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의 이름을 알고 있다.

by lemonfresh

수업을 하러 학급에 처음 들어가면 하는 일이 있다. 아이들이 앉은 자리를 그려서 이름을 적어 넣는 것이다. 그래야 나는 아이들을 기억할 수 있고, 아이들의 개인학습 관리를 할 수 있다.


아이들을 처음 만난 날, 아이들의 이름을 묻기 전에 내 이름을 칠판에 써 주었다. 놀랐던 것은 아이들이 먼저 가르쳐주시던 선생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ㅎㅁㅈ 선생님의 병가로 인한 공백을 메꾸러 왔는데 아이들은 3월부터 11월 초순까지 그 선생님께 배웠다. 담임선생님이 아니고 교과전담 선생님이라 아이들이 그 이름을 들어볼 기회가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름조차 몰랐다고?’하는 생각도 들었다.


학급 수업을 들어갈 때면 그 학급의 이름 자리표를 먼저 챙긴다. 그런데 들어갈 때 마다 맞지 않는 학급도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자리를 바꾸기 때문이다. 어떤 선생님은 내게 아이들 자리에 맞게 이름차트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본인 교탁 위에도 하나 붙이고 여분을 만들어서 나를 주는 것이다. 그 선생님은 내가 어떤 식으로 자기 반 아이들을 가르치는지 다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내 수업 시간에 태도가 좋지 않다던지 방해가 되는 아이들을 마치 들여다본 것처럼 훤히 알고 계신다. 어떻게 아시느냐고 물어 보있더니 아이들이 다 알려 준다고 한다.


내가 맡은 수업은 4학년 영어와 3학년 도덕이다. 과목의 특성상 아이들의 입을 여는 것이 중요한 수업이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이 도를 넘는다. 누구 하나가 수업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금세 학급 전체에 번진다. 이럴 때는 선동자를 먼저 가라앉혀야 한다. 이것이 내가 매번 아이들 앉은 자리표를 업데이트하는 이유다. 이름을 딱 꼬집어 부르지 않고는 그게 통하지 않는다.


어느 날 모 학급의 아이들 자리가 바뀌어서 자리표를 다시 해야 했다. 그랬더니 한 아이가 말했다.

“그냥 선생님이 외우시면 안 돼요? 아이들 특징을 기억했다가 외우면 되는데...”

그래? 나는 한 명이고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대략 사백 명인데 일주일에 한두 번 보면서 그냥 기억하지 그러냐고? 그러는 너는 내 이름은 기억하냐?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맞어. 그렇게 하려고 내가 너희들 이름 자리표를 만드는 거야. 너희들 행동이랑 특징 파악해서 이름이랑 같이 기억하려고.”

그러니까 너희들 행동 잘해야 할걸? (사실 나는 그렇게 말한 아이 이름을 알고 있다. 키가 커서도 기억하고, 쉬는 시간에 복도에 전시한 학급 아이들 작품을 혼자서 정리하는 것을 보아서도 기억하고, 수업 시간에 물색없이 장난말을 던지는 아이들 속에서 휩쓸리지 않는 드문 아이라서도 기억한다.)


아이들 수업을 모두 마치고 나서 가벼운 마음으로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뒤에서 내 이름이 들려왔다.

“엇? 유OO 선생님~!”

돌아보니 4학년 아이였다. 가방을 메고 있는 것이 하교하는 모양이다.

“안녕하세요?”

“안녕? 공부 잘 마쳤어?”

“네.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아이들이 나를 말할 때 보통 3학년은 ‘도덕 선생님’, 4학년은 ‘영어 선생님’이라고 부르는데 ‘유OO 선생님’이라니, 뭔가 개인적으로 더 친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나도 그 아이 이름 불러주었다.

“그래. OO이 잘 가~!!”

매거진의 이전글담임하고 싶은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