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자. 중요한 것은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다
이동통신시장이 혼란스럽다. LG U+ 에선 방통위 직원과 식사를 하고 나더니 갑자기 방통위 조사를 거부하고, LG U+ 조사 거부 사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열린 방통위 회의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와중에 갑작스럽게 단통법 보조금 상한을 없애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공식적으로는 논의된 적 없다고 하더니 다시 검토해 보기로 했다고 말을 바꾼다. 방통위에서 내놓은 입장은 아니지만 보조금 상한 폐지는 갑작스럽게 공식적인 정책 방향이 되어가고 있다. 거기에 조만간 시행될 휴대폰 유통점의 '신분증 스캐너' 도입 논란까지.
어찌 된 걸까. 정신이 없다. 이동통신 유통 질서를 바로 잡는 일과 유통 과정 규제를 없애는 일과 잘못된 일을 한 이통사업자를 벌하는 일까지 한꺼번에 터져나와서 뒤엉켰다. 이 중 가장 화제가 되는 것은 역시 '단통법 보조금 상한제 폐지'일 것이다. 다른 일들이 개인과 큰 관계없는 회사/업자들의 문제라면, 보조금 상한제 폐지는 새로운 스마트폰을 값싸게 구입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추가 보조금으로 인한 비용이 생긴 이동통신사와 스마트폰 제조사, 이들 회사 주식을 산 사람들과 이들 회사 스마트폰을 팔아야 하는 사람들 모두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다.
개인적으로, 보조금 상한제 폐지를 환영한다. 그렇지만 단통법은 지켜져야 한다. 단통법의 본질, 가계 통신비 인하라는 목적은 잊혀서는 안된다.
지난 2014년 단통법이 만들어지고, 그 최대 수혜자가 3대 이동통신사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마케팅 비용이 줄어들면서 큰 수익을 올렸다. 2015년 이통 3사의 영업이익은 3조 6332억 원으로, 2014년 대비 82%나 늘었난 금액이다. 이통사는 매출이 소폭 줄었다고 우는 척 하지만, 그 거짓 눈물에 속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스마트폰 제조사나 판매업체 입장에선 조금 힘든 시기를 거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입 비용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이 알뜰폰이나 중고폰, 저가형 단말기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한번 산 휴대폰을 오래 쓰는 경향도 늘어서, 2015년 스마트폰 판매량이 줄었다고 한다. 소비자들은 신형 스마트폰 구매 시 보조금이 공평하게 확 줄어든 것이나 마찬가지라, 불만을 가지는 사람도 많았다.
어쨌든 단통법은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적긴 하지만 가계 이동통신비가 줄어드는 효과도 거뒀고, 스마트폰도 더 오래 사용하기 시작했고, 누구는 싸게 샀는데 누구는 비싸게 사는, 정보 불균형에서 오는 피해도 줄었다. 폰테크나 폰팔이 등도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알뜰폰 회사들도 많이 성장했다.
물론 문제도 여전했다. 스팟형 불법 보조금 살포가 다시 기승을 부렸다. 이통사/판매업체들이 제 버릇 남주지 못한 탓이다. 보조금 상한선에 대한 불만은 당연하고, 스마트폰이 많이 팔리지 않아 시장 자체가 침체된 것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스마트폰 유통 구조에서 문제가 된 '소비자 vs 판매자 간 정보 비대칭'성을 어느 정도 극복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다른 나라들도 다르지 않다. 스마트폰 성능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이통사들이 -_-; 보조금 지출을 줄이는 것은 세계적 흐름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정부에서 제재하기도 한다. 거기에 하나 덧붙이면, 데이터 중심 요금제로 바뀌고 있다는 정도일까. 이런 흐름에 맞추기 위해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중저가형 단말기를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알뜰폰 회사들은 0원 요금제등 파격적인 정책을 들고 나왔다. 블랙리스트 제도 도입 등 직접 단말기를 구입해서 사용해도 큰 불편함이 없는 환경도 만들어졌다.
이제 남은 것은 이통사의 변화뿐이었다. 마케팅비가 줄어든 만큼 기본료를 낮추고, 아무튼 새로운 흐름에 맞춰서 재정비를 해야만 했다. 그런데 엉뚱하게, 보조금 상한제를 없애겠다는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상한제 폐지에 환영하지만, 이통사의 정책적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보조금 상한제만 폐지해봤자,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잘해봤자 옛날 그 스마트폰 시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정말, 다들, 그때 그 시절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건가?
... 미안하다. 나는 정말, 그렇게는 말하지 못하겠다.
앞으로 예상되는 수순은 다음과 같다. 방통위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보조금 상한을 없앨 것이고, 이동통신사들은 그래도 머뭇거리며 보조금을 찔끔 올릴 것이다. 방통위가 성을 내야 조금 더 보조금을 올리는 척 할 것이다. 새로운 스마트폰이 나와도 마찬가지다. 그때까지는 이통사 셋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그러다 연말쯤 실적이 필요하거나, 아무튼 여러 가지 이유로 이통사 한 곳이 배신을 하면, 그제야 갑작스럽게 잠시, 1~2주간 보조금이 확 늘어난다. 그러니까 지금보다 조금은 늘겠지만, 예전처럼 아이폰을 공짜로 준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다. 보조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어떻게든 비싼 스마트폰 요금제에 잡아놓으려고 할 것이고.
하지만 지금 우리가 '정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보조금 상한이 철폐돼서 얼마만큼 더 보조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가 아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다른 것이다. 마케팅비 축소로 인해 얻은 이익을 기본료 인하로 돌릴 것. 알뜰폰 사업자에게 빌려주는 네트워크 요금을 낮춰서, 더 낮은 알뜰폰 요금이 가능하도록 할 것. 요금제를 데이터 중심제로 바꿀 것. 생색내기 '통화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가 아니라, '무료 통화 0, 데이터 6G' 같은 실질적으로 데이터가 중심이 되는 요금제로 바꿀 것.
단통법의 뼈대를 그대로 유지해, 누구는 보조금(또는 페이백)을 많이 받고 누구는 적게 받는 일이 없도록 할 것. 자고로 정보의 불평등은 언제나 소비자의 손해이니, 유통과정은 가급적 투명하게 관리될 것. 그래서 결과적으로, 가계 통신비가 줄어들 것. 진짜로 중요한 것은 보조금을 얼마나 더 받을 것인가가 아니라, 당신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 줄어드는 것이고, 가치 있게 쓰이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