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생 용띠 오십의 문이 열렸다.

나 몇 살이야? 아직은 만 나이 마흔여덟 살 낭랑 오십살

by 곰스토리

25년 1월 1일 드디어 오십의 문이 열렸다.

처음 맞이 하는 오십이라는 나이에 어리둥절 이라고도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 나이 오십이라는 생각에 한동안 머릿속에 이해불가의 우울함과 알 수 없는 감정들이 함께 덮쳐오던 24년 12월을 보내고 첫날을 맞이한다.

아침을 먹고 조용히 책상에 앉아 “오늘은 책만 읽을 거야” 그렇게 말하고 들여다보는 책 속의 활자엔 오십이라는 글 귀가 하나도 없건만, 자꾸 읽혀 내려간다. “오십, 오십.. 오십” 얼마 지나지 않아 친한 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새해 인사로 우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장님”하며 끝에 콧소리에 음정을 넣어 한껏 올려 인사한다. 집사님였다가 언니였다가 때때로 상황에 따라 변하는 호칭에 서로 웃는다. 그리고 그 말 끝에 특유의 전라도 억양과 사투리가 익숙한 사이니 만큼 나는 “언니 나 오늘부터 오십 살이여”라고 책을 읽듯 말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곧 환갑이여”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호탕하고 시원하게 폭포수 같은 웃음을 터뜨렸다. 언니에 비하면 고작 오십 살인 나는 방금 전까지 오십여서 우울을 곱씹어 가던 내가 환갑인 언니에 대한 배려도 없이 웃음이 터진다고 웃는다. “하하하하하하 언제 내가 환갑이 됐는가 몰라 너도 인제 나이 먹었다”라며 우린 어이없이 터뜨리는 웃음 앞에 개그콘서트를 보는 것도 아닌데 그냥 서로의 말에 창자 속이 다 시원하도록 웃었다. 그 말이 그리 웃길 일인가?


그렇게 한바탕 웃고 나니 잠시 뾰로통하게 올라오려던 오십이라는 우울의 뾰루지가 사라져 버렸다. 우리 딸이 너무나 애정하는 뾰루지 패치는 며칠은 붙여야 낫는데 올라오려던 오십의 뾰루지는 언니의 호탕한 웃음과 한마디의 말로 커피잔의 설탕 한 스푼이 녹듯 조금씩 사라졌다.

피로가 풀리듯 한바탕 호탕한 웃음으로 조금은 오십과 친해진 느낌마저 들었다.

이제 곧 환갑 60세가 코 앞이라는 언니는 오십 살이 부럽다고 했다. 돌이켜 보니 마흔사십 대의 처음 시간이 삼십 대 이십 대 거슬러 올라가 보니 십 년의 구간마다의 내 감정선이 있었지만, 이토록 오십 세라는 구간에 묘한 기분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십 년 전 마흔의 초입에는 없었던 흰 새치가 이제는 앞머리 옆머리에 원래 있었던 것처럼 자리하고 있는 것 염색을 해야만 하는 헤어가 되었다. 또 십 년 전보다 몸무게는 거의 16킬로가 더 나가는 놀라는 체중의 변화도 한 몫하고 말이다. 지난해는 더 이상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 싶어 체중조절에 신경을 쓰고 있지만 그 덕인가 6킬로 그램을 감량했다. 그래도 갈길이 먼 건 내 몸이 증명하고 있다.


70, 80, 90을 맞이하는 어른들은 오십쯤이야 어린아이로 보인다고 했다. 나는 더 오래 살고 싶어서라기보다 지나온 세월에 대한 그리움 같은 후회 같은 미련 같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아쉬움들이 우울의 싹을 띄우려고 했던 것이다. “나는 곧 환갑이여”라는 말도 호탕한 성격을 가진 늘 웃을 수 있게 말해주는 언니가 있어서 참 감사했다. 그리고 웃던 중 무의식 속에 일깨워준 건 나는 아직 환갑이려면 10년은 남았으니 그간의 삶을 잘 꾸려나가야 한다는 아직 활발한 생의 길을 개척할 수 있다는 생각이 또 힘이 되어준 것이다.

그랬다 경로대학 어르신 중 한 분은 내가 결혼도 안 한 처녀인 줄 아셨다며 올해 막내 녀석의 군입대를 앞두고 있다는 말에 깜짝이나 놀라신 분이 계셨다. 10대부터 90대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함께 살아가는 사회 속에 50이라는 나이는 딱 중심이다. 그 나이를 걸고 살아야 하는 그 중심에 있다. 그 중심을 잘 잡아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나 역시 내가 살아온 삶의 경험을 나눌 수 있게 살아내야 한다는 부담도 하나 더 생겼다.


하루하루에 감사하며 살아내는 오십이고 싶다. 눈치 보지 않고 남들과 비교하지 않으며 나다움의 삶을 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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