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하고 싶은 아이

교과전담의 한계

by lemonfresh

*담임하고 싶은 아이 1

4학년 영어 수업에 들어가는 반 중에 한 여자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도통 말을 하지 않는다. 영어에 자신이 없어 그런가 했는데 다른 아이들 말이 “쟤는 말을 안 해요.” 한다. 영어라서가 아니고 우리말도 하지 않는단다. 입도 뻥끗하지 않는다. 얼굴이 무표정해서 수업 시간에 얼마나 공부가 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쟤는 도대체 무슨 낙으로 학교에 다닐까? 하루 대여섯 시간 공부하고, 점심도 먹고, 쉬는 시간도 있는데 그 긴 시간을 혼자 어떻게 보낼까? 공부 시간에 이야기는 듣고 있는 걸까? 말은 안 해도 쓰는 공부는 하는 건가? 집에서는 말을 하나? 희로애락이 있을 텐데 어떻게 저렇게 아무 신호가 없을까? 마치 바다에 혼자 떠 있는 섬 같다. 섬 밖으로 띄울 배가 있기는 한 건가? 궁금한 게 많고 어떻게 좀 해 주고 싶은데 공식적인 수업 시간에는 곤란하다. 그렇다고 따로 부르는 것도 여의치 않다. 담임선생님이 계시고, 어련히 알아서 하실 일인데 다른 사람이 나서는 게 옳지 않을 것 같다. 마치 엄마가 있는 아이를 옆집 아줌마가 따로 불러내어 이것저것 물어보는 격이 된다. 잘난 척이 되거나 공연한 관심이 될 수 있다. 내가 쟤 담임이면 좋겠다.


*담임하고 싶은 아이 2

또 다른 한 아이가 있다. 남자아이다. 얘는 영어(내가 맡은 과목)를 아주 잘한다. 원어민 선생님과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막힘없이 술술 나눈다. 공부 시간에도 질문을 하면 꼭 자기가 대답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게 좀 과하다. 종종 욕심이 지나쳐 공격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친구들 사이가 가끔 껄끄럽다. 친분에 대한 욕구도 크다. 내가 못 보고 지나치거나 자기가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멀어서 인사를 못 했다거나 하면 따로 와서 이야기를 한다. 그 아이가 나와의 관계를 잘 꾸려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겠다. 문제는 다른 아이들 눈에도 그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얘도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좀 해 주고 싶다. 성취욕구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대인 관계를 어떻게 운영하는 것이 좋을지 깨우쳐 주면 좋겠다. 똑똑한 아이니 쉽게 알아들을 것 같다. 다만 스스로 행동을 관리하기에는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요할 것이다. 종날 때 교실에 들어가서 땡하면 지체없이 나와야하는 교과담임으로서 아이들과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지 못하는 게 영 아쉽다.


*담임하고 싶은 반

아이에 초점을 두어 생각하면 담임을 하고 싶은 여러 케이스를 꼽을 수 있지만 맡고 싶은 반을 고르라면 3학년 @반을 하고 싶다. 모두 14개 학급을 들어가는데 각 반 마다 어려운 애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3학년 @반은 수업을 해보면 아이들 태도가 마치 비단결 같다. 공연한 개그 욕심에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는 아이도 없고, 아무 때나 불쑥불쑥 하고 싶은 말을 뱉는 아이도 없고, 다른 아이들 발언에 딴지를 걸고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아이도 없다. 무슨 이야기를 하면 집중해서 듣고 아이들 반응도 거의 예상이 가능한 범위 내에 있다. 학급 담임을 한다면 그런 반을 하고 싶다. 그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을 잘 만나신 건지, 아니면 그렇게 매끄럽게 지도를 하신 것인지, 앞뒤 관계는 모르겠다. 그 반 수업을 다녀오면 기분이 좋고 교사로서의 자존감이 충전되는 느낌이다. 이래서 아이들도 선생님 잘 만나야 하지만 선생님도 아이들을 잘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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