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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은 Mar 12. 2022

"춥고 배고파도 연극을 할 거야."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연기와 영화, 연극에 관심을 가졌다. 영화관에서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마치 스무 살이 되는 해의 1월 1일과 같았다. 물론 15살의 나는 20살의 1월 1일이란 건 알지 못했지만. 주 2-3회는 영화관에서 가서 영화를 봤다. 새로 나올 영화의 개봉일을 줄줄 꿰고 있었고, 개봉하자마자 관람했기에 스포를 당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재미가 있건 없건 상영 중인 영화를 전부 다 봤다. 너무 자주 영화관에 간 탓에 더 이상 볼 영화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때 넷플릭스가 있었더라면 아마 난 영화를 업으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영화관을 들락거리다가 TV로 눈을 돌렸다. 당시 OCN에서 꽤 작품성 있는 드라마를 하고 있었는데 첫 화를 보자마자 그 드라마와 주인공 배우에게 푹 빠져버렸다. 봤던 회차도 몇 번이고 다시 봤다. 배우의 연기가 연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그 사람 같았다. 누군가가 만든 글 속의 인물이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어딘가에 저렇게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작품을 보며 처음으로 연기라는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작은 씨앗이 심겼다. 하지만 확신은 없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지원서를 쓸 날이 왔는데, 예고 연극영화과에 지원을 할까 하다가 매번 바뀌는 내 관심사가 또다시 바뀔까 봐, 그래서 연극영화과에 간 걸 후회하게 될까 봐 지원하지 않았다.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다.


고등학생 때, 그 드라마의 주인공 배우가 대학로에서 연극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곧바로 티켓을 예매했다. 예매하는 방법도 잘 몰라서 예매 완료가 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자리도 무대와는 거리가 먼 뒷자리였다. 그래도 너무 신나고 기분이 좋았다. 그 배우를 실제로 볼 수 있다니, 그 배우가 내 눈앞에서 연기하는 걸 볼 수 있다니! 처음으로 혼자 연극을 보았다. 그날 본 그 연극이 무슨 내용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엄청 좋았던 기분만 기억이 난다. 들뜬 그 마음만, 내가 바라본 그 시야 그대로의 무대만이 기억이 난다. 어두운 객석에서 바라본 빛나는 그 무대. 그렇게 연극은 나의 꿈이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1학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2월 말, 나는 혼자서 입시 연기학원에 상담을 받으러 갔다. 부모님께 말씀드리지도 않고 무작정 갔다. 상담을 마치고 며칠이 지나서야 나는 부모님께 학원을 보내달라고 말씀드렸다. 연극이 하고 싶다고 하면서. 부모님은 심란한 눈치였다. 돈을 잘 못 벌 텐데 괜찮냐고, 먼지 나고 쾌쾌한 극장에서 청소하면서 지내도 괜찮냐고 물으셨다. 화를 내신 거 아니었지만 어릴 적에 공부깨나 하던 막내딸이 갑자기 연극이라니 놀라고 걱정되셨던 것 같다. "응, 괜찮아. 돈 없어도 돼. 먼지 많은 곳 청소해도 괜찮아. 연극이 하고 싶어." 아빠는 몇 번이고 되물으셨다. "춥고 배고파도 괜찮다고?" "응, 그래도 연극이 하고 싶어." 확고한 나의 대답에 부모님은 져주셨다. 한 달에 50만 원이었던 입시 연기학원을 바로 보내주셨다.


수시에 전부 떨어졌다. 예체능이라 실기시험을 봐야 해서 원서료만 10만 원이 넘었는데, 그렇게 많은 학교에 시험을 봤건만 전부 떨어졌다. 학교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성적도 괜찮은 애가 왜 연극영화과 실기로 대학을 가려고 하느냐며 다른 과에 원서를 넣으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연극영화과가 아니면 대학을 가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바보같이. 정시로 겨우겨우 대학을 갔다. 겨우.


턱걸이로 스무 살에 새내기 대학생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해서 대학에 왔건만, 연극에 대한 열정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정말 한심하게도 매일을 놀았다. 수업은 대충, 음주가무는 열심히. 대학 성적은 처참했다. 졸업을 할 때 쯔음에는 더 이상 연기를 하지 않을 거라고도 했다.


전공을 살리고는 싶어 스태프로 일을 하며 현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내가 처음 일했던 작품은 꽤나 유명한 작품이었다. 뛰어난 창작진이 만들어 낸 멋진 작품 속에서 깊은 몰입으로 감정을 쏟아내는 배우들. 가끔 객석에 앉아 리허설하는 무대를 바라보며 고등학생 때 내가 가졌던 연극에 대한 열정을 생각했다. 그 열정이 계속됐다면 나는 이 극장 어디에 있었을까.


그 이후로도 몇 년간 계속 스태프로 일을 했다. 연기에 비해 스태프로 일하는 것은 심적으로 편했다. 연기는 재미있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감당해내야만 하는 작업이다. 저 사람이 내 연기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라는 생각이 나면 연기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점점 연기를 무서워하게 됐고 스태프로 일을 해도 연극을 하는 것이니 괜찮다면서 스스로 합리화했다. 게다가 꾸준히 매달 받는 월급은 현실을 안주하게 만들었다. 돈이 없어도 괜찮다던 19살의 나는 더 이상 없었다.


그렇지만 무대에 한 번이라도 서 본 사람이라면 그 맛을 알 것이다. 모든 관객이 입장을 완료하고 연극이 시작되기 전 조명이 어두워지며 세상이 멈춘 듯 조용해지는 순간의 긴장감. 극장이라는 공간이 아닌 작품 속 그 세계에 존재하는 것만 같은 순간들. 무대 위로 올라가는 발걸음.  커튼콜 때 인사를 하며 수많은 관객에게 받는 박수. 내가 사랑하는 찰나들. 잊지 못하는 시간들. 이 마음은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그만두었던 꿈에 대한 미련이었다.


그래서 다시 시작했다. 처음의 마음, 초심을 가지고. 처음 내게 연기의 감동을 주었던 그 배우, 혼자서 연극을 보러 갔던 날, 부모님께 연극을 배우게 해 달라며 조르던 19살 때의 마음. 27살 현재의 나는 돈이 얼마나 좋은지 알고 돈이 없으면 얼마나 힘든지 안다. 그래도 다시, 그래도 다시 시작한다. 춥고 배고파도 괜찮지 않은 지금, 춥고 배고플지도 모를 일을 다시 시작하며 그때를 되돌아본다. 혹시 또 놓게 되더라도 더 이상 미련은 가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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