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만난 건 무더웠던 한겨울의 방콕에서였다.

by 윤민하




얼마 전 카카오톡의 메인 화면의 생일 알람에서 반가운 이름이 눈에 띄었다.



"여행 멘토"



그간 연락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미루고 미루다가 이번 기회에 생일을 빌미로 연락을 드렸고 안부를 묻는 대화를 나누다 문득 그 시절이 생각났다.








26살의 12월 19일, 대학교 3학년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고 나는 방학식날에 맞춰 태국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여행 경비를 모으기 위해 출국 전날까지 알바를 해서 인지, 첫날부터 차가운 공항 바닥에서 노숙을 해서 인지 태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몸살감기로 앓아누웠다. 거기에 물갈이까지 더해져 도미토리 침대에 누운 채 쓸쓸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집 나와서 아프면 서럽다던데 사실 집에서도 아프면 서러운 건 마찬가지지만 타국의 도미토리 화장실에서 변기를 잡고 구멍이란 구멍에서 모든 걸 쏟아내고 있다는 이 현실이 조금은 슬프게 다가왔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나는 숙소를 카오산으로 옮겼다. 정확히 말하자면 카오산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인데 나는 이 동네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처음 태국으로 배낭여행을 떠나왔을 때 카오산은 초보 배낭여행자인 나에게 있어 성지 같은 곳이었다. 저렴한 물가, 각종 편의 시설, 유흥이 넘쳐나는 밤거리, 방대한 여행 인포메이션 등등 전 세계 모든 배낭여행객들이 모인다는 카오산으로 가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땐 배낭여행자라면 당연히 카오산의 중심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년간의 경험으로 보아 시끌벅적하고 지저분한 카오산에서 머무는 건 초보 여행자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름 중수(?) 여행자의 수준에 올라선 나는 더 로컬스럽고 조용한 동네를 찾아다녔고 결국 이 동네에 정착하게 됐다. 이 동네의 중심엔 시청이 있어 치안이 나름 안전하고 또 저렴한 로컬 맛집이 많다. 여전히 태국에 가게 되면 이 이름 모를 동네에 숙소를 잡고 방콕 살이를 시작하곤 한다. 이 동네에서 무려 4천 원밖에 안 되는 저렴한 도미토리를 찾았는데 심지어 조식까지 포함된 가격이었다. 다만 14인실이라는 게 조금 흠이었지만 누울 곳만 있으면 숙소 컨디션 따윈 크게 상관없는 나에게 별로 문제는 아니었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배정된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방안을 가득 채운 퀴퀴하고 시큼한 냄새가 내 코를 찔렀다. 두시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방 안 곳곳에는 옷가지를 걸 수 있는 공간이라는 공간마다 속옷이나 양말들이 빽빽이 널어져 있었다. 빨래를 안 해서 나는 냄새인지 잘못 말려서 나는 냄새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많은 숙소들이 그렇듯 클리닝 타임에는 에어컨을 가동해놓지 않는데 그래서인지 방 안은 더 꿉꿉하고 눅눅했다. 이 시간에 기댈 수 있는 건 천장에서 금방이라도 떨어져 버릴 것처럼 달달달 소리를 내는 조그만 선풍기뿐이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그랬던가,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 시큼하고 퀴퀴한 냄새도 적응이 됐고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14인실 도미토리인 만큼 도난의 위험성이 있기에 적당히 짐을 풀어놓고 낮잠을 잤다. 어차피 이 시간의 방콕에선 밖에 돌아다니는 게 더 고생이다. 방콕의 더위는 꺾일 줄 몰랐다. 답답함에 뒤척이다 잠에서 깬 나는 내 머리 위 침대에 있는 까무잡잡한 한국인 아저씨를 만났다. 한눈에 보아도 여행력이 엄청나 보이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었고 로비에 앉아 호스텔에서 프리로 제공하는 커피를 마시며 시시콜콜한 여행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얼핏 봐도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보이는 그를 나는 형님이라고 불렀다. 형님은 베트남 다낭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했다고 했다. 이맘때쯤 한국의 저가항공들이 베트남으로 신규 취항을 하면서 베트남 항공권이 저렴했었는데 이때 베트남에서부터 동남아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을 많이 만났었다. 형님은 방콕에서 날씨를 보며 재정비를 하고 꼬 수린이라는 섬으로 들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살면서 전 세계에 있는 수많은 바다들을 다녀봤지만 수린 섬의 바다가 세계에서 제일 예뻤다고 했다.






형님은 일찍부터 여행을 시작했다고 했다. 유럽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까지 전 세계를 발 닿는 곳까지 열심히 돌아다녔다고 했다. 심지어 지금은 분쟁 중이라 여행 금지 지역인 아프가니스탄에도 가봤다고 했다. 형님은 핸드폰을 꺼내 여행의 증표와도 같은 구글맵 지도를 보여주었다. 핸드폰 화면 속의 세계지도 곳곳엔 수많은 별들이 빽빽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그중 가장 좋았던 곳을 이야기해달라는 나의 질문에 형님은 고민 끝에 이란의 어떤 도시와 인도 북부의 한 도시를 추천해줬다. 나에게 여행 이야기를 하는 내내 그의 눈은 나보다 더 젊고 밝고 또 영롱하게 빛이 났다. 살면서 내가 나의 눈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은 많이 없지만 아마 나도 여행 이야기를 할 땐 저런 눈을 하고 있겠지 라고 생각했다. 이 많은 곳을 다 가봐서 정말 부럽다는 나의 말에 넌 그만큼 아직도 갈 곳이 이렇게나 많다는 게 더 부럽다는 그의 말이 돌아왔다. 그럼에도 난 그가 부러웠고 또 한편으론 질투가 났다.












형님과 가까워진 나는 며칠간 형님을 졸졸졸 따라다녔다. 형님이 해주는 더 넓은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게 너무 재밌었다. 세상엔 안 가본 곳들이 너무나 많았지만 나에겐 아직 젊음이 있었다. 우리는 형님이 자주 다니는 로컬 식당에서 30바트 짜리 볶음밥을 먹었고 다시 호스텔로 돌아와 프리 커피를 마시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수다를 떨었다. 서로 좋아하는 외진 골목의 재즈바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데려간 재즈바가 형님도 나를 데려오려 했던 곳이 이 재즈바라는 말에 우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었다. 주머니가 가벼운 나에게 조금은 값비싼 맥주 한 병을 나는 아끼고 아끼며 홀짝댔고, 아쉬움에 빈병만 힐끔힐끔 바라보는 나를 딱하게 여겼는지 형님은 언제나 맥주 한 병을 더 시켜주셨다.








한 번은 숙소로 돌아가던 중 길게 늘어선 식당 대기 줄을 본 적이 있다. 그곳은 팁싸마이라는 방콕의 유명 팟타이 집이었다. 한참 페이스북에서 ‘어디 가면 꼭 가봐야 할 것 10’ 같은 영상들이 유행하던 시기였는데 얼핏 방콕을 소개하는 영상에서 이 팟타이 집을 본 것 같았다. 나는 이런 종류의 영상을 싫어했다. 가봐야 할 곳, 먹어야 할 것 천지인 여행지에서 ‘꼭’ 가봐야 하고 ‘꼭’ 먹어야 한다는 것들을 순위 매겨 여행의 다양성을 반감시키고 마치 그것을 하고 오지 않으면 여행을 제대로 하고 오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다 똑같은 여행을 하고 인증샷을 남기느라 바쁘고 소위 찍고 도는 여행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팁싸마이가 형님과 나의 궁금증을 샀던 이유는 그 식당 대기 줄이 순수 관광객들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라 현지인들도 조금씩 섞여있다는 거였다. 아니 팟타이가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길래 현지인들도 저렇게 줄을 서는 걸까 이야기하며 자연스레 우리도 그 틈에 섞였다. 항상 대기 줄이 긴 맛집에 오면 이렇게 굶주렸다가 먹는데 뭔들 맛이 없겠냐는 생각을 했다. 대기 줄은 적당한 간격으로 조금씩 줄어들었고 어느새 우리는 가게 앞까지 올 수 있었다. 가게 앞은 포장 손님들과 종업원들로 분주했고 그 옆에선 요리사들이 구슬땀을 흘려가며 열심히 팟타이를 볶고 있었다. 요리사는 무심한 손길로 후루룩 양념을 쳤고 제법 현란한 솜씨로 철판 위에서 팟타이를 볶아 냈다. 대기하던 손님들의 눈길이 일제히 철판 위로 쏠렸다. 노란 계란 옷을 입은 빛깔 좋은 팟타이가 그릇 위에 정갈하게 올려져 매장 안으로 입장하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군침을 삼켰다.








길에서 먹는 팟타이보다 두 배가 넘는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우린 기본 팟타이와 왕새우 팟타이 두 개를 주문했다. 오랜 기다림에 허기지기도 했고 또 언제 이런 곳에 오겠냐며 배부르게 먹자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테이블마다 올려져 있는 오렌지 주스도 하나씩 주문했다. 주문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테이블 위엔 팟타이가 올라왔다. 우린 각자의 기호에 맞춰 땅콩과 칠리소스를 팟타이 위에 뿌렸다. 나는 개인적으로 땅콩과 고추 가루만 넣어 먹는 걸 선호한다. 라임은 싫어.





우린 팟타이를 입에 넣자마자 서로 짜기라도 한 듯 음~ 이라는 미적지근한 감탄사를 동시에 내뱉었다. 생각보다 괜찮은데?라는 말은 생각보다 괜찮지 않다 라는 말과 동의어다. 가게 앞에서 기다리며 허비한 시간들과 이 가격이면 더 맛있는 팟타이가 몇 그릇이야 라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배했지만 그 시간들과 비용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나는 생각보다 맛있고 생각보다 괜찮다 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제까지 노점에서 먹어왔던 팟타이보다 많이 달았는데 아마 관광객들의 입맛에 맞추려다 보니 이렇게 달아지지 않았을까 싶은 나름의 추측도 해보았다. 그러나 정말 놀랐던 건 오렌지 주스가 진짜 맛있었다는 거다. 이제까지 한국에서 먹어왔던 오렌지 주스에 사기를 당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는 오렌지 주스 맛집이라는 의외의(?) 결론을 내린 채 아쉬움을 남기며 숙소로 돌아갔다. 그래도 궁금증은 해소하지 않았냐며, 안 가고 후회하는 것보다 가보고 후회하는 게 낫지 않냐며 서로를 위로했다.






로컬 교통을 이용해 메끌렁 시장에 다녀오던 길








로컬 교통을 이용해 메끌렁 시장에 다녀오던 길








다음 여행지가 미얀마라는 나의 말에 미얀마 여행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으셨다. 어느 나라건 어느 도시건 이야기가 나오면 그곳에 관련된 에피소드가 술술 나오는 게 참 신기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이때 당시엔 미얀마가 국경을 개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여행의 인프라가 좋지 않았고 아직은 혼자 여행하기에 조금 벅찰 수도 있다며 B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기회가 된다면 B와의 에피소드도 써보도록 하겠다.) 도미토리가 많이 없어서 숙박비도 아낄 수 있고 교통비도 아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12월 30일, 나는 동남아 여행을 하던 군대 동기와 만나 함께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카오산 중심 쪽으로 숙소를 옮기면서 형님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나는 동기를 만나 카오산로드의 수많은 인파 속에서 해피 뉴 이어를 외쳤고 럭키비어에 가서 밤새도록 춤을 추며 놀았다. 작년에 이어 새해를 해외에서 맞이한 나는 새로운 마음으로 미얀마 여행의 첫 도시인 ‘양곤’행 비행기에 올랐다. 모든 게 낯설고 두려운 미얀마에 덩그러니 놓인 나와 인터넷이 통하지 않는 수린 섬에 들어간 형님과는 그렇게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가끔 그 시절이 생각난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나에게 아직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우리는 띠가 두 바퀴나 돌 정도의 나이차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곳을 여행하고 있는 여행자라는 공통점 하나로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는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을 가졌고,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을 살아왔고, 내가 닮고 싶은 모든 모습을 하고 있었다.







형님은 4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올 겨울에 동남아 여행을 꿈꾸고 계신다. 혹시 겨울에 동남아에 나가게 되면 연락하라고, 맥주 한 잔 하자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