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찾는 사람, 엄마를 찾는 우리

by 김영연

엄마는 늘 말했다.

“큰언니가 부모 맞잡이다. 여기까지 와서 언니를 안 보고 가는 법이 없지.” 구순을 바라보는 이모는 다리가 붓고, 몸이 불편했지만, 우리가 도착하면 언제나 제시간에 맞춰 한 상 가득 음식을 차려 주셨다. 돌아올 때면 옷, 신발, 과일, 반찬까지 손이 모자랄 만큼 이것저것 싸 주셨다. 데이케어센터에 갈 때 예쁘게 입으라고 하셨다. 용돈까지 쥐어 주시는 모습에, 엄마의 눈은 늘 빛났다.

엄마가 치매로 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모는 몇 번이나 몰래 눈물을 훔쳤다. 그래도 둘이 만나면 잠시나마 예전처럼 돌아갔다. 함께 찬송을 부르고, 어린 시절처럼 손뼉을 치며 짧게 춤을 추기도 했다.


이모 댁에서 돌아온 다음 날, 엄마는 다시 이모를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휴대폰 사용법은 거의 잊었지만, 신기하게도 이모의 번호만은 정확히 기억해 하루 종일 전화를 걸어 댔다. 이미 신호가 울리고 있음에도 연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버튼을 계속 눌렀다. 밤 늦게까지 이모에게 전화를 하거나, 엉뚱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기도 해서 결국 엄마의 휴대폰을 손가방에서 꺼내 안 보이는 곳에 두기로 했다. 사실 작은 손가방도 필요 없었다. 휴대폰도 잃어버릴까 걱정되고, 가방이 없어졌다고 찾느라 또 마음이 어지러울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머니에 손수건 하나만 넣어 드리게 되었다.


엄마는 휴대폰이 없는 사실을 서운해하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핸드폰이 없어서 아쉽다. 전화를 하고 싶은데… 남의 거 빌리기도 그렇고, 없으니까 남들 앞에서 기가 죽는다.” 그 말에 가슴이 저릿했다. 이제 휴대폰은 기능이 아니라, 존재의 체면이 되어 있었다.


엄마가 싼 가방은 늘 무거웠다. 휴지, 손수건, 양말, 팬티, 먹다 남은 음식까지, 온갖 것이 뒤섞여 들어 있었다. 엄마는 묵직한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곤 했다. 처음에는 길이라도 잃을까 가슴이 철렁했지만, 한 번 마음을 먹으면 엄마는 어디든 향했다.


명절 준비로 분주한 아침, 야채전을 부치려고 엄마한테 호박을 썰어 달라고 부탁했다. 칼을 잡은 손끝은 여전히 정확했고, 오랜 세월 쌓인 살림의 감각은 그대로였다. 그러나 내가 송편을 만들자고 잠시 등을 돌린 사이, 엄마는 또 조용히 집을 나섰다. 한 시간을 헤매고 나서야 경찰이 집까지 찾아왔다. 이번엔 울산에 있는 막내 동생에게까지 연락이 갔다고 했다.


그날 따라 비까지 내려 옷은 흠뻑 젖었고, 엄마는 젖은 옷을 갈아입자마자 다시 이모 집을 찾아가겠다며 문을 박차고 나갔다. 혜화문 가까이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오는 길은 제법 경사진 길이었다. 나가는 것만으로도 힘겨웠을거고, 돌아오는 길은 더 고단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결국 엄마는 그 경사에서 힘이 풀려 넘어지고 말았다.


안경 주변이 세게 눌려 얼굴이 상하고, 입 아래로 피가 줄줄 흘렀다. 안경알이 깨지지 않은 것이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피를 흘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엄마를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유진 아빠가 뒤를 따라갔지만, 넘어지는 순간까지는 결국 잡지 못했다. 처음엔 크게 다친 줄 알고 숨이 턱 막혔고, 긴 연휴 탓에 병원에도 갈 수 없어 서둘러 응급처치만 해야 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딱지가 조금만 올라오면 엄마는 손으로 다 뜯어냈다. 어느 날은 과일 깎는 칼로 연고를 상처 위에 바르고 있었고, 다른 날은 얼굴 가득 일본에서 온 동전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기도 했다. 상처에 습기가 차면 안 좋다고 아무리 말려도, 엄마는 마스크를 쓰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엄마가 나가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나갈 수 있는 문을 빨리 고쳐야 했다. 치매환자용 현관문 잠금장치를 검색하다가, 안에서도 밖에서도 잠글 수 있는 장치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알아본 즉시 설치를 했다. 그때 그 장치만 미리 알았더라면, 엄마가 집 밖으로 나가 다치고 고생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그 생각이 마음을 오래도록 아리게 했다. 모든 것이 처음이다 보니, 하나하나 서툴렀다.


엄마가 그때 다쳤던 일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집에 있는 동안 나는 늘 현관문을 안에서 잠가 두었다. 문을 열려고 하면 삑삑 소리만 났다. 그 소리 때문에 엄마는 문이 왜 안열리냐고 조바심을 내기도 했다.

“엄마가 자꾸 문을 만져서 고장이 난 것 같아요. 기사님 불러야 할지도 몰라요.”

나는 하는 수없이 그렇게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혹시라도 자신이 고장을 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 엄마는 밖으로 나가겠다는 마음을 잠시 접었다. 그 틈을 타 나는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밖으로 나가려는 생각을 잊게 만드는 것, 그것이 잠시나마 숨을 고르는 방법이었다.


하루는 아침에 잠시 유진하우스에 다녀올 일이 있어 현관문을 잠그고 나갔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보니 엄마가 없었다. 아마도 잘 못 잠구었던게 분명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급히 밖으로 뛰쳐나갔지만 이미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찾아 헤매다 저 멀리에서 엄마를 발견했다. 속을 가다듬으며 나 자신과 싸웠다. 당장 달려가 왜 나왔냐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꿀뚝같이 치밀어 올랐다. 가까이 다가가면서도 그 화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어디든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마음대로 가라며 소리를 치고 말았다. 엄마는 센터에 가려고 나왔다고 했다. 옥신각신했지만 엄마는 쉽게 발길을 돌리려 하지 않았다.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며 계속 걸었다. 나는 뒤에 숨어 따라다니느라 진이 다 빠졌다. 이웃동생이 와서 겨우 수습을 했지만, 엉망이 된 아침이었다.


잠금장치가 없던 때는 이런 날들이 허구한 날 반복되었다. 그때는 이 난리 속에서 사는 것이 일상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잠금장치 하나가 우리의 하루를 얼마나 평온하게 바꾸어 놓았는지, 요즘 들어서야 실감하고 있다.

잠금장치 덕분에 쉽게 밖으로 나가지 못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 사건 이후 엄마는 예전처럼 혼자 멀리까지 나서지는 않게 되었다. 사람들에게도 언니 집에 가려다 다친 적이 있어서 이제는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곤 했다.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치매는 언제든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아주 잠깐의 틈, 한순간의 방심이 또 다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 늦게, 그러나 뼈저리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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