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작업실에 나가지 않았다. 밀려있던 집안일과 잡무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평소에 작업 외에 자잘한 것들은 잘 미루는 편이다. 예를 들면 이불 빨래, 강아지 목욕 등과 같은 것들. 하루쯤 미뤄도 상관없다 생각해 자꾸만 미루게 되는 그런 일들. 이런 일들이 쌓여서 오늘은 재정비하는 날을 갖기로 했다.
내가 오늘 가장 먼저 한 것은 라멜이 산책. 지난주 한파여서 산책을 제대로 못 시켜준 것이 미안해서 라멜이 산책부터 시켜주었다. 조금 날씨가 풀려서인지 라멜이 도 안아달라는 칭얼거림 없이 산책을 즐겼다. 일부러 에어팟을 끼지 않고 라멜이에게 온전히 집중하면서 걸었던 몇십 분. 킁킁 거리는 콧방울, 한껏 치켜 올라간 꼬리, 총총 걷는 발까지 다 눈에 담으며 걸었다. 최근 나의 알고리즘에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영상이 많이 떠서 인지 라멜이를 보는 내 마음이 더 애틋해져서일까. 푸른 겨울 해가 라멜이 위로 비치는 장면이 나를 녹였다.
라멜이를 산책시키고 와서는 이불을 빨았다. 물론 내가 빨았다기 보단 세탁기가 한 것이지만ㅎㅎ. 이불에 붙은 개털들을 털어내는 게 먼저였다. 라멜이와 함께 자다 보니 내 침구에는 늘 개털이 함께 한다. 떼도 떼도 남아있는 털을 처리하느라 한참이 걸렸다. 털을 뗀 이불을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집 세탁기가 건조기능이 있어, 오늘 빨아도 오늘 침대에 깔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불을 세탁기에 넣어둔 채로 다시 라멜이와 집을 나섰다. 라멜이 목욕을 위해서다. 직접 라멜이를 씻겨도 되지만 귀털이 너무 엉켜서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했다. 라멜이를 미용사 분께 맡기고 동네를 산책했다.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걸은 한 시간가량 동안은 어떠한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늘은 너무나 파랬고 잔잔한 공기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낮임에도 느껴지는 잔잔한 고요함은 나를 쉬게 했다.
산책을 끝내고 라멜이를 다시 마주하러 갔다. 라멜이는 마무리 단계였고 나는 소파에 앉아 라멜이를 기다렸다. 이사 오고 처음 맡겨보는 미용실인데, 예민하게 반응하지는 않았을까 걱정도 했다. 그런데 걱정은 내 오지랖이었을 뿐, 라멜이는 보송보송해져서는 웃는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그러고는 얼른 나가고 싶은지 문쪽으로 나를 이끌었다. 나는 향기를 폴폴 풍기는 라멜이를 껴안고 미용실을 나섰다.
라멜이와 함께 집으로 걸어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라멜이는 이리저리 냄새를 맡으며 즐거워했고 나는 그런 라멜이를 지켜보는 게 즐거웠다. 10분 정도 걸었을까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라멜이와 함께 집에 도착한 이후에는 돌려두었던 이불을 확인했다. 건조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서 다른 집안일들을 처리했다. 너저분한 책상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비웠다. 집안일은 하면 열심히 하는데 왜 이렇게 시작하기가 어려울까.
작업으로 가득 찬 일상 속에서 쉬어가는 날은 언제나 필요하다. 전시가 얼마 안 남아서 의도적으로 더 안 쉬고 작업한 것도 있지만, 아직 나아갈 때라고 생각해서 못 쉬는 것도 있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안 쉬고 작업하는 것보다 적당히 쉬어가면서 작업하는 것이 훨씬 더 빠른 길이라는 걸. 오늘은 쉬며 재정비를 했으니 내일부터는 다시 열심히 작업하는 걸로 마무리 지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