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없고 지금은 있다

25년 전 인도여행 vs 지금의 대만여행

by 김나물

대만 타이난의 한적한 동네에 자리를 잡았다. 공원을 거닐다가 문득 예전에 혼자 떠났던 여행이 떠올랐다. 꼬박 25년 전의 이야기다.


그때는 없고 지금은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또는 그때는 있고 지금은 없는 것들은 무엇일까.



그때는 있고 지금은 없는 것들


객기


25년 전 20대 초였던 나는 혼자 인도로 떠났다. 인터넷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숙소 예약은 커녕, 구글맵으로 여행 갈 곳의 스트리트 뷰를 본다던지 하는 호사는 누릴 수 없었다. 오래된 옛날 여행 책자 <세계로 간다-인도 편> 한 권만이 유일한 가이드였다. 알고 보니 출판된 지 10년도 넘은 책이었다. 책 속 지도를 따라가다 보면 숙소나 식당이 없어진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책에 나온 요금과 지금 요금이 왜 이렇게 다르냐고 따졌다가 10년 전 요금이라고 타박받았던 적도 있었다. 게다가 비행기표 제외하고 들고 간 돈이 달랑 30만 원. 그걸로 한 달을 버티겠다고 무작정 향했다. 아는 게 없으니 용감했다.


어느 날 불현듯 딸이 물었다. 엄마 주변에 해외여행을 다녔던 사람들도 없었는데 어떻게 갈 생각을 했냐고. 그러게 말이다... 이상하게 그때의 청춘들에게 인도 바람이 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인도는 요가와 명상, 낭만과 히피의 상징이었다. 나도 그 바람을 정면에서 맞았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제대로 된 독립을 하기 위해서는 혼자 여행을 떠나야 했고, 그 여행지는 인도여야 했다. 낭만일까 호기일까. 사춘기 없이 10대를 보냈던 나는 20대가 되어서야 사춘기를 제대로 맞고 있었다. 세상에 정면으로 부딪혀보겠다는 객기 충만했던 시절이었다.


외로움


하지만 세상모르고 덤볐던 그때의 인도는 사무치게 외로웠다. 운이 좋아 가끔 여행 동반자들을 만나 함께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홀로 여행을 결심한 터라 나는 매번 호기롭게 그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렇게 결연했던 모습과는 달리, 혼자 떠나던 그 길은 참으로 외로웠다. 홀로 새 숙소에 도착해 문을 여는 순간, 사무치게 후회가 몰려왔다. 25년이 지난 지금도 그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며칠을 숙소 밖을 나가지도 않은 적도 있었다. 방 숙소에서 도마뱀과 꼬박 이틀을 함께 했다. 혼자 밥을 먹는 것도, 혼자 길을 걷는 것도 두려웠다. 누군가 해코지를 하지는 않을까. 여기서 내가 죽으면 누가 내 죽음을 알아채주려나 싶었다. 생각 많고 겁 많은 집순이인 내가 괜한 짓을 벌였구나.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꽉 다물고 무섭지 않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그렇게 생애 첫 해외여행으로 홀로 인도에서 한 달을 보냈다.


객기와 외로움은 비단 여행 때뿐만은 아니었다. 객기 충만했던 20대의 나는 실험예술에 빠져 있었고, 10대 때 부모님께도 하지 못한 반항을 20대가 되어서야 세상을 향해 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외로웠다. 미리 인생의 길을 걸어본 이들의 조언을 바랐건만, 그런 복은 내게 없었다. 내가 지금 가는 길이 맞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어떤 길로 여행 중인지도 애써 말하지 않았다. 그 길 위에서 실패하고, 좌절하고, 방황했다.


25년이 흘렀다. 결혼과 출산, 육아와 일로 25년을 지나, 나는 지금 대만이다. 그 사이 딸 둘은 스물을 넘겨 25년 전 나의 나이가 되었다.



그때는 없고 지금은 있는 것들


지침


아내로, 엄마로, 딸로, 며느리로 바쁘게 살아왔다. 챙겨야 할 사람이 왜 이리 많은지... 돈벌이에 빠져 정작 계획했던 일들을 놓치기 일쑤다. 얼마 있지도 않은 친구들을 한 달에 한번 겨우 만날까 말까 한다. '아마도 지금은 그런 시기인 것 같으니 50대나 되어서야 자주 보자'는 말로 40대 인생의 버거움을 토로했다.


게다가 지금 나는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다. 아니, 너무 많은 걸 알아버린 것 같다. 시작도 하기 전에 끝을 본 것처럼. 마라톤 종착지까지 가기에는 너무 많은 희로애락이 있을 것을 알기에, 뛰지 않기로 결심한다. 꿈을 꾸기에는 너무 피로하다. 혹은 젊은 친구들에게 기회를 양보해야지 하며 어울리지 않는 미덕으로 나의 피로를 정당화한다. 비겁함이 늘었다.


물론 이런 지침을 떨쳐내려고 나는 지금 대만에 와 있다. 객기 충만했던 나의 청춘에게 보내는 얄팍한 변명이나마 될 수 있으려나.



오롯이 혼자를 즐김


어쩌면 그래서인지. 이제야 혼자됨을 즐긴다. 공원 산책로를 거닐고, 벤치에 앉아있다가 대만 할머니들의 수다를 훔쳐 듣는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가 예상치 못하게 길을 잃어 골목길을 누비고 돌아온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직원이 뭘 물어볼라치면, 홀로 지구에 비상착륙한 외계인마냥, 눈을 껌뻑껌뻑댄다. 그러면 알아서 잘해준다. 비로소 사색을 즐기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은 혼자가 아니다. 예전에는 달랑 있던 일기장 한 권이 유일한 말벗이었는데, 이제 일기를 쓰듯 가족들과 통화를 한다. 남편과 아이들은 내가 무슨 선택을 하든 언제나 나를 응원해 준다. 축복이다. 나의 원가족은 살가운 가족이 아니었다. 나는 꿈을 강요받았고, 어른스러워야 했고, 부모님의 자랑이어야 했다.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부모님께 물어보지 않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꿈도 고민도 얘기하지 않는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딸이었다. 지금은 내가 스스로 놀랄 정도로 딸들과 살갑게 인사를 나누고, 스스럼없이 애정을 표현한다. 딸들은 내 표정만 봐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금세 눈치챈다. 딸들과 오지도 않은 미래를 상상하며 키득키득 웃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가끔 혼자 타지에서 뭐 하고 있나 현타가 올 때가 있다. 가족이 보고 싶다. 까짓것 비행기로 2시간이면 집에 갈 수 있는데.... "집에 잠깐 들렀다 올까?" 하고 물으면 딸이 말한다.


"지금을 즐겨!"


그래.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어야 할 것. 지금을 즐기자. 언젠가는 또 아득하게 느껴질 순간들을 오롯이 즐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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