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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그니 Oct 02. 2024

인디 게임이 한국 게임 산업을 바꿀 수 있을까?

솔직히 어렵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거 한국에서는 솔직히 좀 어렵지 않을까?

 

인디 게임이 게임 산업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친구에게 던졌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그래도 최근 국산 인디 게임이 꽤 큰 주목을 받지 않았냐고 대답하니, 그건 그 게임만 그런 거란다. 꽤 오래 PC 게임을 개발했던 친구가 한 말이라서, 가벼운 대답으로 들리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2015년쯤, ‘인디 게임 아포칼립스’ 또는 ‘인디포칼립스(Indiepocalypse)’라는 말이 유행한 때가 있었다. 이제 인디 게임을 개발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는 의미였다. 그때부터 8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상황이 똑같은 걸까? 아니면 인디 게임 제작도 완전히 시스템화되어, 그 시스템에 들어가지 못한 게임에나 인디라는 말을 붙여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왜 그렇게 생각하냐 물으니, 간단히 대답한다. 출시되는 게임이 너무 많다고. 스마트폰 게임 시장은 이미 척박하고, PC나 콘솔 게임 시장도 다르지 않다고 한다. 실제로 그렇다. 2013년까지 게임 플랫폼 스팀에 새로 올라오는 게임은 연간 평균 수백 개 정도였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2022년에는 11,891개가 출시됐다. 스팀에서 제공하는 게임은 5만 개가 넘는다고 알려졌다. 이 와중에 재미를 보장하는 AAA급 게임도 즐비하다. 그러니 인디 게임을 만들어도 몇 개나 팔리겠냐고 한다. 


맞다. 실제로 인디 게임은 별로 안 팔린다. 아니 대부분 존재감도 느끼지 못했다. 그런 암담함이 표현된 단어가 ‘인디포칼립스’다. 상황이 이런데 ‘혼자 개발해 수백억 대박! 인디 게임을 만들어 보세요!’ 이렇게 말하는 건 몰염치하다. 팔리지도 않는데 게임 산업의 성장 동력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렇게 묻고 싶어진다. 인디 게임을 만드는 그대들은 진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그래서 물어봤다. 그럼 너는 왜 계속 게임을 만드는 거냐고. 아, 알고 보면 친구도, 인디 게임 개발자라서 그렇다.



예전과는 달라진 인디 게임 시장


사실 인디 게임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분명하지 않다. 어떤 곳에선 ‘인디 정신(Indie spirit)’을 가진 게임이 인디 게임이라고 한다. 하지만 인디 정신이 대체 뭘까? 보통은 제작자 사비로 만든 게임, 아마추어 개인이나 팀이 만드는 게임, 주류에서는 볼 수 없는 아이디어나 미학을 가진 게임을 가리켰다. 요즘엔 그런 구분이 별로 뚜렷하지 않다. 대기업에서 만든 게임이 아니면 다 인디 게임이라고 부르는 것 같달까.


처음에는 이렇지 않았다. 플래시 게임이나 동인 게임으로 연명하던 소규모 게임 개발이, 동굴 이야기(Cave story, 2004)를 시작으로 다시 기지개를 켠 것이 거의 20년 전이다. 혼자 만들어도 잘 만들면 충분히 팔린다는 걸 알게 된 이후, 인디 게임 개발은 점점 활성화됐다. 제작 환경도 예전보다 훨씬 나았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지식을 쌓았고, 게임 개발 엔진이 좋아지면서 보다 쉽게 게임을 만들 수 있었으니까. 스팀 같은 온라인 게임 판매 플랫폼이 등장했고, 유튜브나 트위치처럼 게임을 홍보하고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도 태어났다.


문제는 여기에서 생겼다. 쉽게 게임을 만들고 팔 수 있으니, 너무 많은 게임이 만들어졌다. 게임 만들기는 쉬워도 좋은 게임을 만들기는 어려운 법이라, 수많은 명작 뒤에 백배는 더 많은 졸작이 쌓여갔다. 그래서 망할 줄 알았는데, 안 망했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시장이 커졌다. 모바일 게임이 인기를 얻고, 코로나19 대유행 같은 상황이 겹치면서, 세계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광고 아니고 유튜브 영상 썸네일입니다...


인디포칼립스는 없었다. 내가 만든 게임은 안 팔리지만 남이 만든 인디 게임은 많이 팔렸다. ‘언더 테일’, (사랑하는) ‘오리와 눈먼 숲’, ‘스타듀 밸리’, ‘뱀파이어 서바이버즈’ 등 2015년 이후 나온 인기 인디 게임은 한두 개가 아니다. 여전히 창의성과 색다른 재미는 인디 게임의 강력한 무기였고, 대기업이라면 마케팅 부서에서 ‘절대 안 팔린다!’라고 했을 것 같은 게임이 나와서 우리를 즐겁게 해줬다.


커진 시장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이해와 요구를 인디 게임이 채웠다. 덩치가 커진 AAA급 게임 제작 때문에 생긴 공백을 인디 게임이 메웠다. 상황이 더 많은 ‘좋은’ 게임이 필요한 쪽으로 흘러가니, 대기업도 여러 인디 게임 제작사를 인수하거나, 인디 게임 제작을 지원하면서 동반 성장을 도모하기 시작했다. 유명 게임 제작자가 회사에서 나와 자기 회사를 차리기도 하고, 게임 제작에 직접 자금을 투자하는 펀드도 여럿 생겼다. 


... 친구는 중동 쪽 VC에서 투자받았다고 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왜 너는 성장하는데 다른 인디 게임은 안 될 것 같다고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Ori and the Will of the Wisps


인디 게임, 한국의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을까?


인디 게임 불모지 같았던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인디 게임이 태어났다. ‘고양이와 수프’, ‘스컬 더 히어로’, ‘데이브 더 다이버’ 같은 게임이다. 인디 게임에 대한 지원과 투자도 늘었다. 매년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BIC), 인디 게임 스타트업 페스티벌 같은 행사가 열리고, 작년에 신설된 스마일 게이트의 버닝비버도 12월에 열릴 예정이다. 인디 게임만을 다루는 플랫폼도 생겼다. 인디 게임 플랫폼 ‘잇치오(itch.io)’나 ‘스토브 인디’가 그런 곳이다. 그 밖에도 인디 게임 개발에 도움을 주는 다양한 개발자 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제 인디 게임은 그저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먼저 게임을 하는 사람이 달라졌다. 미국 한정으로만 따져도 18세 이하 71%가 비디오 게임을 즐기고(일부만 하지 않음), 전체 비디오 게이머의 65%는 어른이며(애들 놀이가 아님), 48%는 여성 게이머다(남성만 즐기는 게 아님). 최근 블리자드는 ‘Moms got Game’이란 보고서를 내놓으며 미국 어머니의 87%는 자신을 게이머라고 생각한다고 적기도 했다. 전 세계 추정 게이머 숫자는 30억 명. 이 많은 사람을 만족하게 할 방법은 인디 게임밖에 없다.


https://x.com/StatistaCharts/status/1602588721085399040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지고 게임 산업이 성장하니, 세계 각국 정부에서도 중점 육성을 하는 산업이기도 하다. 우리는 정부 지원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어서 상상 못하지만, 진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게임 산업에 2022년에 게임 산업에 한화 약 49조 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란, 말레이시아, 폴란드 등 국가 차원에서 인디 게임 개발을 지원하는 나라도 많다. 인도, 중국을 비롯해 아프리카, 남미 지역의 인디 게임 성장세도 무시할 수 없다. 


... 가난한 나라에서는 꿈을 키우고, 부자 나라에선 판을 키운다. 그게 지금 세계의 인디 게임 시장이다.


인디 게임은 새로운 기술을 대비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요 몇 년만 해도 NFT, 메타버스 같은 기술이 게임을 거쳐 갔다. 최근에는 생성형 AI가 인기를 끌고, 음성으로 조작하는 AI 기기도 곧 나온다. 이런 신기술을 활용하거나 새로운 스마트 기기에 들어갈 게임은 과연 누가 만들까? 지역 활성화에 인디 게임을 쓰기도 한다. Sweden Game Arena가 그런 프로젝트다. 스웨덴 셰브데 지역에 있는 학교와 지자체, 게임 제작사가 힘을 합쳐, 지역을 게임 산업 중심지로 키웠다.


인디 게임은 어쩌면 한국이 처한 현실을 타개할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이제 인디 게임을 다른 눈으로 봐야 할 때가 됐다. 


* 2023년 스토브 인디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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