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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그니 Nov 06. 2022

세상을 구하는 건 결국 다정함?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를 보고

* 스포일러 있습니다.


이 영화는 코즈믹 SF-드라마-액션-호러-로맨틱 영화입니다. 내용은 엄마랑 딸이 화해하는 이야기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죠. 세탁소 사장이 우주를 구하려고 구르는 영화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아무튼 전에 보러 갔다가 시간이 안 맞아 허탕 치고, 이번엔 예매하고 보러 갔습니다. 끝나고 나오는데, 허허허, 실실 웃고 있습니다. 이 영화감독, 무슨 약 빨고 만든 걸까요.



배경은 대충 이렇습니다. 자, 당신의 인생이 게임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당신이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스토리 분기가 갈라집니다. A. 결혼했다 B. 결혼을 하지 않았다-에서, 어떤 선택을 해도 다른 쪽 분기가 계속 살아 있는 겁니다. 그게 몇십 년간 이어진다면, 분기별로 분기가 꼬리를 치고 또 치고 그래서 다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 어마어마한 분기가 만들어지겠죠. 그게 이 영화의 배경 세계입니다.


그러다 어딘가(알파 버스라고 부릅시다)에서, 이런 숨겨진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주인공 ‘에블린(양자경 분, 알파 버스 버전)’입니다. 보통 똑똑한 것이 아니라서, 다른 선택을 한 우주의 나에게 점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을 정도입니다. 신났겠죠. 완전 치트키잖아요. 게임이라면 다 클리어한 사람에게나 주어지는 특전(이게 무슨 이득이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지만 점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가장 뛰어난 재능을 보인 자기 딸을, 좀 더 잘해보라며 혹독하게 다루게 됩니다. 그 결과 엄마와는 다른 특이점에 도착한 딸은, 점프하지 않아도 전 분기에 흩어져 있는 자기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걸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존재 ‘조부 투파키’가 됩니다(올 포 원이네요). 그리곤 모든 세계를 멸망시키려 하죠(? 확실하지 않음).


자, 그러자 그 세계(알파 버스)에서, 이 삶의 시작이 되는 세계에 있는 에블린(원조?)에게 도움을 청하게 됩니다. 왜? 원초적 에블린은, 가장 최저의 에블린이었거든요. 삶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나쁜 선택을 한 존재. 덕분에 좋은 선택을 한 에블린이 갈라져 나갈 수 있었던 이유. 


그래서 거꾸로, 조부 투파키를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를 존재. 조부 투파키의 정 반대에 있는, 원 포 올 같은. 실제로 에블린은 영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각성해서, 조부 투파키처럼 모든 우주에 존재하는 나를 동시에 느끼는 그런 존재가 됩니다.





문제는 그 해결 방법이 조부 투파키를 죽이거나, 조부 투파키 중 하나인 자기 딸을 죽이라는 겁니다. 거꾸로 그 딸은, 인생이 허무함을 느끼고 ‘엄마 나랑 같이 돌이 되자’ 뭐 이러고 있고요. 우주는 광활하고 선택은 무한하고 시간도 무량하고 아무튼 뭐 그러니, 결국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니, 그냥 돌이 돼서 멍때리며 살자고 합니다. 혼자는 외로워서 칭얼거리는 느낌이랄까요. 엄마 나랑 같이 함께 관에 들어가자(...물귀신이네요).


그때 찾은 해결 방법이 바로, 친절함(...). 모든 것을 한 군데에 모아놨더니 허무해진 딸과는 다르게, 모든 우주가 실은 의미 없다는 걸 알게 됐으면서도, 남편에게 아이디어를 얻은 따뜻한 양념을 그 결론에 칩니다. Nothing Matter이긴 한데, 난 그래도 여기서, 너와 함께 오래 살고 싶다고. 


그건 어쩌면 최저(...)의 존재였기에 가질 수 있는 다정함. 자기 자신의 목소리만을 듣고 세계를 내면에 가둔 딸에게, 그 딸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줄 수 있는 해답.





아무튼 이 영화, 볼 수 있으면 극장에서 보세요. 90년대에 극장 좀 다니셨다는 분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쌈마이 영화의 쾌감이 있으면서도, 자신의 쌈마이함에 취하지 않았어요. 제풀에 지쳐 쓰러지는 일 없이, 도착해야 할 곳에 정확하게 도착합니다. 하, 이야기를 이렇게 끌고 돌리다가 여기에 똑 떨어뜨린단 말야? 하고 느끼실 겁니다. 쌈마이 영화의 장인을 보는 기분. 


호불호가 좀 갈리긴 하겠지만, 추천합니다.





● 코즈믹 호러라고 느낄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게임 ‘콘트롤’이 생각났다는.


● 홍콩 액션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은 으하하-하실만한 장면 있습니다.


● 주인공이 영어를 잘하지 못해서 단어를 자꾸 틀리는 걸로 나오는데, 초반에 ‘버스 점프’를 ‘보손 점프’라고 자막이 나와서 ‘보손 점프가 나온단 말이야??!!’ 했습니다. 다행히 보손 점프가 뭔지 아는 사람은 이런 영화 줄거리를 이해 못할 리가 없겠죠(...).


● 확장판 개봉하면 한 번 더 가서 볼 예정입니다.



어쩌면 영화 끝나고, 이 말이 계속 떠오르실 지도 모릅니다.



"이 광대한 우주, 무한한 시간 속에서, 당신과 같은 시간, 같은 행성 위에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며...(In the vastness of space and the immensity of time, it is my joy to share a planet and an epoch with Annie)"

- 칼 세이건, '코스모스' 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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