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고 아름다운 시골 마을. 갑자기 동물이 죽고 숲과 강이 생명력을 잃다 새의 지저귐 같은 봄의 소리가 사라지는 '침묵의 봄'이 찾아온다. 마을에 드리운 침묵의 그림자는 사람이 뿌려 놓은 흰색 가루, DDT(살충제)가 원인이었다. 인간이 재앙을 자초한 것이다. -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중에서
과학 문명이 극도로 발전한 삼체 세계인이 인간 문명을 파괴하기 위해 펼쳐지는 SF 대서사시의 시작에 이 책을 보여준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라 할 수 있는데요. 오늘은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출간 60년이 지난 <침묵의 봄>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유효한 작품인 이유에 대해 리뷰해 보려 합니다.
20세기 환경 운동의 바이블
<침묵의 봄>은 미국 해양생물학자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이 1962년에 출간하여 오늘날 '환경 운동의 시초가 된 책'입니다. 이 책은 농업용 살충제(DDT)를 비롯한 인간의 무차별적인 화학방제가 생태계를 파괴하며 그 부작용으로 새가 사라진 '침묵의 봄'이 인간에게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지 경고합니다.
레이첼 카슨 · 에코리브르 · 2011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을 통해 인류가 무분별하게 자연에 뿌린 문명의 이기가 의도하지 않은 치명적인 부작용을 낼 수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켰습니다. 이를 계기로 전 세계인이 환경과 생태계 보호 문제를 진지하게 돌아보고 각성했다는 점에서 인류학적으로도 의미가 큰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을 적용할 때는,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열정적인 생태주이자이자 보호주의자인 레이첼 카슨은 57세에 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켰습니다. <침묵의 봄>은 출간된 해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1960년대 풀뿌리 환경운동 성장에 기폭제가 되었으며, 미국의 농업용 DDT 사용 금지에 기여했습니다. 이전에는 없었던 개념인 환경운동, 정부의 환경부 출범 계기가 되었으며 지금까지 20세기 환경학 최고의 고전으로 꼽히며 널리 읽히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맹신이 초래한 재앙의 대물림
환경부 - [책 리뷰] 8분만에 읽는 침묵의 봄 I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이 가져온 비극 I 환경산책
(...) 인간이 무분별하게 뿌린 살충제와 제초제는 지하수에도 영향을 미치고 결국 토양에도 쌓이게 되지요. 이 유해 물질들은 자연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주게 되고 결국 생물의 체내에 축적되어 상위 포식자로 갈수록 엄청난 농도로 축적됩니다.
축적이 어느 정도 진행될 때까지는 어떤 것도 발현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유해 물질의 공격을 받고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지요. 그리고 생물의 경우에는 유해물질과 직접 접촉하지 않은 다음 세대까지 영향을 주기도 하고요. 결국 유전자 문제를 일으키는 등 인간의 몸과 다음 세대인 우리 아이들에게 끔찍한 영향을 주게 된다고 <침묵의 봄>에서 이야기합니다. - 환경부 '8분만에 읽는 침묵의 봄' 중에서
1960년대에는 살충제, 제초제를 먹은 동식물이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에게 영향을 미쳤다면, 21세기인 지금은 미세플라스틱 이슈로 옮겨온 듯합니다.
[스브스뉴스] *충격* 조개 속에서 발견된 미세 플라스틱의 정체를 찾아가 봤다
호주 뉴캐슬 대학이 실시한 플라스틱의 인체 섭취 평가 연구에 의하면 우리는 일주일 평균 약 2,000개의 미세플라스틱을 소비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미세플라스틱이 우리 몸속에 들어오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물 섭취이며 어패류, 맥주, 소금이 가장 많은 함유량을 보입니다.
미세플라스틱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출처. 대한건강의료지원단)
어패류, 맥주는 참을 수 있어도 물과 소금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인간이기에 더욱 참담한 마음이 듭니다. 이 위험이 지금 세대뿐만 아니라 후손까지 대물림된다는 사실이 절망스럽기도 한데요. 환경 이슈 대응에 미온적인 정부와 기업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많아지고 있고, 기후 난민이 되지 않기 위한 기후 소송이 전 세계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jtbc news - 남극 38.5도 상승 '대재앙'…"생존권 보장" 기후 소송|지금 이 뉴스
우리에게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가뭄, 폭염, 산불, 폭우, 홍수, 한파, 폭설 등 전 세계를 강타한 기상 이변들. 미래의 일로 생각된 재난은 어느새 일상이 되었고, 기후 난민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세계기후협약에 따라 탄소 배출을 줄이고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각종 정책과 사업이 쏟아졌지만, 올해 2월 지구 평균 온도는 13.54℃로 다시 한번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생물학자 96%가 지구의 평균 온도 2도 상승 시 인간은 멸종하며 앞으로 77년 남았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이미 ‘도착한 미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기상이변, 지구가 인류에게 보내는 경고 신호에 바로 대응하지 않으면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요.
올여름 최악의 더위가 온다? 두바이 홍수, 미국 가뭄 등 지구가 인류에게 보내는 경고의 신호 | KBS 다큐인사이트 - 도착한 미래 24.04.18 방송
"In nature, nothing exists alone."
레이첼 카슨은 자연 안에서 우리는 다른 모든 것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인류 대멸종의 재앙 앞에서, 우리는 기후 위기 시계를 멈출 수 없다는 걸 알지만 행동해야 합니다. 1960년대 <침묵의 봄>이 촉발한 문제 의식과 긍정적인 변화를 다시 소환할 때입니다.
우리는 지금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 곳에 서 있다.
(...) 우리가 오랫동안 여행해 온 길은 놀라운 진보를 가능케 한 너무나 평안하고 평탄한 고속도로였지만 그 끝에는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 아직 가지 않은 다른 길은 지구의 보호라는 궁극적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그 선택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
그동안 무분별하고 놀라운 위험을 강요당해 왔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면. 지금까지 충분히 인내해 온 우리가 마지막으로 알 권리를 주장하고자 한다면. 그때야말로 독극물로 세상을 가득 채우려는 사람들의 충고를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며 어떤 또 다른 길이 열려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