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앰뷸런스를 보다
머리가 복잡한 날엔 무슨 영화를 보면 좋을까요? 딱히 누군가를 미워하고 싶진 않은데, 미워지는 마음이 들 땐? 누군가를 미워하는 게 뭐 인생에 좋을 일이 없다는 건 잘 알고 있기에, 도 닦는 마음으로 영화를 볼 때가 있습니다.
… 영화 보면서, 머리를 일단 비우는 거죠.
생각 멈춤이랄까요.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은, 그냥 관심을 끊습니다. 어차피 지나간 일, 돌이켜봤자 기분만 상하니까요. 그런 생각으로 극장에 들린 날, 딱히 볼 영화가 없어서 택한 게 바로, 이 영화입니다.
앰뷸런스. 마이클 베이 감독의 저예산 영화죠.
영화에 대해선 하나도 몰랐습니다. 앰뷸런스라기에 뭐 극한 상황, 그러니까 앰뷸런스에 폭탄이라도 장착된 상황에서, 살려고 계속 달리는 영화 줄 알았네요.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앰뷸런스가 배경인, 은행 강도 영화였습니다.
시작할 때는 좀 험악한 거리에서 노는 흑/백 소년 둘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땐 어 이거 혹시 갱 영화인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다 큰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두 사람이 형제입니다?
… 그러니까, 입양된 형제였다는 거죠.
아, 역시 미국이구나 어쩌구나 뭐 이러고 있는데, 뜬금없이 돈 빌리러 온 동생을 데리고 은행을 털러 갑니다(?). 동생이 전직 군인이거든요. 그럴싸하게 생긴 다른 멤버도 갖췄기에, 뭐 어떻게 은행터나 보자- 이랬는데, 그냥 텁니다.
그럴싸한 게 없어요. 그냥 은행 턴다고 했으니 텁니다- 정돕니다. ㅋㅋㅋ 살다가 이렇게 간단히 은행을 터는 강도들은 또 처음 봤네요. 근데 이 사실을 경찰도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는데, 인질 다칠까 봐 털고 나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카레이싱 + 총격 액션. 예, 이런 거 보려고 오는 거죠. 그럴싸하게 생긴 멤버들은 그냥 죽거나 잡히고, 경찰이 다쳤다기에 실으러 온 앰뷸런스 뺏어서, 의형제의 도망기가 시작됩니다. 총 맞은 경찰과 응급구조사 한 명을 인질로 싣고요.
… 그러니까 이 영화는, 그저 액션을 보여주러 만든 영화란 말이죠.
나중에 찾아보니 제작비는 약 4,500만 달러.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인데, 평균 제작비가 6,000만 달러가 넘어가는 할리우드에선 적은 제작비라고 합니다. 마이클 베이 입장에선 저예산 영화였던 거죠.
저예산 영화를 왜 찍었을까? 싶었는데, 인터뷰 보니 ‘자기 스타일’대로 영화를 좀 찍고 싶었다죠. 뭐, 이런 거 원하는 감독은 정말 많으니까 이해합니다. 제작비가 적으니 촬영 기간도 한 달(...).
액션은 쫄깃합니다. 카메라 너무 흔들린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처음 총격씬에선 아 또 왜! 를 외쳤지만, 차에 탄 순간부터 달라집니다. CG 별로 없이 아날로그로 달리고 부딪히고 부수고 그러는 게, 확실히 CG와는 다른 맛이 있어요.
그 와중에 줄줄이 흘러나오는 개인사는, 또 우리 심금을 황당하게 만들지만요. 알고 보니 이들 형제 아버지가 소문난 범죄자고, 형은 또 유명한 은행털이범이었네요. 그때 연줄을 이용해 남미계 마피아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경찰은 또 어떨까요. 뭔가 특색 있는 인물들이긴 한데, 별 이야기는 안 나오고, 잡담만 부각됩니다. 마이클 베이 감독이 경찰 싫어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체 영화 안에서 부서진 경찰차가 몇 대인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쫄깃한 씬은 총격씬이 아닙니다. 달리는 앰뷸런스 안에서, 화상 통화로 지도받으며, 응급 구조사가 개복 수술을 진행할 때. 제겐 가장 신선한(?) 장면이었습니다. 뭐야 저거 말이 안 되잖아 ㅋㅋㅋ 하면서 말이죠.
신기했던 씬은 강변 헬리콥터 추격전. 이건 진짜 나중에 한 번 보세요. L.A에 있는 강변을 차로 달리는 것도 처음 보는 장면이었지만, 그 차를 헬기 두 대가 추격하는 데… 와, 90년대 액션 영화 보는 기분. 좋은 쪽으로.
… 저걸 어떻게 찍었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현장 느낌이 살아있었거든요.
자- 지금까지 적은 이야기 보시면 느끼셨겠지만, 이 영화는 개연성이니 뭐니 그런 거 따지는 영화가 아닙니다. 사실 미국에서도 큰 기대 없이, 혹시나-하는 마음에 만든 영화(?)라고 합니다. 극장보다 스트리밍 서비스에 걸릴 걸 알았거든요.
스트리밍 서비스에 걸릴 영화는, 틈새시장을 노린 작품들이 꽤 있습니다. 90년대 스타일 액션 영화 보고 싶어? 그런데 본 거 또 보긴 싫어? 그럼 이걸 보렴-하는 거죠. 자고로 스트리밍 서비스 안에는, 그렇게 다양한 영화가 있어야만 하거든요. 많이 안 보더라도 말이죠.
근데요. 제가 보다가요. 막판에, 슬쩍 울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슬퍼서? 아닙니다. 해피 엔딩이에요. 그냥, 누가 뭐라고 하던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뭐라고,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고요.
뭔가를 잊으려 애썼는데, 마음 어딘가에 콕 박혀서, 남아 있었나 봅니다.
세상에는 상대하기 싫은 부류의 사람이 몇 있습니다. 여러 부류가 있지만, 자기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자존심만 높은 사람은 정말로 피합니다.
그런 사람을 보다가, 갑자기 멀쩡한(?) 사람을 보니, 괜히 어떤 스위치가 눌렸나 봅니다. 정말 찔끔 울었네요. 정말, 찔끔만.
* 이 글에 쓰인 이미지는 네이버 영화에서 가져왔습니다.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2145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