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나 한달살이의 시작

#대만 #타이난 #한달살이

by 김나물

나는 지금 타이난이다.


어쩌다 보니 대만...


유난히 바빴던 2024년이었다. 휴식이 간절히 필요했다. 어디 한 달 동안 처박혀 있을 곳이 필요했다. 그렇게 한달살이를 마음먹은 것이 작년 여름부터였다. 하지만 그 장소가 꼭 대만일 필요는 없었다. 대만은 한 10년 전쯤 친구를 만날 심산으로 겸사겸사 4박 5일 정도 가족여행으로 왔던 때가 마지막이었다. 부지런히 다니는 걸 좋아하는 남편 덕에 타이베이 근처 유명 관광지를 하루에 몇 개씩 찍으며 택시 안에서 어지러워했던 것이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대만과 인연이 닿았다. 실은 딸이 친구와 해외여행을 간다며 2번째 선택지였던 대만을 여행지로 결정을 했고, '나도 그럼 가서 딸이나 만나야지' 하는 마음에 대만으로 오기로 결정했다. 사뭇 즉흥적이었다. 아직도 딸의 친구는 모르겠지. 자신의 결정이 잘 알지도 못하는 친구 엄마의 한 달을 결정했을 줄은. 물론 근 몇 년간 대만에 대한 관심이 늘었던 것도 사실이고, 갑자기 중국어 공부에 꽂힌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크게 대만행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은 하지 않았다.


출발하기 바로 전 주까지 퇴사 준비로 바빠 대만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지 못했다. 그나마 대만의 큰 도시들 중에는 제일 한적하다는 타이난으로 결정을 했다. 마음을 바꾸지 않기 위해 한참 전에 비행기표를 구입했고, 숙소를 예약했다. 내가 곧 대만으로 간다는 사실도 잊고 지냈다.


나만의 시간


어느덧, 한달살이 여정이 다가오고 있을 무렵, 집안에 이런저런 악재들이 겹쳤다. 꼭 마음먹고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장애물이 나타난다는 전형적인 패턴이지 않나. 그런데 정말 이번에는 떠나기 한 달을 앞두고 안 좋은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이런 일을 예감하고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마음을 다 잡았었다. 마지막에 한달살이를 포기할까 고민했지만 그대로 강행하기로 했다. 돈은 언젠가 돌고 돌아 들어올 테고, 끝날 인연은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유효기한을 다하고 끝이 나겠지. 지금 이 시간을 놓치면 영영 떠나지 못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저런 돈벌이에 치여 살다 보니 정작 내가 무얼 하려고 했었는지 길을 잃은 듯했다. 휠체어 타고라도 세계여행을 가겠다는 장대한 포부를 한달살이로 조금이나마 실천해야겠다 싶었다. 딸 둘이 이제 모두 스무 살을 넘겼으니 어딘가 훌쩍 떠나도 되겠다 싶었다.


대만에서의 첫 일주일은 딸과 함께 실컷 돌아다녔다. 밤길도 어슬렁거려 다녀보고, 워킹투어에서 만난 루마니아 여자애와 저녁에 다시 만나 수다를 떨기도 하고, 일본유학생들의 아지트로 보이는 이자카야에서 맛난 닭꼬치도 먹었다. 물론 딸과 헤어지고 나서, 혼자서 어떻게 지내야 하나 순간순간 엄습해 온 걱정들은 비밀이다. 원인 모를 죄책감이 몰려온 것도 비밀이다.


딸과의 이별을 고하는 날, 딸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상상하고 있었지만, 기차역을 잘못 알고 있었던 터라 우리는 곤욕을 치렀다. 행여나 비행기마저 놓칠까 급하게 인사를 나눴다. 개찰구를 막 들어선 딸을 불러 급하고 짧게 포옹을 했다. 잘 가.


딸과 헤어지는 아쉬움보다는 홀로서기 같은 한달살이의 시작이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집 떠나 한 달 살이의 목표


한달살이를 계획했던 초심을 떠올렸다. 일단 나의 한달살이 목표는 두 가지다. 첫째, 아무것도 하지 않기. 둘째, 글 쓰기.


무엇보다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기'는 무엇을 안 한다는 것보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에서 벗어나기를 뜻했다. 가족들을 위한 밥을 짓지 않기, 가족들을 위한 집 청소하지 않기, 빨래하지 않기. 엄마이자 딸이자, 아내이자, 며느리로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 자연히 몸이 멀어지면 이러한 의무들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 첫 번째 목표는 일단 실패였을 지도 모르겠다. 대만에 도착하자마자 첫 일주일 동안은 딸과 관광지를 실컷 돌아다녔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첫 일주일을 실컷 돌아다녔더니 다행인지 정말 어딜 가고 싶은 욕망이 사라졌다. 관광이고 뭐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두 번째 목표인 글쓰기는 현재진행형이다. 글을 놓고 산 지 너무 오래됐다. 나를 쏟아붓는 일을 해야겠다 싶었다. 50대부터는 글밥을 먹고살겠다고 다짐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초석을 다져놓고 싶다. 매번 미루던 글쓰기를 이번에도 미루면 정말 답 없다고 봐야지. 그 일환으로 이렇게 대만에서의 한달살이에 대한 글을 시작했다.


이제 막 한달살이의 절반을 보냈다. 이것도 인연이라고 대만에서의 이야기들을 풀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