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도예가 크리스틴 코엘료의 전시회에 다녀와서
저번부터 브런치에 꼭 쓰고 싶었던 기억에 유독 남던 전시회였는데, 이제야 글을 쓸 여유가 생겼다. 2021년 5월 14일, 약 2년 전에 호주 UNSW 대학교 갤러리에서 열린 커스틴 코엘료(Kirsten Coelho)의 전시회에 다녀왔다. 커스틴 코엘료는 호주 애들레이드를 기반으로 30여 년간 활동하는 있는 도예가이다.
UNSW 대학교 갤러리는 UNSW 대학교에서 일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호주 국내외의 존경할만한 예술가들의 전시회를 개최하여 UNSW 대학교 학생들과 관객들에게 많은 영감과 문화를 정기적으로 제공하고 있는데, 이번 전시는 필자에게 개인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웠다.
전시회 작품은 '귀환' The Return인데, 호메로스의 대서사시인 오디세이아의 주인공이자 트로이 전쟁의 영웅인 오디세우스가 10년간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았던 고대 그리스 섬에서 영감을 받아서라고 한다.
커스틴 코엘료는 여행하면서 경험한 그리스와 로마의 유적지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의 형태들은 이 전시회에서 서로 모여서 그녀가 여행을 하면서 보았던 기둥, 조각상 및 건물을 재현해 놓았다. 즉, 크리스틴 코엘료는 고고학 유적지의 일부를 자신의 포슬린 작품들로 재해석했다. 현재는 폐허가 된 유적지의 풍경을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도자기 형태와 접목을 한 것이다. 마치 현대 유적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러한 포슬린 도자기를 통해 그녀가 여행했던 그리스와 로마 유적의 건축적 폐허에 대한 작가의 영감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들에는 문화적, 역사적 영향력들이 커스틴 코엘료 특유의 감수성들과 함께 뒤섞여 있다.
이 전시회는 평소 전시회를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큐레이터의 입장에서도, 관객의 입장에서도 특별하게 느껴졌었다. 이 전시회에 전시된 흰색 유약을 바른 39점의 포슬린 도자기들은 컵, 접시, 그릇, 물병, 꽃병 등의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이다.
작품 배치와 깔끔한 전시회 디자인, 전시 공간에서의 관객의 동선 등을 이용해 도자기를 친근하고 '낯설게' 연출해서 관객의 몰입감을 높였다. 익숙한 대상을 낯설고 특별하게 보이게 한 것이 이 전시회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익숙한 형태의 포슬린 도자기가 전시 공간의 조명, 그 조명으로 인해 생기는 작품의 그림자, 건물 모양을 연상시키는 디스플레이를 통해 또 다른 예술 작품으로 승화되었다. 낯설고 특이하게 보이는 작품 '배치'가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갤러리에 들어서면 마치 새로운 시공간에 들어서는 느낌을 주는 전시였다. 이러한 화이트 큐브 전시 공간은 작품들을 감상하는데 장애가 되는 모든 요소를 깨끗하게 제거했다. 창문이 없는 외부와 독립된 공간, 하얗게 칠해진 전시장 벽면들, 천장은 빛의 근원의 기능을 중시해서 이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오로지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게끔 만든다. 심지어 마치 이 전시회 공간 안에서는 시간의 변화 또한 영향을 받지 않도록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침묵의 미학에 완벽하게 기여했다.
작품들 또한 대부분 흰색으로 이루어진 이 전시는 마치 시간과 공간이 제한되어 있는 듯한 종교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 공간은 이 전시회에서 관객이 명상하고, 예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아주 조용한 공간을 제공했다. 어쩌면 이러한 분위기는 몇몇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갤러리 공간을 화이트 큐브로 발전시킨 모더니즘에 대해 브라이언 오도허티(Brian O'Doherty)가 정의했던 것처럼 마치 외부 세계가 들어오면 안 될 것 같이 말이다.
화이트 큐브 형태의 이 공간은 커스틴 코엘료의 흰색 작품들과 조화를 이루었고, 갤러리의 화이트 큐브 전시 공간은 깔끔한 흰색 벽과 선이 작품의 새하얀 곡선 디자인과 완벽하게 대비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화이트 큐브의 공간은 커스틴 코엘료의 하얀 작품들을 순수하고 특별한 감각의 예술적 가치를 더 끌어올린다.
이 전시회의 특징은 전시 공간보다 빈 공간이 훨씬 더 많았다는 점이다. 전시 공간에 처음 들어갔을 때, 솔직히 좀 휑해 보였다. 하지만 그 이유를 곧 깨닫게 되었다. 이 전시회에서는 관객이 작품을 바라보는 거리에 따라서 작품이 달라진다. 즉, 가까이에서 보면 도자기 형태 하나하나 볼 수 있지만 멀리서 보면 도자기들이 하나의 도시로 보인다. 그래서 관객이 다양한 거리에서 그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충분한 거리의 동선과 넓은 공간을 제공한 것이다. 즉, 거리에 따라서 작품들을 보는 시각과 풍경이 달라진다.
커스틴 코엘료의 작품들은 서로 어우러져 추상적인 형태의 앙상블을 이루어냈고, 빛과 그림자 또한 완벽하게 하나의 작품 그 자체였다.
(필자가 사진을 잘 못 찍어서 필자가 느낀 이 느낌이 읽으시는 분들에게 전달되지 못해서 공감을 못하실까 봐 걱정이다. 그리고 이 전시회에 대한 느낌과 리뷰는 개인 취향이니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를.)
커스틴 코엘료의 작품들은 한데 모여 고고학 유적지에서 보았던 쓸쓸한 도시처럼 보인다.
솔직히 필자에게 처음 한 번에 딱 감동을 주고 이해하기 쉬운 전시회는 아니었다. 이 전시회에서 필자가 특히 어색함을 느낀 부분은 마치 정신병원 같은 너무 하얗기만 한 공간에 너무 넓은 공간이었다. 미술적 배경을 바탕으로 크리스틴 코엘료의 목적을 이해하면 괜찮지만 만약 미술관에 익숙하지 않거나 이 전시회에 공감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라면 상당히 거부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갤러리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경험은 그저 시각적인 관찰을 넘어선다. 관람객은 그 자리에서 그저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정교하게 구성된 맥락 속에서 작품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은 작품의 주제, 전시 공간의 디자인, 작품 배치, 조명 등 여러 가지 요소로 구성되는데, 커스틴 코엘료의 이번 전시회는 그 모든 게 적합했다고 생각한다. 관객들은 정교하게 조정된 맥락 속에서 작품을 보며 작품과의 공감을 형성하게 된다. 물론, 관람객에게 맥락 전체를 이해하거나 탐구할 필요나 의무는 없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작품의 관람 형식과 태도를 규정짓는 갤러리 공간의 맥락을 알게 되면, 작품과의 공감이 더욱 깊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작품 자체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의사소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 갔을 때는 "이게 뭐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설명을 읽고 두 번째 갔을 때에 시간을 보내고서야 이 전시회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 전시회에서 제공하는 크리스틴 코엘료 작품에 대한 '정보'가 관객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라면 '변형'은 관객에게 익숙한 도자기 형태를 한대 모아서 마치 난생처음 보는 형태로 미지화를 시켰다. 코엘료가 의도한 도시 풍경을 연상시키게 하는 작품 형태의 '변형'은 분명 한 번에 이해하기에 쉽지는 않았다. 보통 전시회에서 보는 도자기 디스플레이 방식이 아니라서 낯설었고, 이 작품들을 이해하고 작가가 의도한 아름다움을 읽어내기 위해 오랫동안 들여다보아야 했다. 어려웠지만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작품은 고고학 유적지에 빗대어서 도자기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있으며, 사람의 움직임과 일상 사물의 변화하는 기능을 반영하여 융합과 변형에 대해 깨달음을 주었다.
필자 개인에게는 이해하고 해석하기까지 어려운 전시였지만 몇 년이 지나도 계속 생각나는 좋은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