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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Jul 14. 2021

Just stay with me

<벤 이즈 백>, 피터 헤지스, 2019

* 본 후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크리스마스이브, ‘홀리’(줄리아 로버츠)는 교회에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큰 딸 ‘아이비’(캐서린 뉴튼)는 성가대에서 합창을, 어린 리암과 레이시는 예수의 탄생을 그리는 연극에서 각각 어린 양과 천사를 맡아 1년에 한 번 있는 특별한 하루를 준비한다. 그곳은 생기 없는 12월의 어느 하루가 아닌, 사랑과 온기로 가득 차 있다. 홀리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빛처럼.

 

연습을 마친 뒤,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들은 집 밖을 서성이는 ‘벤’(루카스 헤지스)을 목격한다. 아이비와 홀리는 그를 발견한 순간 얼어붙는다. 룸미러에 비친 차창 너머의 벤을 바라보는 홀리의 눈빛은 놀람과 경계를 지난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가 벤을 가득 안는다. 리암과 레이시도 차에서 달려 나가 벤을 반기지만, 아이비는 경계를 풀지도, 문 밖으로 나가지 않고 아빠에게 연락을 남긴다. 


아이비가 자신의 오빠에게 공포에 가까운 진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벤은 지금 약물중독으로 사회에서 격리된 채 치료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아빠 ‘닐’(코트니 B. 반스)도 같은 이유로 그의 상태를 의심한다. ‘다음 날 가족들이 찾아가기로 한 것을 알고 있는 벤이 왜 하루를 참지 못한 채 집으로 다시 돌아왔는지’. 이 지점에 대한 의문과 의심은 아이비와 닐뿐만 아니라 홀리 또한 품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현재 멀쩡한 모습으로 눈앞에 있는 아들을 믿고 싶다. 아니, 믿지 않더라도 하룻밤이라도 아들을 가족과 함께 있는 온기의 영역에 두고 싶다. 가족은 고심 끝에 현재 벤에게 약물 반응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하루를 함께 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절대로 홀리의 눈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그 조건을 달고 홀리와 벤은 함께 쇼핑을 나간다. 


영화 <벤 이즈 백>은 ‘의심’과 ‘믿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극명하게 보여준다. 생기 잃은 파란 빛의 12월의 풍경과 교회의 풍경의 온도가 달랐던 것처럼. 홀리와 벤이 쇼핑을 나간 낮을 포함한 하루의 절반 정도 되는 시간 또한 후에 있을 밤과 새벽의 사건과 대비된다. 낮은 ‘의심의 시간’이다. 



쇼핑몰을 다녀오는 길지 않은 시간에도 벤을 자극하는 ‘약물’과 관련된 인물들이 곳곳에 등장하며, 홀리를 경계하게 만든다. ‘남들은 다 믿어도 본인은 믿으면 안 되는’ 힘든 싸움을 하고 있을 아들을 위해 홀리는 지속적으로 벤을 격려한다. 하지만 벤은 끝내 약의 유혹에 흔들린 모습을 보이며 따뜻한 그녀의 격려들을 단번에 부러뜨린다. 벤은 계속 ‘솔직함’을 말하지만 결국 홀리가 발견하는 것들은 아들의 ‘거짓’뿐이다. 엄마와 아들이 함께 보낸 낮의 시간은 결국 묘지에서 끝난다. 엄마는 아들의 죽음을 단정 짓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그에게 강력하게 경고한다. 


반면, 밤은 탄생과 눈물로 시작한다. 교회에서는 영화의 시작부분에서 리암, 레이시, 아이비가 연습했던 연극과 합창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던 벤은 끝내 눈물을 흘린다. 낮 동안에 홀리의 믿음이 짧고 빠르게 무너졌던 것처럼, 밤이 시작될 때 벤이 흘린 후회와 회개를 담았을 따뜻한 눈물의 온기도 빠르게 식는다. 집에 침입한 누군가가, 반려견 ‘폰스’를 훔쳐간 것이다. 집의 귀중품들은 모두 놓고, 가족이 (특히 벤이) 아꼈던 폰스만 사라진 것에 벤은 본인이 연루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그는 폰스를 찾고 모든 걸 되돌려 놓기 위해 무작정 밤으로 뛰어나간다. 그리고 차로 그를 따라간 홀리는 아들과 함께 폰스를 훔쳐갔을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하나씩 찾아 나선다. 



낮 동안에는 홀리가 벤을 통제하고 의심하며 둘 사이의 거리가 굉장히 밀접했던 것과는 반대로 폰스를 찾는 밤 시간 동안은 벤이 모든 상황에 앞장서며 홀리를 차에 격리시키고 멀어진다. 그녀는 주로 불안한 마음으로 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다. 그러면서 홀리는 벤에게 깊게 박힌 중독의 뿌리들을 보게 된다. 그동안 그녀와 가족들이 주시했던 것은 ‘약물’이었다면, 이때부터 드러나는 것은 빠져나올 수 없는 ‘중독’의 현실이다. 등잔 밑에서 자라난 중독의 시작을 보며 홀리는 구토한다. 그녀는 그 지점에서부터 중독문제, 그리고 아들을 새로운 시선에서 바라본다. 계속해서 멀어지는 아들을 보며 그녀는 ‘중독자’가 아닌 아들을 중독으로 끌어당긴 ‘환경’들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것은 외부에도, 또 그녀 자신에게도 있었다. 


들어가기는 쉽지만 나올 수 없는 중독적인 환경은 올무처럼 벤을 묶고 있다. 그건 낮에 홀 리가 경고했듯 죽어야 끝이 날 정도로 단단하게 벤의 목을 감고 있다. 벤은 자신의 목줄을 쥔 사람을 향해 간다. 하지만 딜러와 중독자의 관계는 신과 인간과의 관계만큼이나 절대적이다. 그래서 벤은 홀리에게 자주 자신을 포기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본인 또한 본인의 ‘가치 없음’을 지속적으로 말하며 스스로를 포기하려고 한다. 이때도 홀리는 그를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고 재차 말하지만, 영화 초반부터 계속되는 모자(母子)의 이런 식의 대화는 반복되며 점점 짧게 끊긴다. 아들과의 물리, 심리적 거리감이 지속해서 멀어지는 상황 속에서 홀리는 벤에게 느끼는 본인의 죄책감을 쏟아낸다. 


그녀가 전 남편과 이혼하는 과정에서 아들에게 ‘짐’을 지어줬다는 것이다. 홀리가 말하는 짐이라는 것은 ‘아이가 엄마의 행복을 바라는 것’이다. 홀리가 지금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혼과 재혼 사이부터 지금가지 벤이 지고 있었던, ‘엄마의 행복’이라는 짐 덕분일지도 모른다. 이 말은 현재의 아빠와 벤 사이의 거리감이 중독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약물과 관계없이 벤은 그동안에도 ‘엄마의 행복’을 위해 끝내 가까워질 수 없는 아빠와의 관계를 참고, 노력해왔던 것으로 짐작된다. 


홀리가 아들의 중독에 섞인 본인의 죄책감까지 파고 내려가는 동안 벤은 차를 타고 밤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이 순간 아들을 바라보기만 하면서 쌓였던 그녀의 불안과 무력감이 희망의 둑을 무너뜨리고 터진다. 남편은 벤이 집을 떠나면서부터 경찰에 신고하자고 말했지만 홀리는 벤을 잃어버릴 때까지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아들이 범죄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도 있겠지만, 그녀는 남편에게 ‘벤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말하고 싶지 않아 거짓말했다고 고백한다. 이때 벤이 겪었던 모든 혼란을 체험한 홀리는 아들과 같은 사람이 된다. 그녀 또한 벤이 괜찮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불온하게 품고 있었고, 끝내는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힘들 정도로 그 희망에 중독된다. 그리고 끝내 벤이 떠나갔을 때, 본인 또한 거짓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밝힌다. 


홀리가 끝내 말하지 않은 것이 ‘본인이 벤을 잃어버린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점은 홀 리가 벤에게 느끼는 사랑의 깊이가 다른 가족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녀는 벤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엄마인 ‘자신’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이런 믿음은 그날 밤 긴박하고 짧았던 부부의 통화에서 날카롭게 드러난다. 남편이 벤을 ‘우리 아이’라고 언급한 것을 홀리는 ‘내 아이’라고 고쳐 되받아친다. 후에 홀리가 자신의 거짓을 밝히며 그녀에게 벤은 단지 아픈 손가락이 아니라, 본인과 동일시 될 정도로 강하게 연결된 존재라는 것이 드러난다. 


이제 홀리는 본인이 벤에게 지어줬던 짐을 되받아서 진다. 그 무게는 그녀가 통제할 수 없는 죽음으로 향해가는 중독이라는 운명 때문에 더 간절해진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그의 행복이나 구원이 아닌 ‘삶’ 그 자체다. 영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끝난다. 홀리가 벤에게 숨을 불어넣는 순간, 그녀의 뒤로 아침 해가 비친다. 


<벤 이즈 백>은 약물 중독과 다투는 모자(母子)의 이야기인 동시에 크리스마스라는 시점을 바탕으로 한 예수의 탄생과 부활에 대한 은유가 담겨있다. 하지만 <마더!>가 그랬듯 이 영화는 어머니를 중심으로 인간적인 시점에서 현실의 세속적인 사건을 빌어 비극적으로 다가간다. 성경의 은유들을 따라가 영화를 되짚어보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벤이 돌아온 것’은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의미를 모두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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