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기술 중심으로 돌아보는 2022년
2022년이 지나갔다. 코로나 대유행에서 벗어나 사람답게 사나 싶었더니, 전쟁이 일어나고 에너지 위기, 곡물 위기로 이어진 한 해.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금리 상승, 여전한 기후 위기는 또 어떻고.
기술 트렌드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올해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슈링크(Shrink)’를 꼽아야 하지 않을까. 지난 2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것과는 반대로, 올해는 모든 것이 수축된 한 해였으니까.
어쨌든 시간은 흘러간다. 2023년 말에는 한 해를 돌아보며 웃을 수 있기를 바라며, 지금부터 소비자 기술 중심으로 2022년 IT 트렌드를 정리해 보자.
* 먼저 전에 썼던 2022년 예상과 한 번 비교해보자. P2E 게임이 망할 거란 예상은 맞았다고 본다. 폴더블폰은 많이 출시되지만 PC, 스마트폰 시장은 축소될 거란 예상도 맞았다(이건 쌀로 밥짓는 얘기).
하이브리드 커뮤니케이션 시대가 오지 않을까 했는데, 이건 전혀 다르게 돌아갔다. 정리해고와 사무실 복귀 시대가 도래했다(완전히 틀렸다).
마지막으로 소프트웨어를 통한 자동화 시대가 오지 않을까 했는데, 자동화보다 그걸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이 더 각광 받았다. 반쯤 맞은 걸로 하자.
10년 뒤 2022년이 어떤 해였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생성 AI가 대중에게 알려진 해였다고. 그만큼 올해는 생성 AI에 관한 관심이 뜨거웠다. 스타트를 끊은 것은 오픈AI에서 공개한 ‘달리(DALL-E)’다. 문장을 입력하면 그럴듯한 그림을 만들어주는 인공지능이다.
아쉽지만 달리는 아무나 쓸 수 없었다. 대신 달리 같은 생성 AI 서비스가 여럿 나오기 시작한다. 미드저니는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높았다. 이걸로 그린 그림이, 한 미술 대회에서 상을 받아버리자 관심도가 크게 높아졌다. AI 그린 그림이 예술인가 아닌가를 놓고 논쟁이 시작됐다.
그 뒤를 스테이블 디퓨전이 이어 나갔다. 오픈 소스 형태의 AI가 공개되자, 생성 AI를 써보고 싶었던 개발자들이 참여해 여러 가지 응용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은 다시 오픈AI에서 공개한 챗GPT가 마무리하는 중이다.
핵심은 생성 AI가 정말 그럴듯한 그림과 문장을 만들어낸 것에 있지 않다. 누구나 쓰기 좋게 공개되어, AI를 몰라도 다양한 글과 그림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게 된 것에 있다. 참여가 관심을, 관심이 다시 참여를 낳는 선순환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MS 오피스를 비롯해 다양한 서비스에 생성 AI 기술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당분간 IT 산업은 생성 AI에 관한 관심으로 뜨겁게 달아오를 예정이다. 영상, 음악, 사무 문서, AI 학습용 데이터를 비롯해 AI가 만든 콘텐츠가 있어야 하는 곳은 많으니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지난 2년간 뜨겁게 인기를 끌었던 가상화폐 시장이, 2022년 5월 루나를 시작으로 한때 세계 3대 가상자산 거래소였던 FTX 파산까지 눈 깜짝할 새 무너져 내렸다. 최근엔 1위 거래소인 바이낸스 역시 수사 대상에 올랐다는 뉴스도 나왔을 정도다. 올해 파산한 회사나 관련 서비스는 너무 많아서 다 언급하기도 힘들다.
... 솔직히 생각보다 훨씬 더 썩어 있었다.
가상화폐 시장이 연쇄적으로 무너진 이유는, 알고 보면 서로 다 꼼꼼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상화폐 루나가 망하고 나서 루나에 투자한 3CA란 헤지펀드가 망가지고, 여기에 돈 빌려준 보이저 디지털이 파산하고, 여기에 돈 빌려준 알라메다(FTX 전에 샘 뱅크먼 프리드 FTX 대표가 세운 회사)가 위기에 처했다.
이걸 본 FTX가 고객 돈을 몰래 알라메다에 대출해주다 걸린 것이 FTX 파산의 한 이유다. 그 밖에도 이유는 다양하다. 애당초 잘못 설계된 화폐에 거액의 돈이 몰린 것도 있고. 관련 운영자들이 범죄나 다름없는 짓을 저지른 것도 계속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근거 없이 믿음으로 구성된 경제란 것이 드러났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가상화폐와 관련 거래소 등은 앞으로 강력한 규제를 받게 될 전망이다. 규제 전망은 크게 두 가지다. ① 위험하지만 혁신적인 면도 있으니, 가상자산으로 인정하고 규제를 마련하자는 안이 있다. 그리고 ② 도박이나 마약과 마찬가지로 취급하자는 안이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1안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2안을 지지하는 흐름이 더 강하다. EU에서 준비 중인 가상자산 규제안(MiCA)이 대표적이다.
기왕 안 좋은 얘기를 꺼낸 김에 안 좋은 트렌드를 더 이야기하자. 그나마 가상화폐는 대다수 사람과 동떨어진 세계였다. 국민 메신저로 불리는 카카오톡은 다르다. 올해 10월 데이터 센터 화재로 인해 카카오톡을 며칠이나 쓸 수 없게 된 사건은, 우리가 얼마나 불안한 기반 위에 디지털 사회를 건설 했는지를 보여줬다.
사기업에서 만든 메신저 하나를 쓸 수 없었는데, 일부 업무가 마비되고, 대중교통 수단인 택시를 이용하기 어려웠다. 단체 대화방에서 소통하던 사람들은 대책을 마련하기도 어려웠다. 카카오톡이 커뮤니케이션 인프라를 일부 책임지고 있었던 탓이다. 그 정도로 중요한 앱인데도, 제대로 된 백업 수단을 갖추지 않았다.
2018년 KT 아현지사 화재에도 불구하고 안전에는 돈을 들이지 않았다. 건강한 몸이 있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다 아는데, 건강한 인프라를 마련하기 위해선 신경 쓰기 싫었던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이후 카카오는 자체 행사인 이프 카카오(if Kakao) 2022에서 장애 원인을 분석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스마트 기기 시장 침체
카카오톡 먹통 사태를 빼고라도, 2022년은 어려운 일이 많았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스마트 기기 시장 전체가 침체에 빠졌다. 제품 가격이 많이 오른 탓이다. 대표적인 제품이 스마트폰이다. 카운터포인트는 올해 스마트폰 시장이 -11% 정도 역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스마트폰 교체 주기도 43개월로 길어졌다. 그래서일까? 올해는 히트 스마트 상품이 거의 없었다. 대신 작년부터 이어진 중국발 가성비 태블릿 PC나 휴대용 모니터 등이 인기를 끌었다.
+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및 테크 산업 대해고 시대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장난으로 시작한 줄 알았던 이야기가 현실이 되고, 지저분한 마찰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인수가 끝나자마자 전체 직원의 50%, 약 3,700명을 해고하면서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기술 기업의 정리 해고는 트위터에서만 이뤄진 것이 아니다. 사실상 빅테크 호황기가 끝났다고 얘기할 정도로, 많은 기업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IT 업계의 해고 상황을 추적하는 layoffs.fyi를 보면 2022년 12월 14일 기준, 965개 기업에서 150,276명이 해고됐다.
지난 2년간 테크 기업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던 것을 생각하면, 하룻밤 새 세상이 바뀐 셈이다. 당연히 하이브리드, 그러니까 일부 재택근무 제도를 도입할 거라 믿었던 많은 직원은 배신당하기도 했다. 그동안 너무 비싸진 몸값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테크 기업에서 왜 많은 해고가 이뤄졌을까? 사실 돈의 흐름이 바뀐 탓이 크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이 주된 미디어가 된 시대에, 애플이 맞춤형 광고에 대한 정책을 바꾸면서 메타(구 페이스북)의 수입이 줄었다.
구글과 메타를 빼고도 광고로 먹고사는 기술 기업은 생각보다 아주 많다. 그들 모두 이런 변화에 직격탄을 맞았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시장 축소는 앞서 얘기했지만, 금리 인상도 폭탄이었다. 투자자들이 돈을 구하기 어려워지니, 투자 받은 돈으로 성장하던 스타트업들도 돈줄이 막혔다.
이런 변화에 따른 결론이 구조 조정과 사업 다각화다. 넷플릭스와 디즈니, 아마존은 광고 시장에 직접 뛰어들었다. 이동통신사도 인공지능을 비롯해 B2B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미디어는 돈 받고 콘텐츠를 파는 사업 모델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렇게 올 한 해, 기술 기업은 돈이 들어오는 파이프를 늘리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다. 이런 흐름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공짜 콘텐츠나 할인 쿠폰은 점점 줄거나 사라질 것이다. 아니면 더 많은 광고를 봐야 한다. 다만 영화 푯값이 올라가자 관람객 수가 줄었던 것처럼, 기업이 원하는 대로 소비자가 따라오진 않는다. 똑똑한 소비자를 설득할 수 있을 만큼 좋은 제품이 필요하다.
… 내년에는 과연, 그런 제품을 볼 수 있을까?
올해 의외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기술은 드론과 위성 인터넷이었다. 그동안 꿈꿨던, 대중교통 드론이나 배달 같은 것을 하는 서비스 드론은 아직도 꿈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 없으면 안 될 무기로서의 가치를 증명했다. 위성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꼭 집어 말해 일론 머스크의 스타 링크는, 인터넷 접속이 어려워진 나라의 생명줄로 등극했다.
반면 자율주행이나 서비스 로봇은 여전히 존재감이 희박하다. 애플카와 애플 AR 글래스는 출시 시점이 멀어졌다는 루머가 나왔다. 메타버스나 NFT도 무성한 소문과는 다르게 자리 잡지 못했다. 이는 2021년과 같은 흐름으로, 앞으로도 당분간 기대할 것이 없다는 말과 같다. 꿈과 희망도 2~3년이지 몇 년이나 가치를 증명 못하면, 지금은 쓸 수 없거나, 쓰일 곳이 없다는 말이다.
생각지도 못한 변화가 나타난 곳은 스마트 기기 설계다. 미 FTC에서 소비자가 수리할 권리를 강화하기로 한 이후, 아이폰 14나 MS 서피스 프로9 등은 더 수리하기 쉽게 설계되어 출시됐다. 이렇게 할 수 있는데 그동안 왜 하지 않았는지는 뻔하지만, 아무튼 환영할 만한 변화다.
그 밖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 트위치에서는 갑작스럽게 한국만 화질 제한을 하겠다고 발표해서, 여기에서 비롯된 망 사용료 논쟁도 한동안 이뤄졌다. 해킹 공격은 여전히 극심해서, 보이지 않게 많은 기업이 랜섬웨어 등으로 인한 피해를 보았다.
게임 쪽에선 MS가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를 발표하는 등 대규모 인수합병이 일어났다. 그 와중에 스팀덱을 비롯해 휴대형/ 클라우드 게임기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공급망 교란으로 인해 제품을 구할 수 없어 판매량이 줄어든 부분은 있지만, 디지털 게임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 2022년 12월 현대카드 뉴스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