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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그니 Apr 22. 2016

나는 알라딘 틴케이스를 사려던 것이 아니었다

...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어제 인터넷으로 주문한 책이 어제 도착했다. 세상은 말도 안 되게 빨라졌다. 덕분에 잃은 것도 많다. 가끔 서점에 놀러 가는 재미. 책 시장에서 헤매는 재미. 살까 말까 고민하는 재미. 우연히 마주친 책에 빠져 하룻밤을 두근거리며 보내던 재미... 그래도 그 시절에는, 북 틴 케이스는 없었던 것 같지만.


내 친구는 이렇게 말을 한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은 책을 파는 것이 아니라 '굿즈'를 파는 것 같다고. 작년에 '허니버터칩'을 인질로 삼아 과자 세트를 팔아대던 마트처럼, '굿즈'를 인질로 삼아 책을 파는 것 같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나도 처음엔 틴 케이스에 관심조차 없었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단편집이 나왔다기에 책을 사러 들렸을 뿐이다. 그리고 책을 닮은 양철 케이스 사진을 봤다. 


... 콘서트 때마다 '굿즈'를 사기 위해 돈을 모으는 아이돌 팬들의 심정을, 한정판이 품절됐다며 눈물 흘리는 내 친구의 심정을 요만큼은 알 것 같았다. '사고 안 읽은 책을 다 읽기 전엔 책 쇼핑은 그만!'이라고 했던 결심이, 사진 한 장에 무너지고 있었다. 이벤트 해당 도서 4만 원을 채워야 이 선물을 가질 수 있었거든...


   

인정하자. 알라딘은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결국 책 두 권을 더 장바구니에 집어넣었다. 책 값이 비싸진 덕분에 4만 원을 채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덕분에 주렁주렁, 사은품이 더 딸려왔다. 북엔드에 볼펜에 기타 등등... 책을 3권 샀는데 어쩌다 보니 사은품도 3개 받았다. 정말 한국적인 마케팅이다. 


사실 온라인 쇼핑이란 것이 그렇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 어떤 경험과 즐거움이라는, 그곳에서는 팔지 않는 것을 위해, 우리는 늘 처음에 사려고 하지 않았던 것을 산다. 음, 손실회피 심리와 자기기만에 기반한 자기만족이라고 해두자. 우리는 알파고가 아니니까.


고른 디자인은 고에다 히로카즈의 책 '걷는 듯 천천히'의 책 표지 디자인. 사실 '은하철도의 밤'을 고르고 싶었는데, K 모양이 먼저 골라 사고선 페이스북에 자랑했다. 암, 같은 것을 사면 안 되지(... 라지만 전국에 나와 같은 디자인의 북 틴 케이스를 가진 사람이 수백 명은 있을 거다.).


책을 담은 택배 상자가 도착하자마자 뜯어보고 사진 찍었던 것도 역시 북 틴 케이스. 레이먼드 챈들러의 단편집은 아직 펴보지 못했고, 같이 산 두 권의 책은... 음, 제목이 뭐였더라... 아무튼 사은품으로 도착한 'BOOKS, I haven't read' 북엔드 옆에 잘 꽂아 두었다. 그러고 보니 사은품도 참 잘 골랐다.




북 틴 케이스의 사이즈는 2가지 라는데, L 사이즈는 나중에 고를 수 있다고 해서 그냥 M 사이즈로 받았다. 일반적인 책 크기...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대충 A5 사이즈 정도는 된다. 생각보다 두께가 넉넉해서 이것저것 넣어둘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집에 돌아와서 주머니에 있던 지갑이나 영수증 등을 대충 두는 용도로 쓸 예정이다.


지난번 카르타 오거나이저에는 굉장히 실망해서, 다신 이딴 상술에 넘어가지 않으리라 결심했지만, 다시 넘어갔다. 다행히 북 틴 케이스는 좋다. 은근히 인형 놀이 -_-; 하는 재미도 있고... 끼웠다 뺐다 할 때 틴 케이스 답게 뻑뻑하긴 하지만, 꽉 안 닫아 놓고 쓰면 된다. 뭐, 다른 틴 케이스와 마찬가지로, 이 제품도 쉽게 찌그러질 가능성이 아주 높긴 하지만.


웃긴 것은, 고에다 히로카즈 감독(... 감독 맞죠? 바닷마을 다이어리의)의 저 책은 알지도 못했고 -_-; 읽어본 적도 없다는 것. 괜히 미안할 필요가 없는데 미안하다(다음번엔 책을 사서 경건한 마음으로 읽어보겠습니다.). 아무튼 작은 것에 히히 낙락 하며 들떠 있다. 그리곤 하나 깨달았...을 지도 모른다. 확실히, 책을 읽는 것보다 이렇게 별 고민 없이 노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어쩌면 쇼핑도, 이런 놀이라는 것을. 


그래, 나 쇼핑 좋아하는 남자다. 나 혼자가 아니다. 장담컨데, 당신 주위에 있는 어떤 남자들 역시, 최저가 몇백 원 더 아끼겠다고 오늘도 몇 시간 째 웹사이트를 이 잡듯이 뒤지고 다니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재밌거든. 음... 이 글을 쓴 나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처럼(마무리가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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