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 그리고 엄마

by 김영연

아침마다 엄마와 산책을 하다 보면, 꼭 출근하듯 들르는 옷가게가 있다. 여든 넷의 주인 할머니는 노인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들을 평화시장에 직접 가서 사 오셨다. 값도 부담스럽지 않아 동네 할머니들이 오가며 필요한 것들을 한두 가지씩 장만한다. 가게 앞에는 제철 채소와 과일이 길가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이 동네에서만 오십 여 년을 살아오신 분. 동네 건물의 연혁부터 이웃들의 속사정까지 꿰고 있는, 그야말로 마을의 산증인이셨다.


엄마가 오시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곳을,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작은 경로당 쯤으로 여겼다. 길을 오가다 인사를 드리고, 신선해 보이는 채소 몇 가지를 사 오는 곳. 그 정도의 의미였다. 그러나 엄마가 서울로 오신 뒤, 그곳은 내게 가장 고마운 공간이 되었다. 모두가 엄마를 돌봐 주는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엄마 도우미 ‘일등 공신’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곳. 나 역시 자연스레 할머니들의 사정을 알게 되었고, 길에서 마주치면 이제는 누구 하나 낯설지 않은 얼굴들이 되었다.


그곳에 모이는 분들은 대부분 연세가 지긋하다. 엄마가 여든 일곱으로 가장 연장자이지만, 다른 분들도 대개 칠십에서 팔십대다. 혼자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분들이라 무료함을 달래려 이곳에 모인다.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또 나눔이 아직 가능한 몸이기에 모인다고들 하신다. 언젠가는 치매나 노환이 찾아올 것을 알고 있어서일까.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미래를 겹쳐 보는 듯, 안타까움과 연민이 고요히 번진다. 그 시선 속에는 두려움과 연대가 함께 있다.


엄마의 옛날 이야기를 수도 없이 반복해서 들으면서도, 처음 듣는 것처럼 맞장구를 쳐 주셨다. 딸을 힘들게 하지 말라고 한마디 해 드리면, 엄마는 “나는 하나도 힘들게 안 한다”고 서운한 듯 말씀하곤 했다. 그러다 누가 바른 소리를 하면, 엄마는 화가 나서 “갈 데가 있다”며 벌떡 일어나 나가버리기도 했다. 그럴 때는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때로는 그곳에 함께 앉아 시간을 보냈고, 급한 일이 있을 때면 엄마를 잠시 맡겨 둘 수 있는 작은 보호소 같은 역할도 해 주었다.


옷가게 할머니는 머리가 새하얗다. 나이는 엄마보다 서너 살 어리지만, 엄마는 언제나 그분을 어르신이라고 불렀다. 마치 더 연세가 많은 분이라도 되는 듯, “어르신 식사는 하셨습니까? 건강 잘 챙기셔야지요” 하며 걱정을 해 주었다. 할머니는 늘 마늘을 까며 이야기를 이어가기 때문에, 잠시도 손이 멈추는 법이 없다. 마늘과 파의 껍질을 벗겨 바로 요리에 쓸 수 있게 다듬어 팔기도 햇다.


할머니는 누구에게나 늘 맥심커피를 내어 주셨다. 엄마는 커피를 받아 마실 때마다 “이렇게 얻어먹어도 됩니까?”를 몇 번이고 되묻고는, “우리도 뭐라도 가져다 드려야 하는데…” 하며 마음을 놓지 못했다. 우리는 할머니께 꼭 필요해 보이는 것들을 챙겨 드리곤 했지만, 그 사실은 곧 엄마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래서 가끔 엄마 손에 무언가를 들려 드린 채 가게에 들어섰다. 엄마가 미안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가져다 드린 마음 역시 금세 기억 저편으로 흘러갔다. 할머니는 동네 분들이 앞다투어 커피를 사다 놓고 서로 나눠 마시니 괜찮다고 하셨다. 커피가 얼마나 많은지 커피가 든 봉지들을 보여주셨다. 그제야 엄마는 잠시 안심한 얼굴을 했지만, 고마움 앞에서는 늘 어찌할 바를 몰라 하셨다. 우리가 바쁘다는 핑계로 커피를 마시지 않고 나오는 날이면, 오히려 서운해하실 정도였다.


“유진이 할머니, 커피값은 모내기 해서 가지고 오세요.” 엄마의 모내기 이야기를 수없이 들은 터라, 할머니는 익살스럽게 그렇게 말을 꺼냈다. 그러면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모내기 이야기, 고구마를 얼마나 잘 캤는지, 논밭의 일들을 줄줄이 다시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면 할머니도 어린 시절 뱀을 잡던 이야기까지 꺼내며 아침부터 이야기판이 벌어졌다.

동네 할머니들이 모이는 참새 방앗간 같은 그곳, 어느새 우리 엄마도 그 무리에 자연스레 끼어 있었다. 잠시도 앉아 있질 못하는 엄마를 하민이 고모는 붙잡아 두고 온갖 재미난 대화를 이끌어 주셨다. 골목길을 함께 돌아 우리 집까지 모셔오는 분들도 있었다. 그들이 엄마의 손을 잡는 모습은, 오래전 돌아가신 자신들의 엄마를 대신 어루만지는 듯했다. 언젠가 자신도 노년의 시기를 맞게 되리라는 걸 알기에, 그들은 엄마를 애틋하게 보듬어 주었다.


아침마다 엄마를 모시고 옷가게 할머니 댁에 가는 걸 알고 있는, 이웃 해장국집 사모님은 우리가 모여 있는 옷가게로 어느새 달려오곤 했다.

“할머니, 센터 갈 시간이에요!” 엄마는 마시던 커피 잔을 들고 사모님께 내밀며 “커피 드세요” 나는 놀라서 잔을 빼앗듯 말했다.

“엄마, 그거 엄마가 마시던 거잖아요! 그리고 사모님은 커피 안 드신대요.”

그러자 옷가게 할머니가 “커피도 못 마시는 바보지 뭐!” 하고 농담을 던졌다.

엄마는 “바보라고 말하면 안 되는데…” 싶어 놀란 눈으로 우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분위기가 장난임을 알아채면 다시 웃음이 돌아왔지만, 엄마는 몇 분 뒤 또 잊고 커피를 권했다.

“엄마, 사모님은 커피를 안 드시는 바보시래요!” 그러면 모두가 깔깔 웃었다. 그러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에 빠지고 있으면, 시계를 보면서 해장국 사모님은 다시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센터 늦겠어요. 빨리 가셔야죠!”

엄마는 커피를 얻어 마시고, 잠시라도 그 곳에 있도록 해 주신 것이 너무 고마워서 인사를 극진히 한다. 그리고는 “좋은 하루되세요!”라고 인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허리 펴세요! 땅속으로 걸어 들어가시면 어떡해요? 땅 보지 말고 앞을 보세요!” 엄마의 걸음걸이를 마치 교관처럼 체크한다. 직접 시범까지 보이며 엄마의 자세를 바로잡아 주었다.


엄마는 그런 그들의 마음을 정확히 읽고 있었다.

“이 동네가 아직 정이 있네…”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그 속내의 따뜻함을 고스란히 감지하고 계셨다.

동네 할머니들과 이제는 이웃의 어머니가 되었다.

혜화동 이웃들은 어느새 또 하나의 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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