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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한교 Sep 09. 2018

2년간 스타트업에서 디자인하며
배운 12가지




1. 어떤 서비스를 보고 함부로 디자인 못했다고 욕하지 말자.

이전에는 별로인 서비스를 보면 서슴없이 "왜 이렇게밖에 못했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제는 별로인 서비스를 보면 "다 사정이 있었겠지"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못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 서비스의 디자이너도 충분한 시간과 디자인 결정 권한이 있으면 충분히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디자인에는 그 당시의 상황도 담겨있다.




2. 결과물을 공유할 때 취향 고백과 주장을 구분하자.

업무로써의 디자인은 이유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이유가 단순히 "내가 보기 좋아서"와 같은 취향 고백이라면 이유가 될 수 없다. 디자이너가 혼자일 때도 취향대로만 하는 것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다른 직군의 멤버가 왜 이렇게 디자인했는지 궁금해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대단하지 않더라도, 이유를 잘 설명하면 동료가 더 좋아해 주고 공감해주는 효과가 있다. 개발도 더 잘해준다 : D

본인의 취향을 디자인에 담고 싶다면 취향을 설득시키기 위한 근거를 만들자. (그래서 괜히 UX책 많이 읽고 심리학 책도 보고 그러나 보다..)




3. 작은 발표도 미리 연습하자.

큰 발표는 많이 연습하는데 시안이나 아이디어 공유는 가볍게 생각해서인지 그냥 가곤 했다. (그리고 어버버ㅠ) 물론 그냥 가도 잘하는 능력자도 있지만 아니라면 미리 한 번쯤 연습을 해보자. 이 과정에서 허점을 찾을 수도 있고 논리를 단단하게 할 수도 있다.

커뮤니케이션도 연습하면 보완이 가능하다. 언제쯤 연습 없이도 잘할 수 있을런지..




4. 자기 나름의 디자인 철학을 만들자.

자신의 생각에 대한 정답을 내리고 답정너가 되는 것은 위험하지만, 어느 정도의 디자인 철학을 만들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디자인은 누구나 한마디 거들 수 있는 오픈된 분야이기 때문이다. 피드백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심을 잡아줄 중심점이 없으면 굉장히 힘들다. 


실컷 휘둘리다가 "결과가 이게 뭐야?"라는 피드백이 왔을 때 "이렇게 하라고 해서 했는데요?"라는 말이 속에서 맴도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생각이 속에서 맴돌면 심한 자괴감이 들곤 한다.

피드백은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되, 어느 정도는 기준을 잡고 흔들리지 말자. (말이 쉽지..)




5.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얘기하지 않으면 그냥 일 안 하는 직원이 된다.

"저는 뭐 했고, 이것도 했고, 저것도 했고, 요것도 했어요!"라고 말하는 게 처음에는 부끄러웠다. 뭐 굳이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말해야 하나..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내 옆자리의 직원이 뭘 하는지 말 안 하면 모르듯 내가 말하지 않으면 내 동료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뭐 하고 있는지 물어보기 전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필하자. 잘 기록해놓는 것은 기본!

일 안 하는 취급받기 싫다면, 얌전한 것보단 나대는 게 낫다.




6. 매일매일 뭘 해야 할지 생각하자.

매일 정해진 시간에 팀원끼리 모여서 어제 무엇을 했고 오늘은 무엇을 할 것인지 얘기하는 시간을 스탠드업이라 부른다. 입사 초기에는 이 스탠드업 시간이 너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잘 모르기 때문에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제는 무엇을 했고 오늘은 무엇을 할 것인지 그리고 목표는 무엇인지 매일매일 생각하는 훈련은 생산성을 높이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해야 할 일이 머릿속에 인지된 상태면 내 시간을 더 탄력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인지하지 못하면 예측할 수 없고 결국 낮은 생산성으로 돌아온다.

하루 종일 핀터레스트만 보다가 퇴근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7. 지금 모르면 나중에도 모른다.

이해를 잘 못하는 것은 단점이다. 하지만 계속 물어보지 않고 아는척하는 것은 치명적인 단점이다.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다시 생각해봐야지 하는 것은 의미 없다. 지금 모르면 나중에도 모른다.

무조건 이해될 때까지 다시 물어보자!




8. 시작하면 하게 되고, 하다 보면 어느 정도 잘하게 되고, 어느 정도 잘하게 되면 좋아하게 된다.

스타트업은 요구되는 업무의 영역이 굉장히 넓은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이것도 해야 해?" 하는 태도보다는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일단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해봐야 나랑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경험상 많은 것을 하다 보면 프로세스를 이해하게 되고, 디자인 업무에도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문서작성, 발표, 개발, 프로토타이핑, 테스트, 일정관리 등등 나와 전혀 관계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일단 하다 보니 어느 정도(?) 하게 됐고, 그중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됐다.

업무영역만 넓어지면 안 된다. 연봉도 넓히자!




9. 근거 없는 자신감은 근거가 된다.

책 '최고의 팀은 무엇이 다른가'를 보면 발표자의 확신, 자신감, 수행하려는 의지가 발표 내용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내용이 있다. 가볍든 무겁든 어떠한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자신감을 갖는 것은 긍정적 효과가 있다. 항상 자신감을 위해 자기 최면을 걸자. 안되면 자신감 있는 척 연기라도 하자.

근거 없는 자신감은 내 의견을 설득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10. 내가 결정해야 할 일을 남에게 미루지 말자.

가끔 피곤하고 귀찮은 상태에서 작업하면 “누가 결정해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 괜히 시안 몇 개 작업해서 채팅방에 올리거나 회의를 잡곤 했다. 그 당시엔 어찌어찌 넘어가서 좋아도 이게 쌓이면 결국 안 좋은 경우가 많았다.


안 좋았던 이유 첫 번째는 간단한 결정에도 모두의 리소스를 쓰게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나중에 관련 질문이 오면 기억도 안 날뿐더러 대답을 잘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담당자는 나지만 일단 결정됐다는 것에 신나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생기더라. 세 번째는 동료들도 담당자가 결정하고 이끌어주길 원하기 때문이다. 나도 바쁜데 나에게 결정을 미루지 마! 하는 건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마지막 이유는 결정 스트레스가 점점 더 커지기 때문이다. 결정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한데 자꾸 미루다 보면 본인이 더 힘들어진다.

"귀찮으니까 그냥 한번 물어봐" 하는 마음과 "안돼 뭐가 더 좋은지 결정해" 이 두 가지가 매일 속에서 싸우고 있다. 결정은 너무 힘들다..




11. 디자인은 중요하지만 때로는 중요하지 않다.

스타트업의 디자이너는 업무 영역이 넓은 경우가 많다. 기획도 하고 스펙 문서도 만들고 와이어프레임도 그리고 디자인도 하고 개발자와 커뮤니케이션도 하고 테스트도 하고 데이터도 보는 등등.. 많은 영역에 걸쳐져 있다. 이런 다양한 업무 롤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는 본인을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시간 동안 최대의 효율을 뽑아내야 한다.


하지만 알면서도 디자인에 집착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그리고 최후의 수단으로 일정을 더 요구한다. 생각해보면 디자이너에겐 디자인이 가장 중요하지만 프로젝트에선 한 부분일 뿐이고, 일정이 짧을 땐 디자인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짧은 일정이 불만스러울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비우는 것도 좋다. 오래 붙잡고 있는다고 결과가 무조건 좋은건 아니고 짧게 했다고 결과가 안좋은건 아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은 중요하다. 하지만 프로덕트 전체로 보면 디자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모든 것이 평온해졌다 : )




12. 개발된 결과물이 최종 디자인이다.

UI를 디자인하고 가이드를 넘기면 개발자에게 안된다는 피드백이 온다. 안 되는 이유는 보통 일정이다. 시간만 많으면 디자이너의 욕심을 다 채워줄 수 있지만 개발자에게 허락된 시간은 열두 척의 시간뿐.. 


이런 환경에서 최선의 결과물을 얻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개발되는 것을 고려해서 디자인을 하는 것이다. 오해하지 말자 개발자를 위한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프로덕트에 올리기 위함이다. 두 번째 방법은 개발자와 함께 UI를 그리는 것이다. 초반에 같이 옆에 앉아서 디자이너가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개발자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 개발도 정해진 일정에 할 수 있으면서 디자인 결과물도 좋아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기 위한 전제조건은 개발에 관심 있는 디자이너와 디자인에 관심 있는 개발자가 모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진행한 디자인 결과물을 좋아하는데, 감사하게도 디자인에 관심 많은 잘 맞는 개발자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개발에 관심 있는 것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하는 자뻑도 해본다 :D 

결론 : 디자인을 위해서 코딩을 공부하자(?)









2년간 스타트업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자책하고 다짐했던 내용 중 몇 개를 추려봤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반성하고 개선하다 보면 언젠간 괜찮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희망해본다. 몇 년 뒤에 이 글을 보고 이불 킥을 몇 번 할지도 기대된다 :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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