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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양선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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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fresh Jul 03. 2024

젊은이의 잠, 늙은이의 꿈

얼마 전부터 잠을 잘 잔다. 그 비결은 저녁 산책이다. 어느 날 남편이 ‘송이 산책 시킬까?’하기에 얼른 좋다고 했다. 나는 당뇨, 고지혈 관리 때문에 식후 운동이 필요하지만 남편은 식사 후에 움직이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그래서 나도 그냥 말았다. 그런데 송이(진돗개)를 산책시키겠다고 마음먹으니 그런 것이 괜찮아졌나 보다. 송이를 산책시키자면 남편이 나가서 걸을 것이고 나도 같이 나갈 것이므로 일거삼득이 될 것이다.


어느 날 아침에 잠을 깨어 생각해 보니 운동을 시작한 이후로 내가 잠을 잘 잔다는 생각이들었다. 그동안 초저녁 잠을 못이기고 너무 일찍 자는 것 때문에 문제가 좀 있었다. 첫째 식사 후 바로 눕는 날이 반복되자 역류성 식도염이 생겨서 낫지를 않았다. 또한 너무 일찍 잠든 탓에 한 잠 자고 났는데 새벽 한두 시밖에 안 된 날이 많았다. 다시 잠들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일어나서 활동하기도 어려워서 뜬눈으로 지새우다 보면 몸과 맘이 피곤했다. 그런데 적당한 운동을 하니 잠도 깊이 들고 깨어보면 아침이다. 중간에 깨지 않고 통잠을 잔 것이다. 마치 젊은 날의 잠을 회복한 느낌이다. 일상에서 운동(비록 걷기일 뿐이지만)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도 어렵더니 송이를 산책시킨다는 목적이 생기고 보니 별로 어렵지 않았다.


되도록 매일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비가 오는 날도 있고, 무슨 일이 있어 늦게 귀가하는 날도 있어 저녁 산책을 건너뛰는 날도 있다. 그러자 바로 나타난 증상은 잠이 나빠졌다. 잠의 질이 좋아졌던 것이 저녁 운동 덕이라는 반증이다. 겪어보니 확실히 알겠다.


*     *     *


오늘 아침에 잠을 깨었는데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뭔가 고생을 실컷 한 기분이었다. 꿈에서 내가 출근을 해야 하는데 집안에서만 뱅뱅 돌고 현관문을 나서지 못했다. 가방을 놓고 나가다가 현관에서 ‘아참, 가방!’하고 다시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가방을 가지고 나오다 보니 양말을 안 신었다. 양말을 신고 보니 그런 양말을 신을 옷이 아니었다. 갈아 신으려고 들어갔는데 또 뭔가를 빠뜨렸다. 혼자서 쩔쩔매다가 간신히 나오기는 했는데 벌써 지쳤다. 한참 가다 보니 어찌된 일인지 어릴 때 걸어서 학교에 다니던 길이었다. 길은 아직 멀었는데 차를 타지 않고 걸어 나왔다니 난감한 일이다.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면 될 것 같아서 전화기를 찾아보니 전화기가 없었다. 갈 길은 막막하고 이젠 길도 모르겠고 학교에도 늦겠고 차도 없고 전화기도 없다. 이를 어쩌면 좋겠는가!


깨어 보니 꿈이었다. 꿈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도 십 초쯤 걸렸다. 꿈에서 생각했었다. ‘이렇게 정신이 없다니 이제 학교에 못 다니겠다. 이래서 정년이 있는 거구나. 곧 퇴직하게 되어 참 다행이다 다행이다.’


잠재의식 속에서 내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꿈이 보여주었다. 나이 먹으면서 신체 기능이 하향곡선을 그리는  것은 할 수 없지만 정신만큼은 흐트러지지 않기를 나는 바란다. 아무래도 어제 저녁에 운동도 안 하고 또 엉터리 잠을 잤더니 무의식이 내게 경고를 보냈나 보다. 꿈이어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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