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혼모노(진짜)'로 산다는 것

3월의 김애란이 4월의 성해나에게 건넨 질문

by 작은 zaceun

『혼모노』를 읽으며 나는 몇 번이나 SNS 앱을 껐다 켰다를 반복했다. '진짜'를 연기하는 우리의 민낯을 이렇게까지 날카롭게 찔러도 되는 건가 싶어서.


공교롭게도 독후감을 쓰기 위해 책을 덮은 아침, 알고리즘이 김애란 작가님의 [질문들] 영상을 띄워줬다.

https://youtu.be/GVyMqldFQU4?si=5PNtXF9A81OiHivq


질문들 인터뷰에서 작가님은 'AI는 매끈한 답을 내놓을 수 있지만 망설임이 없다'고 하셨다. 동갑내기 친구 노회찬의 부고를 전하던 손석희 앵커의 20초 침묵. 어떻게 보면 방송 사고에 가까웠던 그 투박한 순간이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고. "인간의 결함은 한계가 아닌 미덕이자 개성이다"라는 작가님의 말씀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러고 보니 3월에 읽은 『안녕이라 그랬어』가 내게 건넨 위로의 정체도 결국 '망설임'이었다. 자본주의에 찌든 인간 군상의 찌질함, 그럼에도 부둥켜안을 수밖에 없는 연민. 그 머뭇거리는 인간성에 우리는 울었던 것이다.


『혼모노』는 그 반대편에서 같은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망설이지 않는 시대, 매끈하게 연출된 자아의 시대에 진짜는 어디에 있는가.'


성해나는 묻는다. 당신이 보여주는 그 감정, 정말 당신 것이냐고.

좋아요를 받기 위해 슬픔을 연출하고, 공감받기 위해 진심을 편집하는 우리에게. 소름 돋는 건, 책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픽션이 아니라 어제 내 인스타그램 피드였다는 것이다.


전업 작가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 후 가장 경계하는 것이 '연출된 나'였다. 글 쓰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카페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인증샷을 찍던 시절이 있었다. 정작 그 노트북 위에는 한 줄도 쓰여 있지 않았는데. 『혼모노』는 그 시절의 나를, 아니 어쩌면 지금도 여전한 나를 정면으로 마주 보게 했다.


이번 시즌 트레바리 클럽장님이 던지신 키워드는 '공감 설계'다.

3월 『안녕이라 그랬어』는 망설이는 인간의 미시적 감정을 배웠다. 그리고 4월 『혼모노』는 그 설계가 실패하는 지점을 보여준다. 너무 매끈한 공감, 망설임 없는 진정성은 결국 들킨다는 것. 혼모노(本物), 진짜는 오히려 결함과 머뭇거림 속에 있다는 것.


3월의 김애란이 '인간의 결함은 미덕'이라고 말한 자리에서, 4월의 성해나는 '그 결함을 지우려 할 때 우리는 가짜가 된다'고 응답한다. 두 작가가 건너편에서 같은 손짓을 하고 있는 셈이다.


AI가 1초 만에 그럴듯한 감정을 만들어내는 시대에,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은 '연출되지 않은 진짜', 즉 망설이고 결함 있는 인간성이라는 것. 작고 초라해도, 찌질해도, 연출되지 않은 내 모습 그대로를 글로 남기는 것. 그것이 AI 시대 작가의 삶을 추구하는 나의 윤리이자 책임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