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을 읽고 2024.2.27 작성한 오독일기
피아노에 대해 집요하도록 자세히 묘사한 책을 읽는 동안 자연스레 우리 집 한구석에 묵묵히 놓여있는 피아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안방 가장 구석에 자리한 피아노에 생각이 닿자마자 미안한 마음부터 들었던 건, 책에서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 피아노들과 달리 우리 집 피아노는 10년 가까이 조율은커녕 방치된 채 뚜껑을 꾹 다물고 있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긴 침묵은 유일한 연주자였던 엄마가 피아노를 더 이상 칠 수 없는 병을 얻은 이후부터 시작됐다. 균형감각이 상실되는 병으로 점점 몸도 비틀비틀, 말도 어눌하게 변해갔으니 손가락이 예전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여질 리 없었다. 천천히 치는 일이 얼마든지 용납되는 컴퓨터 키보드 위에서보다도, 피아노 건반 위에서 훨씬 일찌감치 엄마의 손가락은 종적을 감췄다.
지금보다 좁은 집에 살았을 때도 거실 TV 자리를 떡하니 차지할 만큼 이 피아노는 존재감이 컸다. 국민학교 취학 전부터 피아노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며 전공으로까지 고려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취미로 남겨두어야 했던 엄마에겐 ‘노래 주머니(of 혹부리 영감)’같은 상징성이 있었다. 모태신앙인 천주교에서 불교로 종교를 바꾸는 동안에도 ‘반주자’라는 지위는 잃지 않고 유지해 온 엄마. 50대에는 다시 학생의 마음으로 재즈 피아노를 배우러 홍대 부근을 왔다 갔다 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그때 반복해서 연습하던 선율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당시 대학생이던 내 눈에 진지하고도 즐겁게 연습하는 엄마가 훨씬 청춘이라고 느껴졌다.
‘엄마의 자랑이자 특기였던 식물 키우기. 엄마가 작은 식물원처럼 발코니에 가꿔놓은 수십 종의 화초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 엄마의 부재 16년간 아주 서서히 틀어지고 삭아가는 집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은유 작가 <해방의 밤>을 읽다가 이 대목에서 황량해진 우리 집이 겹쳐 보여 슬펐던 밤이 있다. 그 무성하던 화분들도, 우렁차던 피아노 소리도 온데간데없다. (똑같은 일을 왜 나는 못하는가?라고 누가 묻는다면, 이미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여러 번 던지고 거듭 실패한 뒤 자책을 거쳐 포기 상태라는 비겁한 답을 하겠다.)
현재 엄마의 외출용 모자 선반 역할만을 하고 있는 이 오래된 피아노는 곧 처분 예정이다. 마침 각성하고 집의 짐을 대폭 정리하고 있는 와중에 현관문 '피아노 매입' 광고 자석이 붙어있던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뤼크의 공방에서 취급해 줄 만한 가치의 피아노는 결코 아니지만 이 책의 슈팅글처럼 어딘가에서 꼭 맞는 쓸모를 찾을 수 있다면 기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