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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May 12. 2017

대한민국에서 '엄마'로 산다는 것

워킹맘의 고충과 육아의 현실

2016년 12월 29일, 행정자치부가 공개한 '대한민국 출산지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것이 불씨가 되어 '여권' 논쟁이 또다시 재점화된 것이다. 거센 비판을 받는 이유는 출산지도에 명시된'전국 가임기 여성 분포도' 때문이다. 행정자치부는 출산율 제고를 목적으로 공개했다고 항변하지만, 되려 '출산은 선택이 아닌 의무'라고 선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가장 큰 문제점은 '출산은 개인의 선택이고 자유이다'라는 명제는 무시한 채, 여성을 '자궁'과 '출산'이라는 키워드로만 분류했다는 점이다. 또한 분포도를 성범죄자들이 악용할 위험도 있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출산을 권장할 목적이었다면, 정부의 다자녀 지원 정책이나, 출산혜택을 홍보하는 내용이 더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실효성 차원에서도 하자가 있을 뿐더러, 결정적으로 출산지도에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여성들의 의사결정과 선택이 완벽히 배제되어 있다. 가임기 여성 수 분포도에서 여성은 자기 몸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여성은 오직 생산능력을 수행할 수 있는가로 분류되는 '객체'에 지나지 않는다는 전제가 의식에 깔려있다.


또한, 정작 정부지원이 절실한 미혼모가정이나,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불임'부부나 임신에 난항을 겪는 부부들을 위한 의료적 지원이나 보조는 자료에 나타나 있지도 않다. 이뿐만 아니라, 미혼이거나 결혼을 했어도 자녀계획이 없는 여성들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는 없이 여성에게만 굴레를 씌우는 것은 정부의 저열함를 드러내줄 뿐이다.

 

가임기 여성 분포 순위는 여성을 색식능력의 여부로 나눠 등급을 매겼다. 여성을 가축 취급한 것이다.


소셜네트워크(SNS)에서도 출산지도는 공론화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실제적인 도움도 되지 않을 뿐더러, 여성을 '임신과 출산에 선택권을 갖지 못하는 자궁'으로만 취급하고 비하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출산지도는 오히려 역효과만을 낳았다. 출산을 조장하기는 커녕, 불쾌감만 심어준 것이다. 또한 적령기임에도 아이를 낳지 않은 여자들의 신상을 공개해 비난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며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이에 행정자치부는 해당 자료를 비공개로 전환하고, 정부지원과 출산혜택의 홍보라는 기존의 목적만 반복하기만 했다. 이런 꼬리자르기식 정책은 한국의 여성관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만을 드러내줄 뿐이다.


실제 대상자들의 항의가 빗발치는데 과연 고려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의 본심만 더 드러낼 뿐이다. 행정기관에서, 공무원들 주도하에 이런 자료가 만들어지고, 이 시안이 통과되었다는 사실만봐도. 이 나라가 여성을 자기 몸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간주하고 있다는 생각을 배제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문제의 원인을 보다 근본적으로 분석해 보자. 왜 여성들은 아이를 갖지 않으려 할까? 이유는 명백하다. 경제난과, 커리어의 단절 문제, 자녀 교육, 양육비 등 출산뒤에 가려진 현실적인 제약 때문이다.

여성은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 자기 삶의 많은 부분을 희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특히 워킹맘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직장인과 가정주부라는 이중직업을 병행해야 하며, 육아휴직 마저도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쉽게 신청하지 못한다. 아이와 애착관계를 형성할 시기인 생후 3년동안을 오롯히 있어주고 싶어도 그러질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내가 쉬면, 나의 업무가 짐이 되어 동료들에게 피해를 줄 수 밖에 없기에 휴직계는 항상 서랍 속에 고이 모셔져 있다.


 '미생'의 선차장은 워킹맘이다. 그녀는 일에 쫒겨 아이를 돌봐주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고 있다.


고된 근무를 마치고 귀가하면, 워킹맘을 맞이하는 것은 환영과 따뜻한 위로가 아닌, 잔뜩 어질러진 방과, 

아침 그대로 쌓인 설거지, 한숨이 절로 나올 수 밖에 없다. 퇴근한 남편과 이 얘기를 논의해 보지만, 이내

서로의 역할을 '공평하게' 분담한다는게 얼마나 타협하기 힘든 일인가를 깨닫게 된다.

서로의 일터에서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온 부부는 서로를 따뜻하게 보듬고, 다독일 수 있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힘듦의 무게를 경중하고 언성을 높일 뿐이다. 


아이의 발달속도에 맞춰, 학교에 가면, 알림장 봐주고, 숙제 대신해주고 해도 시간이 모자람을 느낀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첫 등원할 때, 초등학교에 입학해 학부모 모임이니, 운동회 같은 학교행사 통지문이라도

오면, 나는 직장때문에 참석하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다. 이러고 싶지 않은데, 아이에게 점차 미안해하는 엄마가 되어 간다. 어느덧 연차가 쌓인 워킹맘에게, 아이와 소중한 추억을 쌓을 시간은 허락되지 않는다.

아이가 열이 나거나, 몸이 아픈 날에는 엄마가 아니라 죄인이 된다.책임은 아빠가 아닌 엄마에게로 쏟아진다. 

아이가 잘못될까봐 마음 졸이며, 바쁜 회사생활 중에도 가사노동과 양육이라는 무급노동을 병행한 워킹맘에 

대한 인정은 그 어디에도 없다.

워킹맘은 그렇게 '무책임한 엄마'와 '게으른 아내'라는 비난을 동시에 듣는다.


육아는 고된 정신적, 육체적 노동이다.


전업맘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출산 후 독박육아로 육아에 전념하느라 자신의 시간이 사라진 엄마들은 

산후우울증이란 이름의 열병을 한차례 더 치른다. 육아는 노동의 연장선이지만, 그들의 희생과 노고는 인정받지 못한다. 한국 사회가 엄마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치부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고행은 숭고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불평이나 호소는 전달되지 못하고 공중에서 흩어지기 일쑤다.


누구를 위한 출산과 양육인가.

출산율 장려 뒤에는 한 개인이 엄마가 되어 포기해야만 하는 많은 것들,  불합리함이 숨겨져 있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사회전반의 인식개선과 실질적인 복지정책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여성에게 강제하는 것은

지나치게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일이다. 엄마는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 인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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