독단적으로 확인을 했던 것이 낭패였다. 덕분에 무관세 혜택을 받지 못하고 관세를 다 지불하게 되었다. 샘플 구매라 금액이 크지 않았던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이외에도 사소한 이메일 실수나 기타 실수들이 많았다. 셀 수가 없어 진작에 세는 것을 포기했다. 내일은 실수 없이 하루가 지나길 기도하며 출근했다. 신입일 때 실수와 사고는 일어나기 마련이다. 완벽한 신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실수를 발판 삼아 두 번 실수를 저지르는 일이 없어야 한다. 게다가 혼자 생각하고 판단하지 말고, 상사가 귀찮게 느껴질 만큼 물어보고 확인받아야 한다. 조금 일이 적응되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가장 위험한 때이다.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질문을 두려워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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