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에 출간된 <어린 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는 하늘에서 사라졌다. 1944년 7월 31일 그는 지중해의 정찰 임무를 받고 이륙했다. 위험한 정찰 비행을 하러 떠난 그는 예정된 시각에 귀환하지 않았다. 그날 생텍쥐페리는 아내 콘수엘로(Consuelo)를 홀로 남겨두고 영원히 사라졌다. 그의 나이는 44세였다.
사람들은 행방불명된 생텍쥐페리는 책의 내용처럼 사막에 불시착해 어린 왕자를 만났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그는 어린 왕자와 함께 긴 여행길을 떠난 것일지 모른다는 상상의 그림을 그려보는 사람들도 있다. 나 또한 그들 중에 한 명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장미꽃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다시 장미꽃이 있는 별로 돌아간 어린 왕자처럼 언젠가는 내 남편도 나를 데리러 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그렇게 나는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오로지 마음으로만 보아야 볼 수 있다’는 문장의 의미를 곱씹고 또 곱씹어 보기도 했다.
오늘 나의 마음을 움직인 에피소드는 바로 생텍쥐페리 아저씨와 어린 왕자가 처음 만나는 장면이다.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해 홀로 고장 난 비행기와 씨름하고 있는 아저씨에게 들려온 소리. “양 한 마리 그려줘!” 해 뜰 무렵에 들려온 이 소리에 아저씨는 기겁했다.
“양 한 마리 그려줘!” 어린 왕자는 처음 보는 아저씨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떼를 썼다. 그리고 아저씨는 어설프게 양을 그려 어린 왕자에게 건넸다. 하지만 까다로운 어린 왕자는 아저씨가 그려준 양의 모습을 보고 병든 양은 싫다며 거절했고 다음 그림에는 뿔이 난 숫양이라 안된다며 거절했다. 그리고 또 다른 그림에는 너무 늙었다고 거절하며 오래 살 수 있는 작은 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거절에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아저씨는 작은 상자를 그려주며 네가 원하는 양은 그 안에 있다고 말했다.
그 누구도 볼 수 없는 양의 모습. 하지만 그 상자 안에 있는 작은 양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어린 왕자의 마음. 다행히 생텍쥐페리 아저씨는 그 상자 그림으로 어린 왕자의 부탁을 완벽하게 들어줄 수 있었다.
나는 이 에피소드를 생각할 때마다 남편의 부탁이 떠올랐다. “글 써줘!” 한 동안 남편은 나에게 글을 써달라고 어린 왕자처럼 보챘다. 결혼 후 나는 남편이 출근하면 가끔 남편에게 짧은 글을 메일로 보냈다. 때론 편지 형식으로 때론 대화 형식으로 쓴 짧은 글들이었다. 내가 보낸 글들을 좋아했던 남편은 글을 자주 보내지 않는 나에게 부탁했다. “글 써줘!”라고.
남편에 의하면 나의 글은 프랑스인들의 표현방식과 달라서 좋다고 했다. 하지만 내 생각엔 직장에서 매일 반복되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잠시 웃을 수 있는 순간을 선물한 짧은 글. 남편은 아내의 농담이 담긴 이 짧은 글을 읽으며 웃을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내 글을 읽을 때 순간의 행복을 느낀 남편. 나는 그 마음을 알면서도 남편의 부탁을 잘 들어주지 못했다.
남편이 떠난 후 30년 동안 멀리했던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남편은 내 그림을 못 보고 떠났다. 요즘 나는 가끔 생각한다. 만약 남편이 내 그림을 보았다면 어땠을까. 환하게 웃으며 좋아했을 남편을 가끔 상상해 보곤 한다. 그리고 문뜩 이런 생각도 해본다. 혹시 남편의 부탁이 “글 써줘!”가 아닌 “그림 그려줘!”로 바뀌었을까?라고.
나는 오늘도 후회한다. <짧은 글>과 <그림>으로 남편에게 소소한 행복을 선물할 수 있었는데 그것을 못했다. 안타깝게도 환하게 웃는 남편의 모습을 더 볼 수 있는 기회를 나는 많이 놓쳤다. 작은 행복을 함께 나눌 수 있었던 시간들. 그 소중한 시간들을 놓친 것이 너무나 후회스럽다.
남편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은 내가 너무나 밉다. 깨달음은 늘 한 발자국 뒤에 서있나? 아닐 텐데 나에겐 그랬다. 그리고 아마 지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