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양선생활

꽃무릇과 맥문동

by lemonfresh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어렸을 적에 주변에서 흔히 들었던 궁금증 중에 하나다. 사자가 이길 거라고 하던가, 호랑이가 이길 거라고 하는 말들은 있었지만 딱 부러지게 누가 이긴다고 하는 말은 듣지 못했다. 누구는 무승부가 날 거라고도 했다. 결국 여러가지 의견 중에 내가 선택한 답은 '호랑이와 사자는 서식지가 달라서 만나지 못하므로 싸울 일이 없다.'는 이도 저도 아닌 것이었다. 그렇다면 호랑이와 사자가 함께 사이좋게 산다는 가정은 어떨까?우리는 늘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한다고 배웠기 때문에 나의 상상력은 그런 식이 훨씬 더 편안하다.




나는 재작년에 한 가지 실험을 했다. 맥문동과 꽃무릇에 대한 것이었다. 맥문동은 여름에 꽃이 피고 꽃무릇은 가을 초입에 피어난다. 그래서 내가 세운 가설은 맥문동과 꽃무릇을 사이사이 섞어 심으면 같은 장소가 여름에는 맥문동 꽃밭이 되고 가을에는 꽃무릇이 밭이 될 거라는 나름 합리적이고 참신한 것이었다.


그것이 재작년 봄에 꾸민 일이니 올해로 만 이 년이 된다. 작년에 얻은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왜냐하면 맥문동은 생각대로 되었는데 꽃무릇이 기대만큼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반의 실패라는 말은 보류했다. 왜냐하면 꽃무릇 구근이 너무 어려서 당해와 이듬해까지는 꽃을 피우기가 힘들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올해의 결과가 중요하다. 이것이 내가 아직 봄꽃도 제대로 안 피어났는데 벌써부터 가을을 기다리고 있는 사연이다.


오늘도 잠깐 나가 보았다. 그런데 나는 가설 입증에 실패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맥문동은 기세가 등등한데 꽃무릇은 눈 씻고 보아야 겨우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 기대는 접지 않았다. 꽃무릇이 잎은 저리 부실해 보여도 꽃은 훨씬 임팩트가 있다. 여름에는 잎새가 고스라졌다가 선선한 바람이 불면 땅 위로 꽃대를 내밀어서 붉은 꽃을 피워낸다. 결국 꽃으로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맥문동과 꽃무릇이 서로 경쟁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어렸을 적에 읽은 동화책의 결말처럼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만약 나의 실험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나는 맥문동 사이에서 꽃무릇을 구출해낼 생각이다. 올 가을이 지나고 나서 꽃무릇 구근을 캐서 별도의 장소에 옮겨 심는 것이다.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지만 올해의 꽃무릇 철이 지나고 나면 나는 몇 가지 문에 답을 얻을 것이다. 맥문동과 꽃무릇의 서식지가 겹쳐질 수 있는지, 어느 쪽의 치우침이 없이 사이좋게 살 수 있는지. 나로서는 아쉬운 일 이지만 만약 '함께 행복하게' 살 수가 없다면 '따로 행복하게' 살도록 해 줄 생각이다.




무성하게자란 맥문동, 그 사이사이에 꽃무릇이 들어있다.

꽃무릇, 네이버이미지

맥문동, 네이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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