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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T Oct 23. 2018

‘환상’이라고 쓰고 ‘환장’이라고 읽는 듀오

경제부 기자와 광고부의 은밀한(?) 연대


오늘은 기자 초년병 시절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정규직 연예 기자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전, 난 프리랜서와 객원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었다. 잡지사 프리랜서를 거쳐 한 매체에서 인턴 기자로 일할 때였다.



당시 오리엔테이션을 거쳐 난 경제부에 배치되었다. 보통 기자 초년병들이 경찰서를 돌며 몇 달씩 고된 수습 생활을 마치고 사회부에 배치되는데 비해 난 열흘 남짓한 오리엔테이션 후 바로 경제부에 배치된 것이다.



그런데, 난 경제 문외한이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기초적인 경제 이론을 담은 서적과 금융, 주식과 관련된 서적을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걸 본 내 경제부 사수들은 날 비웃으며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사수들은 경제 서적은 차차 읽도록 하고, 우선 이것부터 파악하고 외우라고 A4 용지를 한 장 던져줬다. 바로 ‘재벌 혼맥도’였다.



말 그대로 국내 굴지의 재벌들이 어느 집안의 누구와 결혼을 했는지, 슬하에 자녀는 얼마나 두었는지 등 가계도를 한 눈에 알기 쉽게 정리해놓은 것이었다. 재벌 혼맥도에는 재벌 간의 결혼은 물론, 재벌과 정계, 법조계, 언론계 등 소위 권력층 집안 자녀들이 결혼을 통해 어떻게 거미줄 같은 인맥을 구축했는지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대체 이 ‘재벌 혼맥도’가 경제부 기자 업무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사수들은 왜 다른 배경 지식이나 정보는 차치하고 재벌 혼맥도부터 파악하라고 했을까? 이 궁금증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바로 풀렸다. 해답은 바로 경제부 운영 목적에 있었다.



소위 마이너 매체들은 메이저 매체에 비해 인지도나 영향력이 약하다보니 광고 수익이나 판매 부수도 저조했다. 이에 회사측에서는 경영난 타파와 수익 증대를 위해 경제부를 광고의 전초 기지로 이용했다. 모든 매체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경제부를 광고부 2중대로 이용하는 매체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경제부는 경제를 분석하고 전망하는 기사를 써서 독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부서가 아니라 광고주, 다시 말해 신문 광고계의 큰 손인 재벌들의 약점을 잡고 그걸 광고와 교환하는 역할을 하는 부서였다. 광고를 받는 대신 기사 게재를 ‘없던 일’로 해주는 것.



특히, ‘광고 바꿔먹기’에도 등급이 있었다. 광고 단가, 기업에서 기사를 막기 위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광고를 주고 기사를 잠재우는 지 여부에 따라 등급이 결정되었다. 일단, 대형 이슈라 할지라도 타 매체에서 먼저 터뜨린 아이템은 ‘상품 가치’가 거의 없다. 이미 다 나온 내용이라 기업측에서도 광고로 ‘딜’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다 한 번씩 대형 악재로 인해 장기간 시달리는 대기업에서 일괄적으로 광고를 집행하는 경우가 있으니 보험용으로 취재를 한다.



그 다음으로는 식음료, 의약품, 의류, 침대 등 우리 일상생활과 밀접한 소비재 관련 고객 컴플레인이 잘 먹힌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는 아니고 주로 해당 고객과 기업체 간 1:1의 문제인 경우가 많은데, 입소문과 악성 루머가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는 소비재 생산 기업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있다. 블랙컨슈머의 악의적 컴플레인의 경우 광고 집행이 어렵지만, 정당한 클레임일 경우 입소문을 우려한 기업측에서 광고를 집행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에 경제부 사수들은 ‘재벌 혼맥도’ 이외에 주요 대기업 고객센터 등을 돌아보며 소비자 고발 상황을 수시로 체크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위의 사례들보다 더 잘 먹히는 ‘광고용 아이템’은 무엇일까? 바로 재벌 총수를 직접 겨냥한 기사다. 해당 기업에서 사업 추진내용이나 기업과 얽힌 사건 사고보다 재벌 총수를 겨냥한 기사에 보다 적극적이고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총수들은 소소한 동정이라 할지라도 언론에 노출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럽기 때문에 기업의 비서실이나 홍보팀 등에서는 총수와 관련된 기사가 노출되지 않기를 원한다. 그렇기에 일부 매체의 경제부에서는 갑질, 폭행 등 총수의 사회적 물의나 범죄, 악행과 관련된 취재를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녀의 학예회에 참석한 재벌 총수 모습이라던지, 선친 제사에 참여한 총수 등 단순한 동정기사로도 광고를 따내는 경우도 있다. 다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재벌 총수의 악행이 이미 타 매체를 통해 공개되었을 경우엔 등급이 낮아진다.



그래서 사수들은 후배가 경제부에 배치되자마자 ‘재벌 혼맥도’부터 주입시키는 것이다. 아울러 ‘짜라시’로 불리는 정보지도 두루 살펴보고, 재벌 총수와 근거리에서 일했던 전직 운전기사나 비서 등의 인맥관리(?)도 한다.



경제부 기자지만, 경제 지식이나 동향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되는 상황.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두고 데스크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 매 주 아이템을 수시로 체크하고 해당 기업에서 얼마나 ‘움찔’했는지 여부를 두고 크게 혼을 내기도 했다. 그렇게 일부 매체의 경제부 기자는 허울 좋은 간판을 단 양아치, 혹은 기레기가 되어갔다.



데스크가 해당 기업을 궁지에 몰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광고부와 배턴 터치를 하기 위함이다. 보통은 데스크나 경제부 선임이 광고부에 ‘우리가 이번에 A그룹 총수와 관련된 동정 취재를 했는데, 홍보팀에서 움찔한 것 같아요. 한 번 잘 마무리해보세요’라며 소스를 건넨다.



그러면 광고부에서는 해당 기업과 접촉해 ‘우리매체 기자가 회장님을 취재했다고 하던데, 그거 기사 나가면 골치 아프지 않겠어요? 그런데 제가 A그룹과 우리 매체는 각별한 관계라서 기사 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면서 홀딩 시키고 있어요’라고 운을 뗀다. 한두 번 당한 게 아닌 기업측에서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광고를 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매체의 꽃은 경제부’라고 자뻑에 취해있거나 경제부와 광고부를 묶어 ‘환상의 복식조’라고 낯 뜨거운 수식어를 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이 환상의 복식조는 가장 좋지 않은 쪽으로 시너지는 내는 ‘환장의 복식조’다. 그들로 인해 결국 애꿎은 기업은 광고를 뜯기며 환장하고, 기업과 총수의 잘못에 대해 알 권리가 있는 독자들도 환장할 노릇일 것이다.



기업체에 비판적인 기사를 내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기업이 잘못한 것을 지적하고 바로 잡도록 하는 것이 기자 본연의 역할이자 사명일 것이다. 그렇게 양질의 기사를 생산하고 올린 신뢰도를 바탕으로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고, 광고부는 이를 바탕으로 광고 영업을 하면 된다.



하지만 이 잘못된 만남으로 인해 매체는 정작 쓴 소리를 해야 할 때 하지 못하게 되고 언론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더 나아가 광고를 잘 준 기업의 노예로 전락할 가능성도 크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사건이 터진 후 수습하는 노력과 비용보다, 광고를 주면 그만큼의 노력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손해만은 아니다. 골치 아픈 존재인 언론이 광고를 미끼로 알아서 숙이고 들어가겠다는 데 싫을 이유가 있겠는가?



세월은 많이 흘렀고, 언론 매체를 둘러싼 환경도 크게 변했다. 지면매체는 쇠퇴의 길을 걷고 있고, 온라인 모바일 뉴스가 대세다. 하지만 온라인 모바일 뉴스는 언론사 홈페이지보다는 포털과 SNS에서 소비된다. 대기업들도 불경기가 지속되면서 광고 마케팅 비용을 줄여나가는 추세다. 여러모로 광고 시장은 예전 같지 않다.



이에 과거의 ‘환상의 복식조’같은 행태는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한 때의 추억이라고 하기에 낯부끄러운 일을 자행한 기레기들의 얼굴은 여전히 너무도 두껍다. 이런 악행을 저지르는 매체 홈페이지들을 들어가 봤다. 대부분의 매체들은 매체소개란에 ‘공정한 보도’, ‘부당함에 굴하지 않는 정론지’, ‘독자에게 신뢰를 주는 매체’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다. ‘공정한’, ‘정론지’, ‘신뢰’의 뜻을 잘못 알고 있거나, 독자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Copyright(C) Oct. 2018 by Writer T.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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