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7.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인터뷰집 첫 페이지에 들어갈 개인 프로필이라고 생각하고 '지금의 OOO' 님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길게 썼으나 다 날아갔다. 아 정말 속상하고 기억도 안 난다. 다시 쓴다
자기소개 :
지금은 아무것도 못하고 움직이는 것은 전적으로 혜송의 부축받아하고 있다. 송에게 감사 이 지경이 된 나를 집에 두고 챙겨주니.
1958년 태어났으며 길에서 넘어지던 날 (2015.12.3인지 12.8인지 불명-복원 중. 아무튼 그달 초)까지는 잘 걸어 다녔다. 그 후에도 반년 간 병을 인지 못하다가 2016년 6월에야 병원에 소뇌위축증 진단을 받았다.
첨에는 걸어 다녔고 매일 아파트 경내를 산책도 했다. 워커를 갖고. 그러다가 2019년 경 못 걷게 된 듯.
아이들 둘을 키웠고 유학생, 회사원이었다.
요샌 집수리로 인해 역삼동 디자이너스 호텔에 송과 와 있다.
4월 14일 일요일 아침 이리로 왔고 여기 온 뒤로도 4월 23일 화요일 열 시에 믿음치과 가서 정기검진 및 스케일링을 했고 (이때 잇몸 치료의 필요가 생겨 15만 원이 들었다) 4월 25일 목요일엔 재활을 갔다. 8시 30분에
이 모든 걸 날 데리고 가려면 번거로운데 혜송의 수고가 많다.
4월 28일 일요일엔 MRI를 찍으러 가야 한다. 없어질 것 같아 일단 보내고 추가하겠다.
한 일은 여러 번역서 그리고 쓰다 만 논문. 나는 논문관 안 맞는 듯. 논리적으로 따지고 체계를 세우는 건 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감정에만 호소하고 감정적으로 나가는 건 어제 민희진을 보니 그 역시 아닌 듯.
나를 잘 파악한 것은 내 아버지인 듯. 아티스트라고 하셨으니.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좋았고 항상 문과 과목, 특히 국어를 잘했다. 국어는 공부를 많이 안 해도 늘 점수가 좋았고, 영어도 그랬던 듯. 반면 수학이나 물리는 안 그랬다. 그래서 장래희망은 늘 문과였다. 지금 생각하면 두 남동생의 이과 기질은 엄마에게서 온 게 아닐까 싶다. 나와 선근은 문과 기질과 아버지의 체질을 많이 물려받았고 나는 그중에도 J가 없어 뭘 계획하거나 체계화하는 걸 잘 못 한다. 좋은 문학 작품을 쓰거나 해석하겠다는 포부는 있었지만 논문을 써보니 어떤 문학작품으로 눈문을 쓴다는 건 나로선 동어반복인 듯했고 회의를 느껴 작파했다. 돌아가시기 전 회고록을 쓰시려고 시작만 해놓고 결국 집필을 못하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그런데 아버지에겐 J의 측면이 많았던 듯 특히 사건, 약속 같은 것. 따지고 보면 나는 J 틈바구니에 있던 P인 것 같다. 그래서 매사에 이렇게 야무지지가 못한 걸까. 삶의 매듭도 그렇다.
2015년 12월 3일 (8일인지 날짜 불명-확인 중) 길에서 넘어지기 전까진 그런대로 살았다. 넘어진 후에도 반년 간 병원도 안 가고 병이라고 생각지도 않다가 2016년 6월에야 세브란스에서 진단을 받았다. 소뇌위축증이라는. 그 이후로도 8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번역을 할 수 있었던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많은 책을 번역을 했는데 이젠 오타가 많이 나고 화면이 잘 안 보여 그 작업도 할 수가 없다. 지금할 수 있는 건 텍스트를 읽는 것뿐이다. 잘 읽진 못한다. 이북이 좀 더 쉬운데
2024.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