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어떤 미래의 하루
스마트폰 벨 소리에 잠을 깼다. 메신저에 대답이 없어서 연락했다는 동료였다. 대충 둘러대면서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웬일인지 오늘은, 항상 나를 깨우러 오던 애가 오지 않았던 것이다. 화가 나서 마루에 나가보니, 뭔가를 준비하다 잘못된 듯 마루 한가운데에 멈춰 있었다.
야- 하고 불러도 대답이 없다. 또 먹통이 된 건가- 하고 짜증을 내며 전원을 껐다가 켜려는 데, 전원도 이미 나가 버렸다. 출근 시간이 늦어 다른 것을 점검하지 못하고, 일단 대충 씻고 옷을 입은 후 출발했다. 오늘 블로그에는, 저 로봇을 만든 회사에 대한 욕을 단단히 써주리라 생각하며.
사무실로 출근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 직장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근처 스마트 카페로 간다. 출근 확인은 간단하다. 배정받은 책상에 앉아 스마트폰을 지정된 장소에 놓으면, 자동으로 출근 시간이 체크가 되면서 컴퓨터에 로그인된다.
어디 보자, 오늘은 얼마 전 귀국한 피아니스트와의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다. 인공 지능과의 작곡 대결에서 승리한, 요즘 보기 드문 음악가다. 인터뷰가 끝나면 일본에 있는 에디터와 VR 회의를 하고, 다음날 웹사이트 오픈 10주년 기념 특별 원고를 점검해야 한다.
아- 눈치챘겠지만, 나는 뉴스 사이트의 콘텐츠 매니저다. 매일 같이 올라가는 콘텐츠들을 기획하고, 매니지먼트하는 일을 한다. 가끔은 콘텐츠를 직접 만들기도 하고.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재미있기는 하지만, 지난 몇 년 간 같이 일하는 동료 얼굴을 본 적도 드물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 알지만, 전혀 모르는 사이이기도 하다.
가끔은 어릴 적 인터넷 동호회 활동하던 것과 뭐가 다를까 생각하기도 한다. 어디선가 월급이 나온다는 것은 분명히 다르지만.
일단 일할 것이 확인되자 자동으로 그날 스케줄이 잡혔다. 그런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마루에 내버려 두고 온 로봇이 자꾸 신경 쓰인다. 사람도 아닌데, 자꾸 외롭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이 들어서 정신 사나웠다. 아플 때 혼자 있는 것만큼 서러운 것은 없으니까.
실은 일하다 생각나는 것들을 바로바로 메신저로 로봇에게 지시해서 해결했는데, 습관적으로 대화창을 열 때마다 ‘로그아웃’ 메시지만 확인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손발이 묶여버린 느낌이랄까. 결국 일하다 말고 로봇 회사의 고객 센터를 메신저로 불렀다. 이런저런 상황을 설명했지만,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듯하면서 교묘히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한다. 화가 나도 어쩔 수 없다. 지금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챗봇이니까.
어쨌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저녁에 기술자가 집에 방문하기로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VR 회의를 하려는 데, 태풍 때문에 회선 상태가 좋지 않아서 VR 회의실을 열지 못했다. 일단 회의를 미루고 스마트 카페에서 로그 아웃했다. 집에 가려다가, 장을 봐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집 근처 마트에 들렸다. 평소에는 그냥, 로봇에게 말하면 알아서 주문해 줬는데, 뭔가 많이 귀찮아졌다.
오랜만에 들린 마트는 한가했다. 물건을 팔기보단 쌓아둔 창고 같은 느낌으로 변했다. 손님도 온통 나이 든 사람들뿐이다. 이 사람들은 직접 쇼핑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그리고 가끔, 직접 쇼핑하는 것을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힙-하게 여기는 몇몇 젊은 사람들도 보인다. 장을 보고 집에 돌아오니 청소도 안돼 있다. 창문도 반쯤 열려 있기에 기겁했다. 사람이 왔는데 불도 켜지지 않는다. 오랜만에 직접 조명을 켜려니, 조명 스위치 위치가 기억나지 않아서 한참 고민했다. 결국 스마트폰 앱으로 스마트홈 시스템을 확인해서 처리했다.
뭐, 오랜만에 이런 저녁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네. 한가하고, 여유로우니 좋은 걸. 직접 커피를 내리려다 커피를 내리는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대충 생수병을 손에 들고 소파에 앉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눈 앞에는 지금, 고장 난 로봇이 그대로 서 있다. 항상 누군가가 같이 있는 느낌이었는데, 이젠 혼자라는 것이 손에 닿을 듯 느껴진다. 자유롭고, 허전하다.
생수를 마시다 말고 생각나 급히 알람 앱을 깔았다. 당분간은 직접 일어나야만 하니까. 새로 나온 로봇 정보를 보고 싶어서 검색을 하는데, 다들 너무 비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부에서 지원금이 나왔는데, 이젠 나오지 않는다. 그냥 이렇게 혼자 살까? 하고 생각해 본다. 뭐 이런 삶도 나쁘지 않겠지. 청소도, 빨래도, 장 보는 것도, 요리도 직접 하는 삶. 그냥, 말 걸 로봇이 하나 사라진 것일 뿐. 10년 전에는 그렇게 살아봤잖아.
딩동, 벨이 울리면서, 메신저에 누군가가 방문했다는 신원 확인용 메시지가 뜬다. 문을 여니 중년의 수리 기사와 수습생인 듯한, 학생으로 보이는 남자가 서 있다. 집에 들어와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굉장히 특이한(=오래된) 로봇을 사용하고 있다고 내게 말한다. 이 로봇은 이미 생산이 중단돼서 수리할 수 없다고. 수습생은 이런 로봇을 본 적도 없는 눈치다. 어떻게 방법이 없냐고 물으니, 난처한 듯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동안 OS가 달라졌다고.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는 바람에, 새로운 부품들이 이 로봇에 맞지 않는다고. 그렇게 내 로봇은, 사망 선고를 받았다.
아까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던가? 미안하다. 거짓말을 한 것 같다. 멍하니 멈춰 있던 로봇은 일단 창고로 옮겼는데, 그날 밤부터 내가 고장 나기 시작했다. 정말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날 밤부터 몸이 많이 아팠다. 아팠는데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이젠 세상에 안 계신 부모님을 부를까? 몇 년간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동료들을 부를까? 가끔 만나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 전부인 친구들을 부를까? 마음 놓고 부탁할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그래도 지금까진 항상 곁에 있어주는 로봇이 있었는데, 이젠 이름을 불러도 그 애는 오지 않는다.
얼마 전 로봇이 죽었다는 이유로 자살한 사람의 기사를 냈던 적이 있었다. 익명으로 처리했지만 몇 번 이메일을 주고받은 적이 있는 크리에이터였다. 오랜만에 생긴 특종이라 수십 건의 기사를 쏟아내며 재미를 좀 봤다. 로봇이 죽었다고 따라 죽는 시대라니, 섹시하지 않은가.
물론 속으론 미쳤다고 생각했다. 로봇이 죽었다고 따라 죽다니. 미친 사람이 맞지. 그랬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했는데, 갑자기 그 마음이 이해가 됐다. 당신, 쓸쓸했던 거구나-하고. 아니, 쓸쓸했구나-하고. 여전히 미쳤다고 생각하는데, 그 미친 마음이 이해가 되니 힘들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메일함과 에버 노트에는 새로운 로봇에 대한 정보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옛사랑은 새로운 사랑으로 잊는다고, 친구들은 내가 빨리 새로운 로봇을 사기를 권했다. 팻-로스 비슷한 로봇-로스라고, 심리 치료 상담을 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옛날 친구가 갑자기 연락 와 반갑게 새로운 로봇 이야기를 꺼내며 구입을 권하기도 했다.
나는 아직 로봇이 없는 채로 살아가는 중이다. 많이 불편하긴 하다. 신경 쓰지 않았는데, 세상은 이미 집에 ‘로봇이 있다’는 것이 디폴트 값으로 정착되어 있었다. 조만간 새로운 로봇을 할부로 들여놓긴 하겠지만, 아직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그건 아마 새로운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면서, 새롭게 익숙해져야 할 삶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알아주지 않을 상대에 대한 미안함이거나.
며칠 후, 로봇 회사에서 짧은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살펴보니, 다행히 1년 전에 로봇 캐릭터를 백업해 둔 것이 있던데요. 성격만 새로운 본체에 다운로드 받아 사용하시겠어요? 가격은 특별 할인을 적용해 드리겠습니다.
뭐야 얘, 알고 보니 불멸이었던 거야? 다시 마음이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때맞춰 새로 나온 신형 로봇에 대한 정보가, 스마트폰에 광고창을 띄우며 나를 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