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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스토리 Jan 30. 2024

삶을 정리하듯 이삿짐 정리를 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많은 걸 버리고 줄였고, 마음의 짐도 줄였다.


내가 사는 곳은 제주다. 누구나 한 번쯤은 살아보고 싶은 곳 제주에서 8년째 살고 있다.

나는 제주는 여행하는 곳이지 사는 곳이 아니라고 늘 내 머릿속에 달고 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이 6개월만 일하고 온다더니 1년을 살고 3년을 더 살며 일하던 곳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총 4년을 살며, 제주로 온 가족이 이사를 가느니 마느니를 4년을 이야기하며 살아온 것이다. 그러다 결국 남편을 따라 제주로 입도를 했다. 오랜 기간 살던 곳을 정리하고 옆동네도 아닌 물 건너 바다 건너 이사를 결정하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사후 나의 글쓰는 공간 (기쁨)

그리고 7년을 살면 총 2번의 이사를 했고, 이번이 세 번째 이사다. 포장이사가 아닌 일반이사를 선택했던 이유가 제주에 올 때만 해도 초중학생 아이들이어서 포장이사를 했지만, 이제 다 큰 아이들이 있으니 그 아이들 믿고 집안 정리도 할 겸 일반이사를 선택했다. 그런데 나의 큰 오산이었음을 이사 내내 알 수 있었다. 친구 만난 다고 나가고, 중요한 일이 있어 나가고 장정 같은 아이들의 큰 도움을 기대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삿짐을 싸는 과정부터 푸는 과정까지 모두 나의 몫이었다.


짐을 싸는 과정에서도 버릴 수 없어 가지고 있던 짐들을 많이 버리거나 당근에 나눔을 하고 팔기도 했다. 그럼에도 짐은 꽤나 많았다. 아이들이 정리하지 못하는 이유도 본인 물건을 제외하고 모두가 내 살림이라는 점이다. 창고에 두었던 묵은 짐들을 다 꺼내고 버리고 하며 생각해 보았다. 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 혹은 2-3년에 한 번 쓴 물건들, 혹은 쓰지 않은 만료된 냉, 온정수기를 육지에서부터 가지고 온 이유도 참 아이러니 했다. 결국 새로 정수기 설치를 했었고 미니멀 혹은 새는 돈을 막는다며 정수된 물을 받아서 냉장고에 넣어 먹겠다고 실천하고 있고, 온수는 잠시 끓여 먹으면 되니 상시 돌아가는 냉, 온정수기를 선택하지 않은 알뜰함 이면에 창고에 묵은 제주에 이사오며 떼 놓은 냉, 온 정수기는 잠자고 있었던 일을 모르지 않았지만 모른 채 살았다.

결국 폐가전 무상수거에 연락해 버렸다. 더 써도 되는 것이었지만, 정수기 회사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약정 5년이 지나면 필터만 갈아주면 되는데 그때부터는 소유가 된다는 말에 5년을 쓰고 나니 타 회사로부터 이리저리 따져가며 돈이 더 드는 것이니 새로운 정수기 상품으로 갈아타라는 솔깃한 꼬임에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버리지 못한 폐가전이 되어 창고에 박힌 물건이 된 것이다. 다행히 무상수거라는 시스템 덕분에 가전만큼은 폐기물 비용이 들지 않았다.


버리는 물건들을 보면서 집을 비워내는 것도 좋지만, 환경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폐기물 비용이 많이 든다며 투덜거리며 돈 주고 버리는 쓰레기를 구매한 것 같은 기분과 더욱 뜨거워져 가는 지구에 대한 불편한 마음 한편이 서늘했다. 살면서 나오는 생활 쓰레기도 되도록 만들지 않기 위해 애쓰는 반면에는 집에 쓰지 않는 물건들을 쌓아두고 살고 있었다. 몸이 커져 작아진 옷가지들을 언젠가는 입겠지 하며 진열해 두고 바라만 보며 살아온 것도 참 모호한 감정이 이삿짐 정리를 하며 드는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버리지 못하는 것들도 있었으니 하나라도 더 싸가기 위해 남겨진 것들도 많았다. 아이들의 상장과 상패들, 그리고 함께 울고 웃었던 딸아이의 운동선수생활 중의 메달들은 버릴 수가 없었다. 아이는 보자마자 "그냥 버려"라며 미련도 없고 쿨했지만, 나는 왜 미련이 남아있는지 또 주섬 주섬 챙겨 넣어 충분히 추억하고 보내 주길 바라는 마음에 넣어 두었다. 그렇게 넣어둔 짐들도 꽤 있다는 점이다. 싱크대 밑에 고이 넣어둔 그릇들은 코로나 이후로 근 몇 년간 그릇 숫자만큼의 사람들이 초대되어 진적이 없었다. 북적이며 식사 한번 하지 않은 채 수년째 잠자고 있던 그릇들을 보며 이걸 다시 이삿짐에 넣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버려진 오랜 가구들.. 짐들

요즘엔 예쁜 그릇들이 얼마나 많은지 내가 가진 그릇들은 모두가 촌스럽고 예스럽다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결혼 전부터 20년도 넘은 그릇들이다. 언니가 시집가면 주겠다며 상술의 꼬임에 넘어가 수개월을 매달 5만 원여씩 값아가며, 산 행남 자기와 크리스털 그릇들을 결국 내가 먼저 시집을 가게 되어 가지고 왔다. 나름의 추억이 있는 그릇 같아 또 싸고 있는 나를 본다. 이사 가는 집에는 이웃들을 초대해 부디 저 그릇을 들을 펼치고 식사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쌌다.

언제부터인지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박박 문질러 닦지 못한 냄비들을 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버리지 못했다. 유일하게 시어머니의 유품처럼 남겨진 어머니가 주신 냄비들이었기 때문이다. 깨끗이 닦았쓰면 된다는 생각에 이삿짐에 싸두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유들로 버리지 못하는 짐 들과 함께 이사를 했다. 이전에 살던 집보다는 조금 넓어진 공간도 있지만 좁은 공간도 있어서 좁은 공간에 대한 수납 걱정을 했다. 엄청 많이 줄인 짐들이지만 그래도 많은 짐들이 집안 이곳저곳 수납공간에 들어가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사를 하고 일주일도 안되어 집 정리가 되어 가고 집안을 빙 둘러보며 생각해 보았다. 굳이 이런 짐들이 필요했던가? 없어도 되는 것들이 아닌가? 크게 불편하지 않은 것들에 너무 안일하게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우리 집에 들고나가는 모든 물건들은 값을 지불해야 했고, 나는 또 값을 지불하고 버리고를 하고 있는 나를 보며 이제는 조금 더 단단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들여오기 전에 얼마나 쓰일지에 대한 생각을 하며 들여야겠다는 마음이다. 비워내니 홀가분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비워야 할 것들이 많이 있다. 천천히 나와 그 물건과의 추억 혹은 냉정한 마음으로 정리하며 조금씩 더 비우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참 이상했다. 이전의 이사하던 때와는 다른 마음이 들었으니 말이다.


이전의 이사들은 아이들이 어렸고, 행여 하나라도 빠질까 봐 아이들의 물건도 버리지 못하고 챙기던 내 모습과 지금은 아이들이 다 커버렸고, 그 아이들의 물건은 장성해서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을 정리하기도 했으며, 오래된 물건을 무조건 버리기보다 낡고 불필요한 내 관습들을 정리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또한 집안을 관리하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리였다. 깔끔하게 정리되고 보니 내 마음도 머릿속도 정리가 되었다. 요즘은 내가 일하는 곳을 하나씩 정리 중에 있다.

혹시라도 내가 없더라도 투명한 업무를 위해 내가 처음 인수인계받고, 힘들었던 시간들을 생각하며 언젠가 내가 그만두더라도 쉽게 찾아서 일할 수 있도록 사무실 환경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정리 중이다. 삶이 구차히 많이 복잡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요 이상의 소비를 줄이고, 꾸준한 정리를 통해 가벼운 삶이 가능하다고 생각이 들어졌기 때문에 더욱 가볍기 위해 계속 정리해 나갈 생각이다. 마치 삶을 정리하듯 비우고, 채움에 대해서는 한 번 더 생각하며 행동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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