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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썸 Dec 05. 2018

퇴사 여행 in 사파

베트남 해외취업 생활기 

1. 가기 전에 퇴사 여행하자! 

퇴사 한 지 3주가 지났다. 처음에 익숙하지 않던 일상도 어느새 익숙해졌다. 퇴사 고민하던 지인이 퇴사 소식을 알려왔다. 서로의 퇴사를 축하하며 앞으로 멋진 미래를 응원하였다. 퇴사를 하고 난 이후 나는 실컷 놀고 있었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뭐랄까 한번 제대로 놀아보고 시작하자는 마음이었다. 

지인과 집 근처에서 커피 한 잔 하며 수다를 떨고 있던 날이었다. 지인의 하노이 시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중 문득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나 하노이는 한 번도 안 가봤지. 생각해보니 베트남에 1년 넘게 살면서 놀러 가 본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지인은 한국으로 돌아가기까지 한 달도 채 안 남은 상황이었다. 우리는 마지막 추억을 함께 하기로 했다. 퇴사 여행이라 이름 지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사파가 거론되었다. 

베트남 최북단 지역의 소수민족이 사는 곳이었다. 높은 고산지대에 위치한 사파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는 프랑스 사람들의 휴양지로도 유명했다. 색다른 베트남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지인이 1년 전 사파를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다고 한 번 더 가고 싶어 했다. 특히 베트남에서 가장 높은 판시판 산을 가보고 싶었다. (해발 3100미터 이상됩니다. ) 그렇게 퇴사 여행을 사파로 정하게 되었다. 


여행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함께 비행기와 숙박을 예약했고, 대략적인 계획을 세웠다. 빡빡하게 관광하는 게 아닌 여유 넘치는 힐링 여행을 주 테마였기 때문에 느슨하게 계획을 세우고 떠나기로 했다. 여행은 계획 세울 때가 가장 재밌다고 하지 않는가. 모처럼 설레면서 여행 준비를 하였다. 




2. 하노이 북한 식당 

사파로 바로 가는 비행 편은 없다. 호치민에서 하노이로 가는 비행기를 탄 후 하노이에서 사파로 가는 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하노이에서 사파까지 버스도 5시간 반 정도 걸린다. 버스는 슬리핑 버스이다. 누워서 갈 수 있게 만들어져 있어서 불편하지 않았다. 


하노이에서 1박을 하게 되었다. 지인은 이전에 하노이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내가 하노이에서 색다른 곳이 없냐고 물어보았다. 하노이에서 체류 시간이 길지 않아서 몇 군데만 구경하기로 했다. 


" 하노이에 북한 식당 있는데 가볼래?"


베트남에 북한 식당이 2군데 있었다. 하지만 호치민 북한 식당은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았다. 하노이만 남은 것이다. 마침 평창 올림픽 개막을 막 했던 시기였다. 민족 대통합을 위해 우리는 북한 식당을 찾아갔다. 북한에서 만든 평양냉면이 얼마나 맛있는지 궁금했다. 


도착한 북한 식당은 조용했다. 한국과 북한 분위기가 안 좋아지면서 손님들의 발걸음이 많이 줄었다고 지인이 이야기해주었다. 들어서자 누가 들어도 북한 사람인 줄 아는 북한말로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처음 보았을 때 종업원들이 정말 예쁜 분들이셨다. 남남북녀라는 말이 사실이었나. 남한의 남자 평균치를 깎아먹어서 새삼 미안했다. 


평양냉면을 시켰다. 대동강 맥주도 있다고 해서 한 병 시켰다. 북한 평양에서 직접 수입한 맥주라서 가격이 비쌌다. 한 병에 25만 동(1만2천원)이나 했다. 딱 한 병만 시키고 이후부터 4만 동(2천 원) 칼스버그를 시켰다. 


평양냉면 맛을 이야기하자면 정말 맛있다. 한국에서 먹던 냉면과 맛이 달랐다. 뭐라 정확히 표현하기 힘들지만 더 달고 맛있었다. 정말 평양냉면은 강추합니다. 반찬으로 나온 김치도 맛있었다. 아삭아삭한 것이 그냥 김치만 먹어도 훌륭한 안주가 될 것 같았다. 김치를 정말 많이 주셨는데 다 먹었던 기억이 난다. 대동강 맥주도 있다면 꼭 먹어보기 바란다. (없을 경우도 있다.) 한국의 맥주와는 비교도 안 되는 달달하면서 깊은 맛이 난다. 너무 쓰지도 않고 가볍게 마시기 딱 좋은 맥주였다.  


" 평창 올림픽 보셨어요? "


" 안봤습네다. 좀 보여주시와요. "


사람이 없어서 종업원들과 이야기를 조금 나눌 수 있었다. 평창 올림픽이 막 시작했고 남북한이 공동 입장했던 만큼 티브이로 보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전혀 보지 못했다고 했다. 핸드폰도 사용할 수 없고 식당에서는 북한 공연만 계속 흘러나왔다. 그래서 유튜브로 평창 올림픽 개막식을 틀어주었다. 또 김여정 부부장과 평양예술단 공연도 보여주었다. 김여정 부부장이 나올 때 종업원들이 경외와 존경의 눈빛으로 이야기하고 있다고 느꼈다. 예술단 사람들도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 들으니 정말 북한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구나 느꼈다. 


해외 북한 식당에 일하는 분들은 보통 3년 정도 일하고 북한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다시 돌아가면 어떨까. 올해는 남북한 공동 입장하고 정상회담을 하고 비핵화가 진행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화해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언젠가 다시 만나서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서로가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식당을 나섰다. 



2월의 사파는 너무 춥다.

3. 너무 추웠던 사파 

도착한 사파는 생각보다 훨씬 추웠다. 2월 초의 날씨는 영화 1,2도를 기록할 정도로 맹추위를 자랑했다. 1년 내내 30도 이상을 기록하는 호치민에서 갑자기 영하의 사파에 도착하니 죽을 맛이었다. 길도 비가 와서 그런지 얼어있었고 여기저기 눈이 쌓여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유명 휴양지였지만 비수기 시즌이라 사람도 적었고 문을 닫은 가게도 꽤 보였다. 


문제는 숙소였다. 베트남은 난방시설이 없다. 에어컨 온도를 높여서 따뜻한 바람으로 방 안을 데우는 수밖에 없었다. 하노이 호텔은 빵빵하게 따뜻한 바람이 나와서 편하고 아늑하게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사파 숙소는 따뜻한 바람이 나왔지만 방 전체는 여전히 추웠다. 


바깥은 더 추워서 사파에서 대부분의 시간은 카페에서 보냈다. 최대한 따뜻한 카페나 온풍기가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사파에 지내는 동안 숙소 안에서도 패딩을 입고 있는 웃지 못하는 풍경이 연출되었다. 겨울철 사파는 오지 마세요. 힐링하러 갔다가 혹한기 훈련을 찍고 왔습니다. 



4. 18세 당구 신동 

사파에 왔는데 밤에 술 한잔 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인과 괜찮은 펍을 찾아다녔다. 먼저 따뜻한 곳이어야 했다. 생각보다 따뜻한 펍을 찾기 매우 힘들었다. 사파는 작은 동네였고 많은 가게가 문을 닫거나 난방 시설이 전혀 없는 곳이 많았다. 어떻게 겨울을 보내는지 참 궁금했다. 몇 군데 찾다가 결국 숙소 근처의 한 펍을 들렀다. 난방 시설이 좀 덜했지만 속소 근처였고 그나마 다른 곳보다 나은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펍 한쪽에 당구대가 있었다. 차례를 기다려 나와 지인이 당구를 쳤다. 옆에 한 베트남 소년이 보고 있길래 같이 치자고 물어보았다. 생각보다 영어를 잘했다. 알고 보니 바로 옆 호텔에서 일하는 소년이었다. 올해 나이 만 18세. 일 마치고 여기에 항상 오는 것 같았다. 



일이 참 힘들 텐데 소년은 항상 쾌활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방실방실 웃으니 같이 기분이 좋아졌다. 독한 술을 마셔서 취기가 한 껏 올랐고 소년과 재밌게 당구를 쳤다. 생각지도 못한 인연의 만남이 혹한기 훈련이던 여행에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 소년을 만나기 전까지 우리는 힘든 날씨와 생각보다 조용한 사파에 실망해 있었다. 소년의 합류가 여행을 다시 즐겁고 재밌게 만들어 주었다. 



5. 베트남의 또 다른 모습, 라오까이 마을

사파는 관광지이다. 사파에서 소수민족 몽족을 보려면 소수민족이 사는 라오까이 마을로 가야 하는데, 사파에서 트레킹을 하며 마을을 돌아보고 오는 투어 프로그램이 있었다. 보통 자기가 묵는 숙소 프런트에 문의하면 친절히 투어 프로그램을 소개해준다. 여러 프로그램이 있는데 반나절정도 걸리는 투어를 선택했다. 호텔에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 가이드가 와서 이곳저곳 호텔 투어 신청자들을 모아서 함께 떠난다. 가격도 나쁘지 않으니 관심 있으면 이용해 보기 바란다. 개인적으로 만족했다. 


나를 데리로 온 분은 소수민족 복장을 하고 호텔 앞에 왔다. 투어는 총 10명이었다. 동양인은 나 혼자였고 대부분 서양인이었다. 가이드 분과 논을 지나고 산길을 지나며 지도에도 없는 길을 걸어서 마을로 향했다. 가이드 말고 다른 분들도 함께 걷는데 걸을 때 옆에서 도와준다. 이 분들은 마을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을 때 여러 가지 기념품을 판매하기 위해 옆에 따라붙어간다. 기념품은 안 사도 되니 너무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 기념품 판매가 마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진다. 


여름에는 논에 파랗게 자라서 멋진 풍경을 자랑한다고 했다. 하지만 2월의 사파는 수확이 모두 끝나서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논을 지나갔다. 비도 매일 와서 진흙이 되어서 걷는데 매우 힘들었다. 한두 분은 넘어져서 옷이 진흙으로 더러워지기도 했다. 


도착한 소수민족 마을은 꽤 규모가 컸다. 산을 내려오며 마을을 만날 수 있어서 위에서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다. 뭐랄까.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인 라퓨타의 마을처럼 산 골짜기에 드넓게 형성되어 있었다. 평화로운 마을을 지나면서 생각지도 못한 경외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사파에 오신다면 꼭 들러보시기 바랍니다.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경외심이 드는 곳입니다. 


6. 3000m의 위엄 판시판 

판시판도 호텔에서 예약했다. 판시판까지 가는 길이 택시를 타고 가는 수밖에 없었기에 택시와 판시판 티켓 결합상품을 구매했다. 찾아보니 호텔에서 예약한다고 더 비싼 것도 아니었다. 호텔에서 예약하면 택시를 그나마 믿을 만했고 호텔에서 타서 나중에 호텔로 돌아오는 것까지 이용할 수 있었다. 택시를 타고 판시판 케이블카까지 가면 된다. 택시 타면 보통 15분 정도 걸린다. 싸게 간다면 쎄옴 오토바이를 이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겨울철 오토바이는.. 


판시판은 세계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제가 다녀온 18년2월 가장 길다고 광고했었는데, 현재 푸꾸옥의 케이블카가 세계에서 가장 길다고 합니다. 참고로 판시판과 푸꾸옥 케이블카는 같은 회사입니다.) 를 타고 올라간다. 케이블카를 타면 인생에서 가장 높은 케이블카에서 아래를 바라볼 수 있다. 떨어지면 즉사할 것 같은 공포감이 든다. 산 위로 올라가는 케이블 카라서 옆바람이 세게 불었다. 올라갈 때 한 번 내려갈 때 한 번, 케이블카가 중간 멈추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무서운 소리를 내면서 바람이 거세게 부었다. 흔들흔들하며 흔들리는데 은근 스릴감 넘친다. 지릴 수도 있으니 주의하세요. 



판시판 정상에 도착하였지만 짙은 안개 때문에 주변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것도 다 천운인 것 같다. 최대하 점심 다되어가는 시간에 왔지만 거센 바람과 짙은 안개 때문에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내려와야 했다. 사진에서는 멋진 풍경을 있었는데, 안개때문에 보지 못해 매우 아쉬웠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겨울에 사파 오지 마세요.. 개고생 합니다. 



7. 장사하는 아기들 

사파를 구경하다 보면 소수민족 복장을 하고 이쁘게 꾸민 어린이들이 각종 액세서리나 기념품을 팔고 있다. 어린이들에게 약한 관광객들을 겨냥한 판매 전략이었다. 관광객들의 수입에 상당 부분 의존하다 보니 어린아이들까지 생존 전선에 나서고 있었다. 유치원 다니면서 친구들과 놀아야 하는 나이에 이 관광객 저 관광객들에게 다가가 물건을 팔고 있는 모습들이 안타까웠다. 


밤늦은 시간 지인과 술 한잔 하고 숙소로 돌아가던 중 쓰러져 있는 아이를 발견하였다. 나는 깜짝 놀라서 다가갔다. 눈이 내리는 추운 날씨에 혼자 쭈그려 앉아서 기념품을 팔고 있던 것이었다. 물건들을 보니 거의 팔지 못한 것 같았다. 하루라도 빨리 집에 가서 따뜻하게 지내라고 지인과 조그마한 인형 몇 개를 사주었다. 그제서야 일어나 짐을 싸 집에 가는 아이의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8. 영업이란? 

짧고 굵은 퇴사 여행이 끝이 났다. 지인은 먼저 한국으로 돌아갔고 나는 좀 더 베트남 체류하다가 한국으로 돌아갔다. 힐링을 하러 갔다가 오히려 극기훈련을 했던 여행이었다. 


" 넌 말을 많이 하거나 재밌게 하는 건 아닌데 영업을 그렇게 잘해? "


지인과 저녁을 먹으면서 물어보았다. 영업사원으로 실력 있는 친구였기 때문에 궁금했다. 평소 조용했고 분위기를 주도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나는 그동안 영업은 주도적이고 사교적인 사람이 천직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 내가 말을 많이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말을 많이 하게 해야 해. 나는 잘 들어주는 편이지 " 


지인에게서 영업의 비결을 들을 수 있었다. 잘 들어준다. 그러고 보니 나는 내가 분위기를 주도하거나 말을 많이 해야 직성이 풀렸다. 오디오가 비어 있는건 참을 수가 없었다. 영업은 그것과 별개였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것. 무엇을 좋아하는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잘 들어주는 것. 


그때 그 저녁 식사 이후 지인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누구보다 공감을 잘해주었고 잘 들어주었고 원하는 것을 잘 캐치하는 모습이 보였다. 자동차 몇 대 좀 팔고 주변에서 말 잘한다는 소리를 조금 들은 것으로 우쭐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단순히 그런 성격이기에 영업직으로 가야 한다는 1차원적인 생각을 했었다. 영업을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업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5일간의 퇴사 여행이 끝이 났다. 

지인은 한국으로 돌아갔고 나는 한 달 정도 더 체류했다. 

이제 정들었던 베트남과 이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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