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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한교 Aug 05. 2019

책을 쓰게 만든 한 권의 책

강원국의 글쓰기




누구나 그렇듯 언젠간 책을 쓰는 상상을 하곤 했다. 은퇴 후 경치 좋은 외국 휴양지에서 인생을 돌아보며 자서전을 쓰는 것이다. 사람의 기억은 지나고 나면 미화되듯이 아마도 자서전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아름다운 이야기로 가득 찰 것이다.


그 상상이 생각보다 빠르게 이루어졌다. 생각했던 은퇴 후 자서전은 아니지만 퇴사하고 썼으니 퇴사 후 쓴 무언가(?)라고 할 수 있다. 상상 속에선 술술 써졌던 자서전은 현실의 나에게 "더 강해져서 돌아와라"라고 외치고 있었다. 마치 "네가 책을 쓸 자격이 있어?"라고 말하듯이.


이 고민은 고통스러워하던 도중 서점에서 우연히 펼쳐 본 '강원국의 글쓰기' 책이 해결해주었다.




쓸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은 그만한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이 한 문장은 너무나도 큰 위로가 되었고, "자격이 없었다면 나에게 기회가 오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동안 원고를 빨리 마감하겠다는 생각에 주변 모든 것을 차단하고 글에만 매달리는 '척' 했던 나를 반성했다. 아마 이 책이 없었다면 나는 원고를 마감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쓰고 나서 편집하면 된다. 일단 써라

책을 처음 쓸 때 들었던 말 중 하나는 목차가 절반이라는 말이다. 책 내용(스케치)으로 강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커리큘럼을 기반으로 생각보다 쉽게 목차를 만들 수 있었다. 문제는 나머지 절반이었다. 절반(목차)을 쉽게 해내면 무얼 하나 나머지 절반에 이미 압도되었다.


매일 밤 자기 전 "이 내용을 어떻게 채우지?"라는 생각을 하며 잠들었다. 하염없이 시간이 흘렀지만 걱정은 진도를 나가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토해놓는다는 심정으로 쓰고 나중에 고치면 된다는 내용을 보고 무작정 뭐라도 써 내려갈 수 있었다.






글쓰기 실력이 80점인 사람이 마치 100점인 것처럼 보이고 싶은 욕심 때문에
글을 못쓰고 끙끙 앓는다.


책을 쓰다 보니 내가 뭐라도 된 양 엄청난 내용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는 자신의 현재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력이 80점인 사람이 마치 100점인 것처럼 보이고 싶은 욕심 때문에 글을 못쓰고 끙끙 앓고 있는 것이다.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머릿속에 든 만큼, 마음으로 느낀 만큼, 내가 경험한 것을 최선을 다해서 쓰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글이 한결 수월하게 써졌다. 일단 뭐라도 쓰니, 설명이 잘 안 되는 부분이나 부족한 부분은 자연스럽게 수면 위로 떠올랐고 더 공부하면서 내용을 수정하며 채워나갈 수 있었다.





글은 칭찬을 먹고 자란다.


칭찬은 뇌의 논리적 영역이 담당하고 지적은 감정적 영역에서 처리하기 때문에 칭찬이 지적보다 어렵다고 한다. 논리적 근거를 대는 일은 귀찮고 복잡하다. 감정적 반응은 즉흥적이고 수월하다. 또한 뇌는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에 신속히 반응한다. 그게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잘 쓴 글보다는 못쓴 글, 칭찬보다는 지적할 게 먼저 눈에 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적이 글을 잘 쓰게 만들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지적은 못쓰지 않게 할 뿐이다. 기왕이면 호의적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이 낫다.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 그 한 사람이 필요하다. 강원국 작가님은 칭찬을 갈구하며 아내에게 글을 보여줬다고 한다. 나는 여자 친구에게 글을 보여주었다.






말해보고 써라


운이 좋게도 강의를 시작한 시기와 맞물려 책을 계약했다. 좋은 점은 내용을 계속 서로 보완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안 좋은 점은 무수히도 많은 수정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글로 쓴 내용을 바탕으로 강의를 하면 더 효율적으로 설명할 순서가 떠올라서 쉬는 시간에 그 내용을 까먹지 않으려고 기록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글과 말은 다르고 말과 설명은 다르다는 것이 너무나도 공감되었다. 그렇게 1년여의 기간 동안 원고를 쓰는 것과 강의를 하는 것은 서로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프로세스를 기반으로 툴을 익히는 것이었다. 첫 강의 때 기능을 다 설명하고 본 내용에 들어가니 효율적이지 못한 피드백이 나왔다. "그래서 이걸로 뭐 하는 건데요?"라는 상태로 너무 오랜 시간을 설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다음부터는 내용을 수정해서 결과물을 바로 그리며 필요한 기능만 배울 수 있도록 했더니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팔리지 않을까 봐 책 못 쓴다는 분께 드리는 답변은 한마디다. "일단 쓰고 말하자"


처음엔 책을 쓴다는 것 자체에 감사했지만, 막상 쓰다 보니 온갖 핑계가 발목을 잡았다. "이걸 써서 내가 얻는 게 뭐지?", "책 써도 돈 못 번다는데?" 등등 그냥 쓰기 싫은 것이었는데 쓰기 싫다고 떼쓰듯 혼자서 아주 다양한 이유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은 쓰기 싫은 핑계였다. 쓰기로 했다면 일단 쓰고 말하자.





나를, 혹은 누군가를, 또는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책을 쓴다.

(조금..) 오글거리긴 하지만 이 내용도 꽤 큰 힘이 되었다. 주제 상관없이 책을 써야겠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접근했다면 중간에 포기했을 것 같다. 무언가 애정 하는 대상을 잘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을 정리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내용은 강원국 작가님이 책 쓰기를 겁내던 시절 용기를 받은 문구 목록이다. 혹시 책을 쓰고 있다면, 책을 쓰고 싶다면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내 글과 내 경험을 판단할 자격을 가진 사람은 없다.
인생을 글로 쓰는 일에 정해진 규칙 같은 건 없다.
나와 똑같은 삶을 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내 이야기를 쓰는 것이지 문학작품을 쓰는 것이 아니다.
가장 훌륭한 책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책 쓰기는 주인의 삶을 살게 해 준다.
일생에 한 번은 책을 써라.
오직 책 쓰기만이 두 번째 삶이라는 기회를 준다.







'이토록 쉬운 스케치' 저자 서한교 입니다.

치앙마이에서 Freelance Designer 그리고 백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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