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은 돈이 아니라 철학으로 짓는다

격리 라이프

by 유우리

건물은 돈이 아니라 철학으로 짓는다



시차로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아침에 눈을 떠도 핸드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하지 않는다. 뭐하러? 덕분에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다. 창밖을 보니 비가 왔던 모양이다. 이중창의 성능이 좋다. 원래 시스템 창호라는 것이 독일에서 왔다고 하는데, 한국 창호의 성능이 독일 창호를 능가하게 되었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창문을 여니 따뜻한 바람이 분다. 봄바람이다. 시간이 지나 벌써 봄이 온 것인가? 그러고 보니 온 비도 봄비 같다.

세상은 돌아가고 있는가? TV는 틀지 않지만, 핸드폰을 통해 뉴스는 본다. 뉴스란 것이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구글 인공지능이 뉴스를 만들어서 나에게 푸시하고 있는지 갑작스레 궁금해진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뭐라고 구글이 그런 노고를 감수하겠는가? 하기사 인공지능이 가짜 뉴스를 만들어 자가격리자에게 푸시하는 것이 별 노고는 아닐 것이다. 재미 삼아 그런 짓을 할 정도로 인공지능은 사람화 되고 있다.

창문 넘어 가까이 학교가 보인다. 아침저녁으로 아이들 무리가 보여야 하는데, 간혹 한두 명이다. 쉬는 시간이라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도 들려야 하는데! 저기도 독일식 시스템 창호를 쓰고 있는가? 학교는 온라인 교육을 병행하는가? 체육을 운동장에서 하지는 않고 실내에서 하는가? 아직 정상까지는 길고도 멀다.



학교 이름이 좋다. 늘봄 초등학교. 저 학교 이름 때문에 나는 봄바람과 봄비를 떠올렸구나! 학교 건물은 의아하다. 왜 저렇게 지었을까? 건물에는 늘봄이란 이름이 쓰여 있지만, 건물은 늘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학교 이름을 지은 사람이 건물을 지었다면, 건물도 멋졌을 것이다. 건물 지은 사람이 학교 이름을 짓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까? 공구리 초등학교가 되지 않은게 얼마나 다행인가?

영국의 사립학교와 세종시의 공립학교를 비교하는 것은 오렌지 대 오렌지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오늘 할 일이 없으니 런던을 떠올려 본다.

런던의 템스강 서쪽에는 세인트 폴 스쿨이 있다. 1509년에 설립된 학교로 영국 최고의 사립학교 중의 하나다. 런던 시내에 템즈강을 끼고 있는 학교 부지가 180 000제곱미터나 된다. 런던 외곽에는 이보다 열 배가 큰 학교도 있지만, 런던 시내에서 템즈강을 끼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too much다. 학교 땅을 반을 잘라서 부동산을 개발하면 안 되나?



이 학교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 진학하는 학생 수로 학교를 평가하는 것을 싫어한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수를 가지고 서울대학교 학부를 평가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유다. 자신들은 이미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와 같은 수준의 학교이며, 다만 나이가 조금 어린 학생을 가르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옥스퍼드 교수가 옥스퍼드 학부생을 상대로 옥스퍼드 대학원에 가라고 조언하지 않듯이 세인트 폴 학교는 학생들에게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를 가라고 설득하지 않는다. 오랜 역사와 넓은 캠퍼스와 함께 그 자부심 하나는 부럽기 그지없다.

나는 서울대학교를 가고 싶지 않다. 30년 전에 여유 있던 캠퍼스가 아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넓은 공간에는 또 다른 건물이 들어서 숨이 막힌다. 학문의 성과는 건평의 넓이와 비례한다는 어떤 연구 결과가 있었나? 도대체 왜 이렇게 지어 대는가? 그리고 어디서 그렇게 특징 없고, 조화 없는 건물을 만들어 냈는지 알 수가 없다. 보통은 특징이 없으면 조화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세인트 폴 스쿨은 건물을 증축하거나 보수할 때 한 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다. 수업 시간을 제외한 시간에 아이들은 선생님의 눈에 띄지 않는 공간에 있어야 한다. 아이들의 창의력은 선생님이 없는 공간에서 커진다. 그렇게 되면 힘 센 학생이 약한 학생을 괴롭히는 문제가 생지 않을까? 그런 일이 한 번만 발생해도, 가해 학생은 그 좋은 학교를 더 이상 구경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일은 좀처럼 벌어지지 않는다.

런던 남부에는 덜위치 컬리지라는 스쿨이 있다. 건물 이쁘기로는 영국 최고의 학교 중의 하나다. 동네 자체가 덜위치 컬리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고, 주민들은 덜위치 컬리지의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그런데 동네 주민들은 덜위치 컬리지 부동산 관리 회사에 일 년에 20만 원을 낸다. 동네 퀄리티를 유지하는 데에 돈이 들기 때문이다. 그 비용을 올해는 5% 인상했는데, 동네 단톡 방에서 어떤 주민이 ‘그 돈을 왜 내야 하는지? 왜 올려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동조를 해야 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그 돈으로 인해 동네가 얼마나 잘 관리되는지를 옹호하는 사람도 많다. 어느 할머니는 10년 전에 새로 지은 학교 과학관을 느닷없이 이야기한다. 그 건물이 주변 건물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동네에서 걷는 돈이란 동네의 외관을 조화롭게 가꾸는데 쓰여야 한다. 돈을 걷어가는 것은 용서할 수 있지만, 조화롭지 못한 건물을 짓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이 영국 할머니의 마음이다. 내가 보기에는 멋지기만 한 건물인데 말이다.

500년 된 사립학교와 10년 된 공립학교를 비교할 수 없다. 재정 규모가 다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나 돈이 있어도 이상한 건물은 나온다. 서울 시청, 서울역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새로 지은 서울역은 100년 전에 지어진 건물보다 훨씬 못하다. 돈을 들여도 이상한 건물이 나온다면, 돈을 안들어도 좋은 건물이 나올 수 있는 것 아닌가? 늘봄을 건물에 표현하는데 정말 큰돈이 필요한 것인가? 서울대는 늘봄과 달리 충분한 돈이 있을 텐데 왜 그렇게 짓는가? 필요한 것은 아이디어인가? 아이디어는 늘 비싼가? 돈이나 아이디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육에 대한 철학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