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을 하다

젊은 시절을 끔을 노년에 이루다

by lemonfresh

아침에 아이들 둘이 나란히 학교에 갔다. 세하가 입학한 지 한 주가 지났지만 학교를 같이 간 것은 어제와 오늘이다. 그동안은 서로 준비 시간이 안 맞았다든지 약간의 신경전이 있었다든지 하는 이유로 따로 다녔었다. 오늘도 약간의 위기가 있었지만 나갈 때는 무사히 둘이서 사이좋게 나갔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세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깜짝 놀라 받았더니 오빠가 실내화 가방을 안 가져갔다고 자기가 가지러 온다고 한다. 오빠는 더 상위 학년이고 자기는 일 학년이어서 시간이 자기가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 내가 급히 실내화 가방을 가지고 나갔더니 세하가 아파트 정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래서 얼른 실내화 가방을 내어주었다. 호수도 육교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가 육교만 건너면 되는 가까운 거리여서 다행이다. 아마 호수가 아니고 세하가 온 것은 세하의 제안이었을 것이다. 세하는 평소에도 누구를 돕는 일에 적극적이기도 하고 호수가 일방적으로 시킨다고 고분고분할 아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호수가 먼저 교실로 들어갈 것이 아니라면 세하가 오는 것이 시간상 이득이 없을 텐데 어쨌건 둘이서 결정한 사항이니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얼굴이 한껏 상기되어 뛰어 온 세하에게 오빠의 실내화 가방을 넘겨주고 두 아이가 손을 잡고 계단을 오르는 것을 보고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생각했다. 나는 지금 시간 여행을 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적의 시간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젊은 날의 내가 꿈꾸었지만 할 수 없었던 것을 이제야 이루고 있다. 그 시절의 나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늘 시간에 허덕였다.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등굣길에 배웅을 하고 학교에서 돌아올 때 맞이해 주는 것을 얼마나 하고 싶었던가. 그런데 인생 참 아이러니 하다. 내가 그렇게 원할 때는 허락되지 않더니 이제 그런 소원은 다 잊고 여생을 천천히 살려는데 굳이 그 묵은 꿈을 되살려 놓다니 말이다. 그런가 하면 현재의 삶에 어울릴만한 생활은 이루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를테면 다른 대부분의 지인들처럼 각종 문화센터의 강의를 듣는 다던가, 문득 여행을 떠난다던가, 그렇게 재미있다는 파크골프를 하던가, 누구처럼 제주도에 가서 한 달 살면서 자전거 여행을 하던가 하는 등의 즐거움을 추구할 시간 여유가 없다. 젊은 날의 꿈을 이제사 이루고 현재의 꿈은 손 안에서 떠나게 하다니, 그래서 파랑새는 늘 집 밖에 있고 무지개는 쫒아도 손에 쥘 수가 없는 것일까?


그래도 나이를 먹으면서 현명해진 한 가지가 있다. 지금의 이 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젊어서는 좀처럼 깨달아지지 않던 사실을 지금은 새록새록 깨닫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린 손자 손녀가 같이 학교에 가는 이 장면이, 할머니가 보고 싶어 집으로 막 뛰어 왔다는 아이의 말을 듣는 것이, 아이가 아침에 주문한 카레를 저녁에 만들어 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상인지 지금은 잘 알고 있다.


또한 아침 일찍 탭을 챙겨서 도서관 카페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여유와 한가로움을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주변에는 나처럼 나이를 먹은 몇몇이 노트북을 챙겨 와서 각자의 일에 몰두하고 있다. 다들 멀끔한 차림에 점잖은 태도로 보아 저이들도 퇴직 후 느릿느릿한 여생을 보내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루 종일 있어도 아무도 눈치 주지 않는 이 카페의 자릿값은 오늘은 삼천 원이다. 아메리카노를 샀더라면 이천 오백 원이었을 텐데 오늘은 오백 원을 더 내고 카페라테를 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동안은 노년의 꿈을 따라 살고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는 젊은이의 꿈을 따라 살 것이다.


그래서 내가 얻은 결론은 현재의 생활을 감사하게 여기자는 것이다. 누구나 다 말할 수 있지만 누구나 그렇게 하지는 못하는 그 어려운 명제를 굳이 내가 한번 해 보겠다. 나의 여생을 위해서, 내 여생 동안 함께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