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는 여자다

by lemonfresh

인간의 성역할은 배우는 것인지 타고나는 것인지 종종 궁금할 때가 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타고나는 측면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세하는 쑥쑥 잘 크고 있는데 오빠 호수는 몸무게 늘리기가 무척 어렵다. 먹는 게 많지 않아서 그렇다. 먹어도 과일과 채소로 편중되어 있고 탄수화물 섭취가 적다. 반대로 세하는 밥을 잘 먹는다. 반찬으로는 두부를 좋아한다. 간식도 아이스크림 요구르트 치즈 등 채소가 적다. 그래서 세하는 밥을 좀 덜 먹여야겠고 호수는 더 먹여야겠는데 아이들의 기호를 거슬러 무얼 먹이기가 쉽지 않다.

호수가 밥을 잘 먹으면 칭찬을 해준다. 몸무게도 꾸준히 잰다. 하루는 호수가 밥을 잘 먹어서 내가 칭찬을 해 줬더니 세하가 오빠 잘했다고 보상을 준다고 했다. 보상은 젤리인데 여러 가지 색이 있고 그에 따라 다른 맛이 난다. 세하가 오빠한테 네 개를 준다고 맛을 고르라고 하더니 둘이서 세하 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놀았다. 그리고 할머니에게도 아빠에게도 밥 잘 먹은 보상으로 젤리를 주었다. 다이어트를 하는 아빠는 사양하는 것을 세하가 잘 설득해서 한 개를 받게 했다. 나도 좋은 척하고 두 개를 받았다.

며칠 전에는 오빠가 친구에게 파자마 파티 초대를 받았다. 한참 들떠서 시간 가기를 기다리는데 세하가 내게 과자 박스를 달라고 했다. 내려 주었더니 그중에서 젤리와 비스킷을 하나씩 골라 오빠에게 주었다. 이따가 친구네 집에 가져가란다. (정작 오빠는 주는 걸 받는둥 마는둥하고는 친구네 가져가지도 않았다.) 또 어떤 날은 내게 자기 사탕 봉지에서 사탕을 네 개 꺼내서 내게 주면서 말했다. 맛 별로 하나씩 고른 것이다. "할머니 배고플 때 먹어. 아까 아침에 밥 못 먹었잖아. 그럴 때 이거 먹어." 아이들 아침 식사를 챙기고 학교 유치원 갈 준비를 해주다 보면 같이 앉아서 밥을 먹을 심리적 여유가 없다. 그래서 그날도 아침을 제시간에먹었었다. 그래서 내가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사탕을 받아서 주머니에 넣었다. 누가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참 신기한 일이다.

오늘 아침에는 호수의 장난기가 발동을 해서 내가 무척 어려웠다. 학교 갈 시간이 다 됐는데 아직 옷도 덜 입었다. 혼자 입게 내버려 둘 시간이 지나서 옷을 입히려고 했더니 말을 안 듣고 장난을 쳐서 정말 화가 났다. 그랬더니 세하가 오빠 옷을 들고 입히려고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평소 세하가 오빠한테 져주거나 고분고분하는 애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자인 호수에게서는 볼 수 없는 행동이다. 호수가 누구를 보호하거나 도울 줄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그 방식이 아예 다르다. 호수는 지난번에 할아버지가 비닐하우스 한쪽 바닥에 블록을 깔 때 그걸 날라다가 할아버지가 쓰시기 좋도록 몇 장씩 놓아 드렸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세하의 관심사에는 들어있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 한다. 이성적 판단은 남자나 여자나 다를 것이 없지만 감성은 코드가 확실히 다르고 이건 타고나는 것 같다. 세하는 여성으로 자라기 이전에 이미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세하는 빨리 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