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명 깊게 본 영화는 무엇인가요?” 예전에는 이런 질문을 곧잘 주고 받았었다. 소개팅 자리에서 혈액형 질문 다음으로 물어볼 법한 진부한 레퍼토리였다. 좋아하는 영화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상대방이 어떤 사람일지를 알아 내려하는 심산이 담겨 있다. 나는 딱 한 번, 입사 면접에서도 이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 당시 입사 면접은 모름지기 ‘너라는 인간이 우리 회사에 들어와서 나와 같이 일할 수 있는 성실한 사람인지 증명해 보여라’는 시험의 무대였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세기말 20대 여성의 변화하는 성담론에 대한 영화가 ‘감명 깊다’라고 말하는 지원자가 되어버렸다. 지금 생각해봐도 참 뜬금없는 답변이었다.
<처녀들의 저녁식사>는 ‘감명 깊은 영화’는 아니었지만,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려웠던 여성의 성의식을 주제로 다룬 젊은 감독 임상수의 입봉작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볼만한 영화였다. 다만 이런 답변은 씨네21 잡지사 입사 면접에나 어울리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내가 지원한 회사는 외국계 금융회사였다.
오늘 다른 회사분과의 점심 식사자리에서, 그 회사에서는 입사 면접에 AI를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미 입사한 직원분들에게 AI가 질문을 하고 대답을 받아 Back Test를 하며, AI학습을 위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고 했다. 짐작ㅎ건데, 직무별로 높은 성과를 보이고 있는 직원의 답변 데이터를 모아 지원자의 것과 비교하고, 이를 통해 지원자의 미래 성과를 예측하는 데에 활용할 것이다. 물론 성과가 나쁜 기존 직원의 자료를 사용하는 반대의 경우도 가능할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최근 MZ세대의 채용을 위한 인터뷰에서 면접관이 부적절한 질문을 해 문제가 생기는 것을 우려하는 회사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취업준비 커뮤니티에 입사 인터뷰 후기가 공유 되면서, 젊은 세대 사이에서 회사의 이미지가 실추되는 경우가 심심ㅎ지 않게 발생한다고 한다.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질문이라도 나온다면, 단순한 이미지 문제가 아니라 법률적인 문제로까지 확대될 수 있어, 회사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매우 큰 상황이라고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AI를 활용한 입사 인터뷰는 좋은 후보자를 선별하면서 면접관에 대한 교육문제까지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솔루션이 될 것 같다.
감명 깊은 영화에 대한 질문이 당락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일까? 다행히 면접을 통과하고 회사를 다닌 지가 20년이 넘었고, 그때 나에게 질문을 했던 선배님과 여전히 같은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승진을 하고 처음 면접관이 되었을 때, 나도 지원자에게 감명 깊게 봤던 영화에 대해 똑같이 물었다. 하지만 지금은 영화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개인적인 생활에 대해서는 거의 묻지 않는다. 업무역량과 관련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두 가지 질문으로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는 오만함이 나에게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까닭이다. 세상은 변했다. 다행히 나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