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emonfresh
Jul 20. 2016
내일이 오늘이 되는 데는 하루가 걸리고, 내년의 어느 날이 올해의 어느 날이 되는 데는 일 년이 걸린다. 그러나 미래에 일어날 어떤 사건이 현재가 되는 것은 일정한 기간이 없다.
재작년 봄에 친정아버지 팔순 때 오랜만에 집에 내려온 딸아이와 아들아이를 태우고 아버지를 뵈러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딸은 그때 서른 살이었는데 아직 특별한 남자친구가 없었고, 아들아이는 대학 3학년이었다.
“할아버지가 벌써 팔순이라고요?”
“그러게. 그리고 사 년만 있으면 아빠도 회갑이다.”
“엥? 벌써? 우리 아빠가 회갑이 된다니!”
“그래. 실감 안 나지?”
나는 자주 생각했었다.
“옛날 같으면 회갑이면 손주 손녀 다 볼 나이인데 우리는 어떻게 되려나, 며느리까지는 몰라도 사위까지는 봤으면 좋겠는데...”
그때 육아 삼십 년 차인 남편과 나의 과제는 아이들을 무사히 독립시키는 일이었다. 딸아이는 이미 자립을 한 상황이어서 결국 우리에게 남은 문제는 아들이었는데 이 일이 만만치 않았다. 우선은 학교부터 마쳐야 할 일이고, 그다음 취업 준비, 어렵게 취업, 그리고 더 어렵다는 연애, 결혼 준비, 드디어 결혼, 이 중차대한 프로세스를 무사히 치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물론 어떤 형태로든 결국 그 지점에 이르기는 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머리 큰 자식을 두고 겪을 일들이 얼마나 버거울지 그게 지레 걱정인 것이다.
그로부터 이년이 흘렀고 아직 남편은 회갑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이야기했던 미래는 벌써 실현되었다. 딸아이는 그해 겨울 남자친구를 만나서 작년에 결혼을 하였고, 아들아이도 연애, 취업, 졸업의 과정을 거쳐 지난봄에 결혼을 하였다. 부모인 우리는 물론 본인조차도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될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아들에게서 머지않아 손주를 볼 터이니 남편 회갑 때에는 사위 며느리뿐 아니라 적어도 손주 하나는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그리 일이 쉽게 되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순서대로 늘어놓으면 기나긴 과정이었지만 연애와 취업이 졸업 앞으로 끼이자 되자 일이 뚝딱 진행된 것이다.
그런데 기다리던 미래가 급속히 현실이 되자 다른 한편으로는 마치 무지개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공허한 생각도 들었다. 지금까지 내게 미래는 미지의 영역이고 바람과 희망의 영역이었는데 이제는 그 안에 갈무리 해 놓았던 소원들을 훌떡 써버리고 나니 마치 보물 바구니를 다 비워버린 사람처럼 마음이 허전했다.
그런데 어제의 일이었다. 인터넷에서 책을 한 질 샀다. 손주가 태어나면 읽어줄 아기 그램 책이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마음에 생기가 돌았다. 아기가 태어나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다시금 미래에 대한 계획과 기대가 되살아나는 것이다. 아이는 내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해 주겠지. 이제까지 해 보지 못한 ‘할머니’ 역할 말이다. 그리고 가족 내에 아기가 생긴다니 마치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어느 시점, 가령 우리 아이들 어렸을 때로 시간여행을 하는듯한 느낌이랄까? 그때의 마음을 다시 느낄 수가 있다니! 이래서 다들 손주가 생기기를 그렇게 바라는가 보다. 더구나 다행인 것은 아들아이가 인접한 시군에 살고 있어서 남편과 내가 아기를 보러 다닌다거나, 아기가 커서 방학 때 할머니 댁에 놀러 오거나 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는 않다는 것이다.
미래는 우리에게 언제쯤 오는가? 시간상의 미래는 지금도 우리에게 속속 도착하고 있다. 그 미래는 우리에게 와서 무엇이 되었나? 그것은 다시 현재가 되었다. 그래서 미래는 우리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가 기다리는 미래가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있을 어떤 사건이라면 거기에는 상대성 이론이 적용된다.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빨리 올 수도 천천히 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살아보니 어떠한 사건이 일어나는 데에는 우연도 중요한 변수가 된다. 스스로 노력해서 준비하는 미래도 있지만 상황이 갑자기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로는 노력보다 우연의 힘이 더 셀 때도 있다. 그런 면에서 미래는 어느 날 우연히 그리고 갑자기 우리에게 오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