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오래된 기억의 유산

by 유을

내가 어렸을 적 토요일만 되면 할머니가 계시는 큰집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집으로 돌아오고는 했는데 그곳은 동생 둘의 손을 붙잡고 버스를 타고, 내리고, 또 다른 버스를 타고, 또 한참을 걸어서야만 도착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날씨가 매우 추운 날이면, 우리가 오자마자 방 한쪽에 항상 펼쳐 있는 이불을 들쳐놓고 새까맣게 타버린 장판 위에 나와 동생들을 앉쳤다. 바닥은 따뜻하다 못해 뜨거워서 엉덩이가 타버릴 것만 같았는데, 따뜻한 바닥을 위해서는 우리가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미리 연탄불을 떼어 놔야 한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할머니가 살던 집은, 어느 상가 건물의 옥상이었는데 지하인지 1층인지 모를 곳에는 아주 작은 집들이 많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너무 어둡고 무서워서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동생들의 손을 꼭 잡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옥상 집에는 화장실이 없어서 화장실을 가려면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공용 화장실을 써야만 했는데, 그 때문에 볼일이 급해도 항상 참고 또 참고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다가 겨우 갔던 기억이 있다. 겨울이 되면 연탄을 떼어야 했고, 가스레인지에 물을 끓여 뜨거운 물을 섞어서 세수를 했다. 그런 불편한 기억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매주 열심히도 할머니를 보러 갔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랬다. 추워도 추운 줄을 몰랐다. 우리가 앉아 있던 바닥은 항상 따뜻했으니까.


그렇게 우리가 하룻밤을 머물고 집에 돌아갈 때면 할머니는 옥상 창밖에서 얼굴을 내밀고 한참이나 손을 흔들어주셨다. 나는 가다가 다시 뒤돌아보며 손 흔들어 인사하고, 또 조금 가다 뒤돌아보며 또 인사하고는 했는데 할머니는 항상 그 자리에 계셨다. 지금도 할머니를 떠올릴 때면,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드며 웃고 있던 얼굴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지금 그곳은 부서지고 깨끗한 새로운 상가 건물이 지어졌다.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는 생각을 아직도 가끔 하고는 한다.


오랜만에 동생을 만나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동생은 나와는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날은 할머니 혼자 우리 집에 오시고는 했는데, 그럴 때마다 꼭 롯데리아에서 천 원이었던 햄버거를 세 개 사 와서 우리들에게 하나씩 나눠줬다는 기억. 나에게는 전혀 남아 있지 않는 기억이었다. 동생은 아마 할머니가 아니라 할머니가 사들고 온 햄버거를 기다렸을 설렘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나도 아마 할머니가 투박하게 건네었던 그 작은 따뜻함과 배려들이 기억에 남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같은 시간을 보냈어도, 기억은 각자에게 다르게 남겨진다.


지금 할머니는 기억이 온전하지 못하신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이름만은 기억하고 계신다. 동생에게도 내 이름을 부른다고 하니까 그건 사실일 것이다. 할머니에게 나란 존재는 어떻게 기억되어 남겨져 있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지만, 나는 이제 할머니와 그런 이야기는 나눌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현재를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더 이상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것이 슬퍼지기도 했다. 할머니는 나와 다른 시간대를 살고 계시고 나는 그게 언제인지 절대 알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결국에 사람은 각자의 마음에 남아있는 그 기억 안에서 살아지고 다른 것들은 전부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닐까.


점점 커가면서 할머니와 보내는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내 이름을 불러주고 나를 반겨주는 그 모습에서 어렸던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셨던 그 모습이 여전히 비춰 남는다. 그 소중한 마음을, 나도 나에 아이에게 그리고 아이의 아이에게까지 물려줄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말하는 연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