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람 충청도 사람

충청도 사람이 본 서울 사람들

by lemonfresh

* 이동은 대부분 지하에서

서울은 지하철이 있어 편리하다. 출근할 때 지하철을 탄다. 5호선을 타다가 2호선으로 한 번 갈아탄다. 집에서 나와서 지하철 입구까지 걸어가면 학교 부근 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다시 올라간다. 250미터쯤 걸으면 학교가 있다, 환승을 위해 걷는 거리를 포함해서 다 지하에서 이동하는 구간이다.


엊그제는 아침에 비가 내렸다. 부슬부슬 가는 비다. 우산을 펼까 하다가 지하철역까지만 가면 되어서 그냥 갔다. 전철 이동시 짐이 되고 여차하면 잃어버리기 일쑤인 데다 그 정도 비는 맞아도 별 영향 없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퇴근 때 빗방울이 제법 커져서 집으로 가는 동안 겉옷이 많이 젖었다. 가까운 거리라고 조금조금 걷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서울 와서 지내는 동안 일일 보행수가 더 늘었 다. 아산에 있을 때는 잠깐을 나가도 차를 타고 다녀서 생활 보행이 얼마 되지 않았었다. 이건 내가 미리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 잠들지 마세요.

지하철에서 사람들 모습은 둘 중 하나다. 휴대폰을 보던지 눈을 감고 있던지.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귀를 막고 있다. 이어폰을 꽂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저이들이 자기 내릴 역을 잘 챙겨서 내릴 수 있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나 같으면 저러다가 내릴 역을 지나칠 것 같다. 심지어 나는 휴대폰을 보고 있지도 않았는데 내릴 역을 지나친 적이 있다. 더구나 어떤 이들은 그냥 눈을 감은 것이 아니라 잠이 든 것 같다. 똑같이 눈을 감고 있어도 잠이 든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표가 난다. 내가 할 걱정은 아니지만 눈으로 보이니 자연히 걱정이 된다.

한 번은 내가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방금 전에 올라탄 어떤 이가 맞은편에 앉았다. 마침 눈이 나와 마주친 데다가 연령이 나와 비슷해 보여서 눈인사를 했더니 그이가 내 옆자리로 옮겨 와서 말을 걸었다.

“혹시 OO역 지나가요?”

“아니요. 저는 얼마 안 가서 내려요.”

“아이고 큰일이네.”

“왜요?”

“나는 OO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너무 졸려서 잠이 들 것 같아요.”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다 한다. 두 정거장을 더 가서 잠이 깼는데 다시 돌아오느라 애를 썼다는 것이다.

“저런... 날도 어두워졌는데 큰일이네요.”

내가 가방에서 귤을 꺼내서 그이한테 주었다.

“잠들지 마시고 이거 드세요. 신맛에 정신이 번쩍 날 거예요.”

그런데 두어 정거장 만에 보니 귤을 까서 손에 든 채 고개가 떨구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내리면서 깨워주었다.

“저 먼저 갑니다. 정신 잘 차리고 가세요.”

그이가 집에 잘 갔는지 모르겠다. 잘 갔기를 바란다.


* 서울 사람 친절하다.

사람들이 다들 바쁘게 움직여서 말 붙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가끔 물어볼 일이 생긴다. 분명히 어제는 잘 갔던 길인데 갑자기 헷갈릴 때가 있다. 그래서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다가 그중 말 붙일 만한 사람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이럴 때 나는 머리가 센 덕을 본다. 머리가 하얗고 어리버리한 올드 레이디가 길 물어보는 데에는 사람들이 쉽게 응대를 해 주기 때문이다.

“2호선으로 환승하려면 이쪽으로 가는 게 맞아요?”

“네. 맞아요. 여기 좀 헷갈리시죠? 바로 연결이 안 되고 좀 복잡해요.”

어제와 오늘이 왜 다른가 했더니 내가 내려선 위치가 서로 달라서 그렇다.

“이리로 쭉 가서 에스컬레이터 타고 올라가시면 돼요.”

내가 이리로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잘 못 알아듣는 것 같으니까 그이가 약간 같이 걸어주었다. 그제야 방향이 눈에 들어온다. 거기서부터는 어제 갔던 길이다.

“아, 이제 알겠네요. 고마워요.”

내가 그 친절한 영 레이디에게 인사를 했다. 서울 사람들 친절하다.


* 서울 사람 무섭다.

지하철에서 잘 내리기는 했는데 3번 출구가 어느 쪽인지를 모르겠다. 출구를 잘못 나가면 길 건너편으로 나갈 수도 있다. 가뜩이나 나의 GPS 성능이 몹시 취약한 데다가 이런 복잡한 업데이트는 꿈도 못 꾸기 때문에 처음에 잘 가 보고 나서 다음에는 그 길로 똑같이 다녀야 한다. 그런데 잘 모르겠어서 벽이나 천장에 매달아 놓은 안내표지들을 찾느라 걸음을 멈추어서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때 작은 카트를 끌고 가는 한 할머니가 내 곁을 지나면서 소리는 내지 않은 채 뭐라 뭐라 했다. 그이의 진행방향에서 내가 꾸무적 거렸기 때문이다. 내 쪽을 쳐다보지는 않았지만 뭔가 나에게 불평을 하는 것은 눈치로 알겠다. 서울의 영레이디는 나를 잘 봐줬지만 올드레이디는 머리가 하얗다고 봐주지는 않았다. 서울 언니들한테는 걸리적거리지 않게 잘해야 하겠다.


*저 이번에 내려요.

예전 한 광고에서 전지현이 말했다. “저 이번에 내려요.”


사람이 빽빽한 지하철에서 내가 내릴 역이 다가오는데 앞에 선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하차 안내가 나오고 나서 내가 걱정스러워서 앞에 선 사람에게 말했다.

“저 이번에 내려요.”

그런데 앞사람이 비켜주지 않는다. 그리고 말했다.

“저도 내려요.”

“아, 네.”

그래서 무사히 잘 내렸다.


또 어느 날, 어떤 올드레이디가 내게 손짓을 했다.

“나는 이번 역에 내려요. 여기 앉아요.”

“네. 감사합니다.”

사실 내가 머리가 희어서 그렇지 아직 경로 우대석에 앉을 나이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렇다고 자리를 비워 놓고 서서 가자니 누가 봐도 거기 앉게 생겼다. 처음에는 약간 고민을 했는데 이제는 형편대로 하려고 한다. 누가 거기 마땅히 앉을 사람이 나 때문에 서서 가는 것이 아니라면 젊은이들 자리 하나 차지하지 말고 경로석에 앉는 것도 괜찮은 듯해서 그렇다. 그리고 나는 서 가려고 했는데 자기 내린다고 나보고 앉으라지 않나? 일껏 베푸는 호의를 사양하는 것도 오버스럽다. 역시 나이 먹은 사람들끼리는 통하는 게 있다.


*그렇게 급하면 어제 오지 그랬슈?

충청도 사람에 대한 유머

어떤 사람이 (충청도 지방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는데 앞의 차 한 대가 계속 천천히 가고 있었다. 그래서 클락션을 누르며 몇번 재촉하자 앞차가 길가에 서더니 운전자가 내려서 다가와서는 창문을 내리라고 하였다. 긴장해서 차창을 내리니 그 충청도 사람이 하는 말 “그릏게 급하믄 어제 오지 그랬슈.”


*서울 사람들 민첩하다.

지하철 타러 갈 때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 이용이 많다. 젊은 사람들은 숙련된 스텝이 아주 매끄럽다. 저렇게 발을 빠르면서도 정확하게 움직이다니 참 놀랍다. 심지어 어떤 이는 휴대 폰 화면을 보면서 계단을 미끄러지듯 톡톡톡 내려갔다. 나는 내 속도대로 내려갔다. 충청도 마님 속도다. 승강장에 내려가 보니 간발의 차이로 내가 타려던 차가 떠났다. 그래도 나는 뛰지 않는다. 나는 미리 왔기 때문에 시간이 넉넉하다. 그렇게 급하면 미리 오는 게 상수다.


*충청도 사람도 뛸 줄 안다.

언제냐 하면 도로에서 아직 횡단 보도에 다다르지 못했는데 녹색 신호등이 들어와 있을 때다. 낌박깜박하는 걸 보니 신호가 거의 끝나가나 보다. 잘 하면 건널 수 있겠다. 그래서 나도 뛰어서 무사히 건넜다. 횡단보도를 다 건넜는데도 서울 사람 계속 뛴다. 그이가 향하는 곳은 전철역 입구다. 나도 거기로 가려는 중이다. 저이는 뭐가 급하다고 그러는지? 지금 뛰지 않으면 전철을 놓치기라도 하는건지?


나중에 보니 서울 사람들 뛰는 이유가 다 있었다. 휴대폰으로 전철이 몇 시에 역에 도착하는지 보고 뛰는 거다. 땅속으로 다니는 지하철 오는 것을 어떻게 알고 지상부터 뛰나 했다. 다음부터 서울 사람이 뛰면 나도 같이 뛰어야겠다. 서울 온 지 한 달 만에 서울 사람 다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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