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란 무엇인가? 격리란 무엇인가?

격리 라이프

by 유우리

자유란 무엇인가? 격리란 무엇인가?


정치학과 교수가 ‘공부란 무엇인가?’를 논하고, 보건복지부 장관과 독어독문과 교수는 ‘자유란 무엇인가?’를 논한다. 되도록 전공 분야에 집중하여 말해주었으면 좋게으나, 모든 것이 자유니까 괜찮다. 그래도 요즘 ‘자유란 무엇인가?’를 논하려면 14일 자가격리는 하고 나서야 자격이 되는 것 아닌가? 나도 13일 후에는 자격이 생긴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하자마자 급한 전화가 있는 듯이 EE 심카드를 빼고, KT 심카드를 집어넣는다. NO SIM INSTALLED. 심카드를 읽지 못한다. 일단 낭패다.

무빙워크를 따라 입국장으로 가면서 보니 양질의 방호복을 착용한 근무자가 즐비하다. 그리고 고생이 많다. 비슷한 서류를 세 번 쓰고, 방호복 근무자를 다섯 단계 지나고서야 입국장을 통과한다. 가방을 기다린다. 비글 여러 마리가 분주히 가방을 탐색하며 냄새를 맡고 있다. 공항에서 비글 끌고 다니는 사람은 왠지 꽃 보직이다. 이쁜이와 하루종일.

가방을 찾아 밖으로 나오니 중무장 방호복 군단을 세차례 더 만난다. 세종시를 가기 위해서는 광명에서 KTX를 타야 한다. 그러기 전에 KT에 들른다. 낭패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기는 로밍용 심카드를 파는 곳이지, 기존 심카드를 교체해 주는 곳이 아닙니다.’ ‘같은 KT인데 못할 것은 뭔가요? 공항을 나가면 누구랑도 접촉할 수 없고 14일간 격리되는데, 시내에 가서 심카드를 교체할 수가 없잖아요.’ ‘그럼 자가 격리 기간에는 선납 심카드를 쓰세요. 하루에 20분 통화하고, 얼마간의 데이터를 이용하는데, 12 600원이에요.’ ‘하루예요? 여기서 신분을 확인했으니, 어딘가에서 심카드를 재발급하여 집으로 보내 주면 안 되나요?’ ‘그렇게는 안됩니다.’ ‘아니 다른 나라 심카드는 다 인식이 되는데 왜 KT는 이렇게 부실한가요?’ ‘아니 제가 심카드 부셨나요?’ 갑자기 훅치고 들어 온다. 일단 후퇴다. ‘그럼 12 800원 결제할 테니 새 심카드 주세요. 일단 급한 대로 하루만 쓰죠.’

지갑을 찾는다. 어쩐지 아까부터 오른쪽 엉딩이가 허전했다. 지갑을 비행기에 두고 내렸다. 심카드는 낭패 축에도 들지 못한다. 부랴부랴 공항 안내소를 찾아 항공사에 전화한다.

‘11H 좌석에 지갑을 두고 왔어요.’ ‘찾으면 전화드릴게요.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세요?’ ‘한국 전화번호가 없어요. 제가 가진 것은 영국 전화인데요.’ ‘그럼 5분 후에 다시 전화하세요.’ 오 분 후에 전화하니 전화를 안 받는다. 마침 이쁘다고 생각했던 스튜어디스가 지나간다. ‘혹시 지갑 못 봤어요?’ ‘봤어요. 근데 지갑을 찾아 줄 시간이 없었어요. 비행기가 주기장으로 가야 해서 지갑을 조정석 안전한 곳에 일단 넣어 놓고 비행기 문을 닫았어요. 문을 열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이미 시내로 갔어요?’ ‘그럼 언제 비행기 문을 다시 여나요?’ ‘지금으로부터 12시간 후예요.’

스튜어디스와 작별하고 다시 항공사에 전화를 한다. ‘지갑을 다시 비행기에 넣는 항공사가 어딨냐?’ ‘분실물은 모두 도착지에 내려놓는 거지, 그걸 다시 가져가는 법이 있냐?’ ‘기내 분실물 규정을 우리보다 더 잘 아세요?’ 이렇게 세게 나올 줄 몰랐다. 요즘 서비스 업종은 예전 같지 않게 단호할 때는 단호하다. 물론 지금이 단호해져야 할 순간인지는 모르겠다.

방호복을 입은 무리에게 다시 간다. ‘제가 12시간 동안 공항에 있을 수 있나요?’ ‘네 얼마든지요?’ 공항 난민이 되어 쭈그리고 앉아서 12시간을 기다릴까? 어차피 집에 가도 혼자 격리인데, 넓은 공항이 낫지 않을까? ‘그런데 자가 격리 14일은 자가 격리 장소에 도착하면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정말요? 확실해요?’ 이래서는 안 된다. 밥을 먹고 정신을 차리자.

입국장에 도착한 승객은 편의점 한 곳, 커피숍 한 곳, 식당 한 곳만 이용할 수 있다. 음식점에 가니 ‘꼬막 정식’ ‘육개장 정식’ ‘해물 칼국수’가 있었다. 1988에 나왔던 벌교 꼬막 아닌가? ‘꼬막 정식 주세요.’ ’11 900원입니다.’ 아 참 돈이 없다. 당연히 카드도 없다. ‘저 너무 배고파서 그러는데 그냥 먹고 나중에 출국할 때 돈을 드리면 안 될까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나를 본다. 넋이 나가야 하는 사람은 내가 아닌가? 배 부른 사람이 뭔 넋이 나가는가?

‘그럼 제가 인터넷 뱅킹으로 넣어 드릴 테니 계좌번호를 주실래요?’ ‘계좌번호는 줄 수 없습니다. 보이스 피싱이라든지 범죄에 이용될 소지가 있거든요?’ ‘보이스 피싱요?’

다시 항공사에 전화한다. ‘지금 당장 비행기 문을 열던지, 나에게 돈을 빌려 달라!’ ‘무슨 말씀이세요?’

만일 히드로 공항에 있는 음식점에서 사정을 이야기했으면, 33% 확률로 밥을 공짜로 주었을 것이고, 66% 확률로 외상으로 밥을 주었을 것이며, 99% 확률로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했을 것이다. 100% 확률로 보이스 피싱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런던에도 보이스 피싱은 매우 많지만 말이다.

지갑은 내가 지정한 사람에게 12시간 후에 전달해 주기로 합의했다. 나는 세종시로 향한다. 방법은 택시밖에 없다. 택시는 후불이니까 좋다. 영국이라면 기차도 얼마든지 사정 이야기를 하고 공짜로 탈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보이스 피싱 이야기를 듣고는 더 이상 인정에 호소하는 방법은 쓰지 않기로 한다.

방역 택시 아저씨는 친절하다. 코로나 시기에 유럽에서 오는 사람, 러시아에서 오는 사람, 미국에서 오는 사람, 동남아에서 오는 사람이 다 특징이 있어 재밌단다. 그중에서 유럽에서 오는 사람이 가장 매너가 좋단다.

‘어떤 면에서 그래요?’ ‘모든 면에서 그래요. 그래도 한 가지 이유를 데라면 팁을 가장 잘 줘요.’ 보통 고수가 아니다. ‘5월까지는 위반 시 5백만 원 벌금이었는데. 지금은 천만 원이다. 천만 원 까짓 거 내지 할 수도 있지만, 위반하고 어느 매장에 갔는데, 추후에 확진자가 발생하면, 자가격리 위반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도 있다. 그럼 정말 망하는 거다.’ 이분은 택시 기사인가? 질병관리본부 홍보 대사인가?

세종시에서 기다리던 누나가 먼발치에서 전달해 주는 카드로 택시비를 결제한다. 물론 팁까지 포함해서 결제한다. 주고 나니까 생각이 난다. 브렉시트로 이제 영국은 유럽이 아닌데!

세종시 보건소에서 테스트를 받고 자가격리 장소에 입성했다. 누나가 오늘 아침까지도 살던 곳이기에 아늑하고 깨끗하다. 그래도 격리라는 사실에 변함은 없다. 나는 아무런 죄를 저지르지 않았지만, 14일 구류형을 언도받았다. 물론 늘 죄를 짓고 살지만, 오늘 시작한 구류는 그 죄 때문은 아니기에 억울하다.

유시민은 존 스튜어트 밀을 최근에 읽은 모양이다. 우리 와이프가 좋아하는 철학자다. 유시민 아니고, 존 스튜어트 밀 말이다. 그의 귀족적인 정신이 좋고, 그의 순애보가 좋단다. 나는 존 로크를 더 좋아한다. 자유에 관한 최고의 언급은 ‘국가는 개인의 자유와 안전을 증진시킬 목적으로만 개인의 삶에 관여할 수 있다’라는 로크의 말이다. 14일 자가격리는 나의 자유를 증진시킬 목적이 없으므로 국가가 부당하게 삶에 관여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안전이다. 국가가 14일 자가격리를 강제하는 데에는 ‘안전’이라는 공익이 있다.

물론 지금 나의 심리 상태로는 동의할 수 없지만 말이다. 13일이 지난 후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14일의 자가격리는 나의 자유와 안전 모두를 침해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를 제외한 공동체의 안전이다. 나를 14일간 격리시키는 데는 ‘이 사회의 안전을 증진시킬 목적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존 로크는 ‘개인의 자유’와 ‘개인의 안전’이라고 말했다.

나의 방문을 반긴 조카는 전화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삼촌 우리나라가 방역을 참 잘하고 있는 거야! 격리 끝나면 놀아 줄게!’ 얄 미운 생각에 ‘너 주려고 LUSH 사 왔다’는 말을 일단은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