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말 개인전 이후 작업을 하지 않았다. 간단한 드로잉 정도, 그것도 몇 장 되지 않는다. 이유는 화실 이사 때문이었는데 선뜻 그림을 그릴 마음이 서지 않았다. 높은 월세를 감당할 만큼 내가 (다시) 잘 시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고, 그 걱정은 아주 큰 부담이 되었다. 이사는 이사고 작업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해보려 했지만 작업보다 먹고사는 문제가 점점 더 커져갔다.
지인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던 이야기가 있는데, 그건 ‘먹고사는 문제가 작업을 방해하는 날이 온다면 나는 작업을 그만둔다’이다. 그동안 철이 없었던 탓에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기가 있었다.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렸다. 대부분의 시간을 다음에 무얼 그릴까 생각하며 보냈고 간혹 어렵긴 했으나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은 꽤나 즐거웠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된 것이다. 한 번의 실패를 겪었으니 더 두려웠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는 ‘어떡하지’가 작업에 대한 생각을 걷어차고 자리를 차지했다.
8월 중순, 화실 겸 작업실을 이사하고 이제 한 달이 다되어간다. 이사하기 전 한두 달 정도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홍보를 하는 시간을 보냈다. 솔직히 꾸역꾸역 해나간 느낌이다. 게시글을 올리고 그걸 광고를 돌렸다. 문의가 많지는 않았지만 나는 간간히 오는 문의가 반가웠다.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대답했다. 그리고 오늘은 학원운영허가와 사업자까지 받았다. 이사 후 오늘에서야 마음이 정리되는 느낌이다. 그렇다. 그래서 오늘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기 전, 2주 정도 전부터 아빠가 요청한 해바라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평소 내가 그리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이걸 그리면서 나름 손이 풀린 듯하다. 빈 캔버스를 마주하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았고, 물감을 얹는 것 또한 어렵지 않았다. 드로잉북에서 그리고 싶었던 장면을 하나 골라 신나게 작업했다. 캔버스가 크지 않아서 더 쉽게 그렸을지도 모른다. 레이어를 더 쌓기 위해 작업한 캔버스를 한켠으로 치워둔 채, 오랜 기간 미완성으로 남아있던 작품을 다시 꺼냈다. 새로운 그리기 방식을 테스트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지금 나는 마음 정리를 위해 시작 전에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