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4.23 THU : 작가노트_숨, 결, 바람

by 윤소

새로 정리하는 작가노트


그간 누군가가 어떤 작업을 하냐고 물으면 0.1초의 찰나를 그린다고 간략하게 소개해왔다. 그러면서 조금 더 덧붙일 때는 멈춰진 것처럼 보이는 평면 위에 아주 짧은 시간성을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걸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소재가 인물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내 그림은 대부분 인물화가 되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유동적인 인간, 그게 나의 작업 키워드였고 소재였다.


그런데 최근 생각이 바뀌었다.


굳이 소재가 인물이어야 하는가. 최근 나의 시선은 인물의 경계를 넘어 그를 둘러싼 주변으로 옮겨가고 있다. 인물이 아니어도 많은 것들이 짧은 순간마다 변화한다. 이를테면 신엽을 내기 위해 매분 애쓰고 있는 식물, 바람의 결을 따라 형태를 바꾸는 구름 같은 것. 결국 내가 그리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건 짧은 시간성 속에 담긴 공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찰나 속에 포함된 공기의 흐름. 그것이 내가 표현해내고 싶은 무엇이다.(물론 인물은 여전히 흥미로운 소재고 지속적으로 탐구할만한 소재이긴 하다)

최근에는 움직임과 멈춤의 상태를 교차시키며 실험하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멈춰진 듯 보이나 실제로는 미세하게 움직이는 상태와 한눈에 보아도 움직이는 상태를 한 화면에 교차시키고 있다. 각자의 속도대로 움직이는 것들의 대비를 제시함으로써 그 순간 그 장소의 공기 흐름과 분위기를 표현하고자 한다. 마치 인상파 화가들이 빛의 움직임을 그려냈던 것처럼 나는 거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 그 흐름과 움직임을 표현하고 싶다.

나의 영감은 대단한 곳에 있지 않다. 바람에 흩날리는 누군가의 잔머리, 마당을 뛰노는 강아지의 해맑은 도약, 제 속도에 맞춰 묵묵히 자라나는 식물들…. 일상에서 보이는 잔잔한 공기는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가시화하는 유일한 단서다. 0.1초라는 짧은 시간 속에 담긴 공기의 질감을 붓질로 엮어내며, 나는 찰나를 영원으로 확장시킨다. 관객이 내 그림 앞에 섰을 때, 그 장소의 공기 흐름을 피부로 느끼며 자신이 통과해 온 수많은 ‘찰나’의 소중함을 다시금 감각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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