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emonfresh
Nov 10. 2024
언젠가 어디선가 들은 말이 있다. 퇴직 후에는 친구와 취미, 종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친구 문제는 나는 성향적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소 멀리 유지하는 편이다. 무슨 뜻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냥 사람의 성향이 그렇다. 너무 친밀한 관계가 부담스럽고 내가 먼저 나서서 누구를 찾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내가 맺은 관계는 대부분 공적인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를테면 같은 시군에 근무하는 대학 동기 모임, 어느 학교에서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들, 같이 연수를 받았던 사람들의 모임 등이 그렇다. 그런데 퇴직하고 있어 보니 사람들의 연락이 반갑다. 모임도 소중하고 사적인 만남도 즐겁다. "아, 이래서 퇴직 후에 친구가 있어야 한다는 거였구나." 이제야 깨달아진다.
나는 취미라고 할 만한 게 없다. 지금으로서는 취미로 하는 어떤 것 때문에 정해 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간다든지 하는 것은 좀 피하고 싶다. 나는 매우 즉흥적인 사람답게 그때 그때 하고 싶은 일을 할 거다. 마당에 나가서 풀을 뽑던지, 갑자기 도서관에 가던지, 별 목적도 없이 야간 외출을 한다던지, 하루 온종일 드라마 몰아보기를 하던지 그렇게 할 거다. 이제 나는 내 시간을 내 맘대로 쓰는 자유인이 아닌가? 남이 짜 놓은 시간표에 나를 집어넣는 일은 하지 않겠다. 그래서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다. 친교활동도 취미 활동도 다 어느 정도는 남에게 맞출 수 있는 정성이 필요한 일이다. 공적인 일과는 이의 없이 받아들였지만 사적영역에 까지 그런 노력을 기울일 생각이 없고, 지금까지 안 생겨난 정성이 어디서 생겨날 것 같지도 않다.
종교에 대해서도 요즘 생각하고 있다. 나의 종교는 가톨릭이다. 그런데 어디 가서 내게 종교가 있다는 것을 내놓기가 어렵다. 성당에 나가지 않은 지가 아주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종교활동을 하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나의 종교적 신념이 흔들린 적은 없다. 신념은 유연성이 매우 적고 깨어지기를 싫어하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의 신념과 다르다면 서로 간에 어려운 문제가 될 것이다. 사실 이것은 결혼할 때부터 남편과 나 사이에 있었던 문제인데 내가 별로 종교활동 하지 않을 때는 잠재적인 문제였으나 내가 활동을 강화한다면 불가피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나는 살면서 가장 불행할 때가 남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고, 내가 이해받지 못할 때인데 종교는 수십 년을 뜻을 맞춰 살아온 우리도 좁히지 못한 부분이 있다. 서로 건드리지 않고 살 수는 있어도 펼쳐놓고 공감하기는 어렵다.
퇴직은 벌써 했는데 어쩌다 보니 준비 없는 퇴직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인생 길다는 말도 어디서 들었다. 준비가 안 되었으면 지금부터 하면 된다. 나는 남는 것이 시간인 퇴직자가 아닌가? 문제는 퇴직하고 보니 만사 귀찮다. 이래서 사람이 몸만 늙는 게 아니라 마음도 늙는다는 것이다. 퇴직하고 나니 마음이 제 먼저 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