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블 스마트폰의 해가 되던가, 아무것도 아니던가
슈퍼 사이클에 올라갔다면 활기차게 시작했던 2018년 IT 산업은, 많은 악재가 터지면서 고난의 길을 걸었다. 애플 배터리 게이트부터 시작해 페이스북 정보 유출, 가상화폐 폭락, KT 아현 화재 사고에 스마트폰, 반도체 시장의 역성장까지, 사회가 거의 디지털화된 단계에 접어들면서 ‘디지털 백래시’가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다. 2019년 IT 산업은 어떤 모습일까? 5G 네트워크와 스마트 기기를 중심으로 한번 예상해보자.
십여 년 전 우리는 스마트폰 시대로 넘어왔다. 이동 통신망은 3G 네트워크로 전환됐고,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SNS 플랫폼이 큰 영향력을 갖게 됐으며, 사람들은 모바일 게임을 즐기며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로 소통하는 시대가 됐다. 더 빨라진 LTE 네트워크가 등장하자 소통 방식이 말에서 사진과 영상으로 넘어가면서, 유튜브가 크게 성장하고, 넷플릭스 같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사양이 높아지고 모두 스마트폰을 쓰게 되자 고사양 모바일 게임과 음식 배달, 택시 예약 같은 O2O/공유경제 서비스, 간편 결제 서비스, 인공 지능 도우미 역시 쓸 수 있게 됐다.
스마트 디바이스 시장에서 성공하는 회사는, 멱살 잡고 판을 이끌고 가거나 아니면 열린 판에 최대한 빠르게 올라타는 회사다. 콘텐츠와 플랫폼, 네트워크, 디바이스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IT 생태계에서, 하나가 변하기 시작하면 생태계 다른 구성 요소의 변화도 강제하게 된다. 2G에서 3G로 바뀔 땐 모토로라가,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옮겨갈 땐 노키아가 그런 변화에 대처하지 못해서 낙오했다. 4G 시대엔 이름을 다 말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포털 사이트/ 플랫폼 회사들이 몰락했다.
... 그리고 이제, 5G 네트워크 시대가 시작됐다. 2017년 12월 5G 표준화 단체인 3GPP에서 비단독(NSA, 기존 4G망을 활용해 5G 망을 구축하는 규격) 5G 이동통신 표준 규격을 발표함으로써 막을 올렸다. 평창 동계 올림픽 때 선보인 5G 시범 서비스나 2018년 12월 1일 시작된 한국 5G 서비스는 모두 이 NSA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미지 : 셔터스톡
어떤 변화가 생길까? 5G를 지원할 소비자용 스마트 기기나 스마트폰은 아직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2월 발표 3월 출시, LG 전자는 2019년 상반기, 화웨이는 5월 발표 9월 출시를 이야기하고 있으나 실제 출시 물량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값도 비싸고, 네트워크 구축도 멀었고, 무엇보다 5G 네트워크를 이용하면 뭐가 좋은지 아직 설득하기 어렵다(초기라 속도도 LTE보다 조금 빠른 수준이다).
3G 네트워크로 바뀌던 때도 소비자를 설득하는 데 애를 먹었다. 이동통신사에서는 화상 통화를 강하게 밀었지만 누구도 좋아하지 않았다. 휴대전화용 모바일 인터넷 표준이었던 WIPI를 이용한 무선 인터넷은 데이터 사용료가 너무 비싸서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았다(악몽이다.). 2009년 아이폰 3Gs가 발매되고 데이터 이용료를 비롯한 여러 제약 사항이 풀리면서, 그때야 제대로 쓰이기 시작했다.
5G 네트워크 역시 마찬가지다. 5G는 LTE보다 빠르지만 그런 속도를 당장 구현할 수는 없다. 그보단 통신 응답 속도가 빠르다고, 수많은 기기를 한 번에 연결할 수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기존 이동통신 네트워크가 개인과 개인을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5G부터는 개인과 스마트 기기, 기기와 기기를 연결하는데 초점이 맞게 된다. 사람을 연결하는 기반에서 도시를 움직이는 인프라로 거듭나게 된다.
이미지 : 셔터스톡
말로는 좋은데 실전은 만만하지 않다. 초저지연성이란 장점을 이용해서 원격으로 수술을 하거나, 공사장에 있는 굴착기를 움직이거나, 4K 이상의 고해상도 동영상을 스트리밍하거나 VR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보는 시나리오가 제시되고 있지만,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것은 아직 없다. 인더스트리 4.0 같은 공장 자동화, 자율주행차에도 필요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성공 사례가 없다. 다시 말해, 우리가 카피할(...) 사업 모델이 없다.
그런데도 투자가 진행 되어야 한다. 관심을 얻기 위해서는 허세를 부릴 수밖에 없다. 2020년에서 2022년까지, 5G 네트워크가 널리 깔릴 시기까지 견디기 위해, 또는 카피할 모델이 나타날 때까지, 꼭 필요하진 않지만 눈길을 끄는 광고나 시연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이 많아질 예정이다. 멈출 수는 없다. 파도에 먼저 올라탄 회사가 다음 10년의 흐름을 주도하게 된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예언을 하나 해보자. 단언컨대, 2019년 IT 산업을 이끌고 나갈 제품은 폴더블 스마트폰이다. 예전 폴더폰처럼, 말 그대로 접을 수 있는 스마트폰을 말한다. 사실 폴더블 스마트폰이 할 수 없다면 올해 IT 시장에 기대할만한 제품은 거의 없다. 우선 2월 MWC 2019 행사를 앞뒤로 해서 한두 제품이 선보일 예정이고, 후반기에는 여러 회사가 폴더블 스마트폰을 선보이며 앞다퉈 새로운 폼팩터에 올라타려고 할 것이다.
가장 앞서 나가고 있는 회사는 삼성전자다. 2017년 11월 폴더블폰으로 여겨지는 제품 디자인이 유출되면서 잠시 화제가 됐고, 2018년 11월 삼성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시제품이 공개되면서 출시가 기정사실이 됐다. 현재 2019년 2월에 발표하고, 3월에 출시될 예정이다. 형태는 책처럼 양옆으로 펼치는 형태고, 접으면 바깥쪽에 디스플레이가 하나 더 있다고 알려졌다. 펴면 7.3인치 크기이고, 외부 디스플레이는 4.58인치다.
다른 회사도 폴더블 스마트폰을 준비하고 있다(사실 다들 준비하고 있었다). LG전자는 예전 폴더폰처럼 위아래로 접히는 폴더블 스마트폰에 대한 특허를 얻은 바 있다. 이 경우 예전 폴더폰이 가지고 있던 장단점을 함께 가지고 온다. 다시 말해 다른 스마트폰을 쓰는 것과 거의 같은 사용자 경험을 유지할 수 있고, 들고 다니기 편하지만, 형태를 제외하면 크게 다르다고 여기기 어렵다. 좋고 나쁨을 지금 평가하긴 어렵다. 바-형 휴대폰에서 폴더형으로 형태만 변했는데도 폴더폰이 크게 히트한 것을 생각해 보면, 세로로 접히는 형태가 인기를 얻을 수도 있다. 다만 언제 공개될지는 알기 어렵다.
중국 회사들도 당연히 참전한다. 제품은 조악하지만 세계 최초 폴더블폰이란 이름은 중국 로열의 플렉스파이가 가져갔다. 다만 수직 계열화를 이룬 회사가 드문데다 제작 실력 역시 차이가 있는 만큼, 폴더블폰이 빠르게 대중화될 경우 불리한 입장이라 판단한다. 화웨이와 샤오미, 레노버(+모토로라),TCL 등이 준비하고 있다 알려진 업체다.
사실 지난 2013년, 삼성과 LG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스마트폰을 놓고 작은 경쟁을 벌인 적이 있다. 기술 과시용으로 여겨졌던 제품이지만 실제 판매되는 제품까지 만들어졌다가 시장에서 사라졌다. 폴더블 스마트폰을 두고 그때를 떠올리는 사람도 보인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아주 다르다. 무엇보다 폴더블 스마트폰은, 진화한 스마트폰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실제론 다른 카테고리 제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노트북, PC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일까? 바로 화면 크기다. 화면 크기는 사용자 경험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폴더블 스마트폰은 이제까지 스마트폰과는 전혀 다른 화면 크기를, 태블릿 PC와는 전혀 다른 휴대성을 제공한다. 꺾이는 형태를 이용해 세워두거나, 반쪽은 키보드를 표시하고 반쪽은 화면을 표시하는 형태로 사용할 수도 있다. 제대로 만들어진다면, 앞으로 10년은 폴더블 기기의 시대로 기억될 것이다.
인공 지능 지원 스마트 가전은 어떻게 될까?
2018년 잠깐 인기를 얻었던 스마트 스피커나 인공 지능 가전은 어떻게 될까? 인공 지능 가전 플랫폼은 아마존 ‘알렉사’와 구글 어시스턴트로 정리되어 가는 분위기다. 재작년 애플이 아이폰이 Oi 방식 무선충전을 도입하자 사실상 표준이 Qi 방식으로 굳어지고 수많은 무선충전기기가 쏟아졌던 것처럼, 표준이 가지는 힘은 무섭다. 만약 삼성과 LG가 고집을 꺾고 구글 어시스턴트를 동시 표준으로 제품에 적용한다면, 구글 어시스턴트를 지원하는 다양한 가전 기기들이 쏟아지리라 예상한다.
지원하지 않는다면, 작년처럼 산산이 파편화된 채 소비자들은 사물 인터넷을 비롯한 스마트 가전 기기에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고 끝나게 된다. 지금 출시된 스마트 가전은 너무 어렵고, 비싸고, 특정 환경에서만 쓸 수 있어서 매력이 없다. 스마트 스피커? 잊자. 구글은 꾸준히 기능을 개선하겠지만, 다른 스마트 스피커는 기능을 추가 한다는 이유로 소비자에게 '외울 것'을 강요하고 있다. 당연히 더 안쓰게 된다.
그 밖에, 애플이 지금보다 저렴한 여러 제품을 출시하리라 추정된다. 이미 중국과 일본 등에선 아이폰 XR에 대한 할인 판매를 진행하고 있고, 사실상 버려졌던 아이폰SE와 아이패드 미니 신제품이 나올 것이란 얘기가 들리고 있다. 구글은 자신들이 직접 설계한 스마트폰과 크롬 PC의 영향력을 더 높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해외에선 애완용 로봇이 여럿 출시될 예정이며, 수면 테크를 비롯해 다양한 영역으로 IT 기술을 활용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다만 올해 크게 관심을 끌 만한 제품이 나타나리라 여겨지진 않는다. 2019년은 여전히,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며 다양한 시도를 하는, 암중모색의 시기가 될 것이다. 폴더블 스마트폰을 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