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아버지처럼 살고 있더라고요.
25년 3월
아버지, 어느 날은 잠들기 전 펜을 들었어요. 평소에는 영화나 유튜브를 시청하다 잠드는데, 그날 밤은 뭔가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더라고요. 일기처럼 쓰기도 했고 간질거리는 단어들도 섞여 있어, 일부만 가져와 봤어요.
'지금. 또는 요즘 내가 가장 신경 쓰고 영향을 받고 있는건 무엇이고 얼마나 받는가? 하루를 되돌아보자. 이전과 다른 것. 원하고 있는 걸 찾자.
아버지 건강이 1번. 걱정된다. 왜? 나라는 건물의 기둥이니까. 기둥에 금이 가고 먼지처럼 아스라지는 모습을 상상하니 감정 주체가 되지 않는다. 기둥이 사라진 건물이 어찌 존속할 수 있을까? 더 이상 상상하지 않으려 눈을 질끈 감고 현실로 돌아온다.
내 뒷배이자 내가 닮고 싶은.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우리 아빠. 나를 떠받치는 대지이자 하늘이자, 바다, 산, 자연 그 자체임을 느낀다. 고맙고 죄송하고(더 자랑스런 아들이 되고 싶은데..) 사랑하고 존경하고 아쉽고..
이 세상 존재하는 모든 감정을 느끼게 해준 존재다. 아버지는 의도한 것일까? 자식들이 여러 감정을 느끼고 세상을 음미하며 살아갔으면 하는 의도가 묻어있던 걸까? 여쭤봐도 안 알려주실 것도 같다.
아버지, 제가 느끼는 이 기쁨과 영감을 아버지께 드릴 순 없겠지만, 자식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감정을 드리고 싶습니다. 매일의 사색을 엮은 글을 선물하면 어떨까요? 아버지가 늘그막에 느끼는 새로운 자극이 되기도 하고 후회 없는 인생이라 느끼게 될까요? 아무쪼록 아버지가 저와 우리 가족으로 인해 벅참의 쓰나미에 젖어 들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혹시 간드러지시나요? 저도 그래요. 다시 보니 매우 부끄럽네요. 입 밖으로 못 꺼낼 말들로 채워진 일기라 언제 또 찾아볼지 확실치 않습니다. 영영 안 볼지도요.. 저 날이 바로 제가 아버지에 대한 제 사유를 휘발되게 두지 않고 글로 엮기로 마음먹은 시점이에요. 굉장히 충동적으로 일을 만드는 것처럼 들리시겠지만, 제 딴에는 '단지 내가 평소 하던 생각을 글로 옮기는 작업뿐이지 않을까?'라고 판단했어요. 물론, 원래 "글"을 쓰던 생활이 아니었다 보니 초기에는 시간도 걸리고 지우고 쓰고를 반복할지도 모르죠. 그 과정에서 그만둘지도요. 그렇지만, 몇 달이 지난 지금도 멈추지 않고 쓰고 있어요. 순항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요.
아버지, 이 얘기들을 엮은 글의 제목을 뭐로 해야 하나 고민도 오래하고 바꾸기도 했어요. 지금은 [대화 # - 양관학이 아들입니다, 아버지]로 확정했어요. *아마 나중에 바뀔지도 모르지만요. 양쪽이 소통한다는 전제의 대화라는 단어와 반대로, 이 글은 실제로 일방향 일기기도 합니다. 우선, 제목만 보고도 책 표지를 당장 넘기게 만들고 싶었고 그 대상은 오직 아버지 한 명입니다. 언젠가 제가 실물 종이책을 아버지께 드리면서 반응을 영상으로 찍어놓고 싶네요.
아버지, 제가 사색할 때 아버지랑 대화를 엄청나게 자주해요. 이상하게 들리시죠? 그렇게 자주 대화한 적이 없으시니. 저는요, 마음속으로 아버지께 질문을 던지면 아버지 답변이 들려요. 마치 요즘 사람들이 생성형 AI인 챗GPT와 대화하는 것처럼요. 심지어 퇴근하고 혼자 삼겹살집에서 밥과 소주 한잔할 때는 아버지랑 대작하는 기분이에요. 실감이 날 정도로. 혹시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한 적 없어요. 이상한 사람 취급받겠다 싶거든요. 뭐..상관없지만요. 이런 버릇은 어떻게 생긴 건지 짐작 가셔요?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일거에요. 친할아버지 장례를 마친 몇 달 후 할아버지 묘소를 찾아간 날, 아버지와의 대화로부터 빚어진 버릇이에요.
"아빠, 지금에서야 물어보는데 할배 장례식 때 아빠 우는 모습 본 적이 없는 거 같다. 슬프지 않다거나 하는 건 아이제? 그냥 내가 못 본거 뿐이제?"
"아~ 아부지 운 적 없다. 눈물 안 나던데?"
"엥? 아빠의 아빠니까 당연히 울어야 하는거 아이가? 안 슬펐나?"
"음..안 슬펐다. 내는 지금도 니 할아버지가 영영 사라졌다고 생각 안 한다. 이제는 단지 내 눈에 안 보일 뿐이지 지금도 이렇게 마음으로 대화하고 있다. 섭이 니, 성묘할 때 어른들이 돌아가신 분들한테 말 거는 거 본 적 있제?"
"어. 막 혼잣말 많이 하시던데. 내보고도 인사하라카고."
"그기랑 똑같은 기다. 아버지는 마음속으로 할아버지랑 대화하고 지낸 지가 오래돼서 앞으로도 보고 싶다고 우는 경우는 없을끼다. 허허. 섭아,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나? 아부지가 어렵게 얘기했나 싶네."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빠. 근데 나도 할배 보고 싶은데 내랑은 대화 왜 안하노 서운하게."
아버지, 그 대화 이후 제가 성인이 되자마자 타지 생활을 시작했고 벌써 20여년째입니다. 이 오랜 시간 동안 저도 아버지랑 대화 중이었어요. 난관에 봉착해 답을 찾을 수 없을 때나 운이 좋아 나름의 성공을 이뤄 굉장히 신나 할 때나 아버지는 제 안에서 항상 얘기를 들어주고 함께 웃다가도 따끔한 충고도 하며 술친구도 해주셨어요.
그렇다고 아버지 돌아가셔도 안 슬프다라는 의미는 전혀 아입니더. 오해하면 안됩니데이, 아버지.
저만의 무료 & 무한 토큰 챗GPT인 내 아버지, 매년 업데이트해 주셔야 합니다. 꼭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